"공청회에 참석해달라는 이야기를 전날 오전에 들었다. 방학 중이라 동료 선생님들의 의견도 많이 듣지 못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주최로 30일 열린 '영어 공교육 정상화 방안'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김인정 오마초등학교 영어전담 교사는 공청회가 끝나자 한숨을 내쉬었다.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영어 공교육 개편안에 대해 인수위뿐만 아니라 토론자인 김 교사도 현장 교사로서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다 하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는 공청회 도중 발언을 시작할 때도 "공청회 참석을 어제(29일) 통보받고 많이 고민했다"며 "제가 과연 초등학교 영어를 담당하는 최일선자로서, 동료들의 의견을 잘 수렴할 수 있을지…"라며 말문을 열었다. "'영어 잘 한다'가 '영어를 잘 가르친다'는 뜻?"
그는 토론회 이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도 "공청회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며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발언 시간이 5분으로 정해지고, 방송 녹화 때문에 비전문 방송인이 마음 편히 할 말을 다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론자들이 "새 정부가 영어 교육을 연차별로 확대 강화하는 것은 시의 적절하다"(홍후조 고려대 교수), "어려웠던 수업 시수 문제나 교사들의 연수 문제 등에 대한 활성화 방안을 들어서 속이 후련하다"(김점옥 서울시교육청 교육감)며 인수위와 발을 맞춘 탓에 다소 맥빠진 공청회가 진행되던 중 김 교사의 문제제기는 눈길을 끌었다.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초등학교 교사의 학급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자료가 객관적인 것인지 의심스럽다.…'과연 초등학교에서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 저학년 아이들은 의사소통 자체가 한국말로도 안 된다." 김 교사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학급의) 43명 아이들 중 40명 이상이 모두 영어 사교육 학원 다닌다"며 "학교 영어는 수업 시수가 부족해서 '저걸 배워도 될까',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갖고 대학에 붙을까'하는 걱정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김 교사는 그러나 공청회 이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 방법에 앞서 "단지 '기러기 아빠'가 가여워서 공교육 개편 작업을 해야 하느냐"고 인수위를 향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거의 모든 학부모들이 영어 사교육에 돈을 바치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로서 원론적인 문제를 논할 자격은 없다"면서도 "초등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인데, 영어에 너무 매몰되면 안 그래도 파편화된 아이들에게 '영어 과열화'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부모들이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것은 단순히 '영어만 잘하라'는 뜻이 아니다"며 "아이가 장차 안정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어를 못 해도 좋아하는 분야에서 안정된 직장을 얻어서 살 수 있다면 영어에 이렇게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 과열 현상의 해소 방안을 '공교육 개편'에만 둘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다. 김 교사는 이어 "인수위가 빨리 가시적 효과를 보기 위해 경제논리를 교육에 적용하는 것을 유보했으면 좋겠다"며 인수위의 해법을 꼬집었다. 김 교사는 인수위가 내놓은 '영어전용교사 확충안'에 대해 "영어 전문교사를 양성해서 교단의 장벽을 허물겠다는 방법이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어 실력은 교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진 못해도 평생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교단을 지킨 교사들이 많은데 이들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느냐"며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반드시 '영어를 잘 가르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거듭 "내가 과연 모든 교사들과 현장의 바람을 대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교사들에게 많은 토론의 기회와 말할 수 있는 장을 충분히 제공해달라"고 촉구했다. 인수위 해명 "항의 단체들, 일찍 해산해 못 만났다"
인수위는 야심차게 준비한 첫 공청회 이후 "더 많은 공론의 장을 마련해달라"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하지만 영어 공교육 개편안 추진에 대한 강한 드라이브에 속도를 조절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동관 대변인은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공청회에서 제시된 인수위의 안은 영어 공교육의 로드맵을 만들기 위한 시안"이라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내용을 채워 새 정부 출범 이전에 구체적인 최종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밀실 공청회', '인수위의 정책 설명회'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이 대변인은 "그간 영어 공교육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던 학계 인사들이나 현장 실무자 등으로 패널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또 "이경숙 위원장이 공청회 직후라도 인수위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반대 단체 대표들을 만날 계획이었지만, (단체들이) 조기에 해산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뿐만 아니라 사교육비 부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영어 몰입교육 등에 반대하며 항의 서한을 들고 인수위를 찾아왔던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을 단지 "일찍 해산했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했다는 해명은 납득하기 힘들다. 인수위는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내에 교육부와 예산처, 외교부 등 범부처 차원에서 영어 공교육 문제를 전담할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예산확보와 교원채용 등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인수위가 과연 "모든 사람이 반드시 영어를 잘 해야 하느냐"는 교육 현장의 근원적 문제제기부터 영어 공교육 개편안에 대해 증폭되고 있는 국민적 반발을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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