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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문화의 길잡이'라는 간판 아래 오밀조밀한 공간에서 책을 파는 간이서점이 오는 6월이면 모두 없어질 전망이다. 서울메트로가 지난해 10월, '역사 환경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간이서점을 철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싸고 서울메트로와 서울메트로(2~4호선)역사에서 총 62개의 간이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우리와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승객들이 더 이상 간이서점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간이서점 시설이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며 '지하철 서점 무용론'을 내세웠다. 이에 한우리는 "서울메트로가 부대수익 창출을 위해 서점을 없애려 하고 있으며, 문화사업 측면에서 지하철 내 서점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한다"고 '지하철 서점 유용론'을 내세우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고객게시판에 철거반대글 이어져

 

 

한우리는 1986년부터 23년간 도시철도공사(5호선)와 서울메트로(1~4호선) 역사 내에 각각 23개와 100개의 간이서점을 운영해왔다. 그러다 지난 2002년에 있었던 자유경쟁입찰에서 서울메트로 역사 내에 있는 총 62개의 사업장을 5년 계약으로 임대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한우리는 서울메트로 측으로부터 12월 31일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됐다고 통보받았다. 지하철 내 간이서점을 모두 철거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한우리는 서울메트로 측에 요청해 6월 말까지 철거를 보류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만약 6월까지 서울메트로 측이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하철 서점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지하철 내 간이서점을 없애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어떨까.

 

현재 서울메트로 고객게시판에는 지난해 11월부터 1월 현재까지 간이서점 철거를 반대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을지로 입구역 '한우리 문고'를 자주 이용한다는 한 직장인은 "지하철역이 수익 위주로 리모델링이 됨에 따라 문화공간이 축소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반면 승강장에서 만난 한 지하철 이용객은 "솔직히 간이서점을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없어져도 크게 상관은 없다"며 "물론 문화사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간이서점이 문화사업에 크게 기여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간이서점이 시민들에게 불편함 준다?

 

서울메트로 측이 지하철 내 간이서점을 없애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0일 사당에 위치한 서울메트로 본사를 직접 방문해 실질적으로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부대사업팀 박기철 주임의 말을 들어보았다.

 

"지하철 내 간이서점 철거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의 결과이다. 즉, 이제 더 이상 지하철 서점을 필요로 하는 승객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의 발달 그리고 독서율 감소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는 "간이서점을 없애는 것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하철 내 환경개선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간이서점이 역사 내 공간을 차지하다보니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것이다. 박 주임은 간이서점을 없앤 뒤 그 공간을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시민들에게 보다 넓고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울메트로 측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간이 서점이 역사 내 공간을 차지한다고 해도 1평 남짓한 공간이고, 오히려 승객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건 의류나 잡화를 판매하는 상점들이기 때문이다.

 

'한우리 문고'가 위치해 있는 지하철 역 중 시청·을지로입구·동대문 운동장 그리고 교대역을 직접 방문해 본 결과, 간이서점 근처엔 의류나 잡화 등을 파는 상점들이 함께 위치해 있었다. 이러한 상점들은 통행로까지 물건을 진열해 놓고 있어서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물론, 미관상도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간이서점 때문에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민원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박기철 주임은 "그런 건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간이서점일까. 박기철 주임에게 지하철 내 간이서점의 임대료가 싼 편이다 보다 높은 수익창출을 위해 다른 상점을 입점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았다. 지난해 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단독 입점시켰듯이, 서울메트로도 높은 임대료로 대기업을 입점시키려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이에 박주임은 "간이서점이 있던 자리에 다른 사업을 벌일 계획은 없다"며 "그 공간은 시민들에게 환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우리가 '어마어마하게 싼' 임대료(월 14만원 정도)를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한우리와 일부언론이 주장하듯이 서울메트로가 정말로 '돈독'이 올랐다면 지난 23년간 수익도 되지 않는 간이서점에 임대를 주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한우리 측이 좀 더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겠다고 한 제안을 거절한 것 역시 이를 반증한다"며 서울메트로가 수익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적자 보더라도 계속 문화사업 하고 싶다"

 

이처럼 서울메트로 측이 '지하철 서점 무용론'과 '역사 환경개선'을 내세우며 간이서점 철거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철거 위기에 놓여있는 당사자인 한우리 측의 입장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같은 날 약수에 위치한 한우리를 방문해 엄철호 부장과 전인섭 대표이사를 만나보았다.

 

23년 간 계속해온 사업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순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그들의 표정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서울메트로가 내세우는 '지하철 서점 무용론'과 관련하여 "여전히 지하철 내 간이서점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이서점을 이용하는 고객 중 70~80%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인데, 그들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자니 배송문제로 번거롭고 대형서점을 이용하자니 멀기 때문에 편리하게 지하철 서점을 이용 한다."

 

한우리에 따르면 월 7만5000명 정도가 지하철 내 '한우리 문고'를 이용한다고 한다. 

 

한우리 측은 "독서율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들이 독서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선진국 지하철에 서점없는 곳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이어 "매출이 감소한다고 해서 다 없애버려야 하나"라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한우리는 매년 1800만~2000만원의 적자를 보며 간이서점 사업을 23년 째 계속해 오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도서관련 사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곳에서 얻은 수익으로 적자를 벌충해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우리 측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서비스 차원에서 계속 간이서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애초에 수익을 바라고 사업을 시작했다면 계속해서 적자를 내는 사업을 23년간 운영하진 못했을 것"이라며 "시민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대중교통의 중심지인 지하철에 서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적자를 감수하고 계속해서 운영해 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주인 방빼라면 나가는 수밖에"

 

임철호 부장은 "우리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은 62명의 매장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라며 "평균 연령 58세의 아줌마들이 어디에 가서 일자리를 구하겠느냐"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한우리가 23년 동안 급변하는 지하철 문화에 대한 대응이나 자기혁신 없이 똑같은 시설물과 사업전략으로 일관해 왔다는 서울메트로 측의 비판과 관련해, 한우리 측은 이번 기회를 통해 혁신을 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1평 남짓했던 매장을 2평정도로 넓히고, 신용카드 판매기, 도서 검색 서비스 등을 매장 내에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한우리는 이에 드는 비용 역시 감당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6월이 되어서 정말로 철거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묻자, 전인섭 대표는 "집주인이 방 빼라는 데 세입자가 별 도리가 있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겠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하철 내 간이서점은 어떤 이에게는 '사양산업'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편리한 문화공간'일 수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없어져도 그만'인 공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공간'일 수도 있다.

 

서울메트로 말처럼 간이서점을 없애는 것이 시민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한우리의 말처럼 간이서점을 존치하는 것이 시민들을 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역 환경개선'을 한우리는 '문화서비스'라는 각기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만 양측 모두 '공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장사는 안 돼도, 사람냄새 나는 곳"

[인터뷰] 동대문운동장역에서 간이서점 운영하는 김양희씨

 

서울메트로와 한우리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지하철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점 직원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들어보았다. 

 

동대문운동장역에는 올해로 23년째 간이서점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하철 서점의 산 증인'이라고 자부하는 59세 김양희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일하기 시작한 해는 1986년, (주)한우리가 지하철 간이서점을 막 개업한 시기와 동일하다.

 

"젊었을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돼버렸네요. 사람들과 부대끼고 지하철과 매일 만나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요. 저에겐 이 시간들이 제가 일하고 있는 작은 서점 안에 있는 책들처럼 특별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서울메트로가 6월까지 간이서점을 모두 없앤다는 방침이기 때문에 김양희씨의 서점 일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한 어조로 아쉬운 심경을 토로했다.

 

"매출이 확실히 줄긴 줄었죠. 장사가 잘 안되니까 나가라고 하네요. 사실 막막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실 분들이 2~4호선 역 다 합쳐 70명 정도 될 거예요. 다 나같은 늙은이들이죠."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단골고객들이다. 남은 약 4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김양희씨는 그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참 추억도 많아요. 1평 남짓한 서점 안에 가만히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매일 보던 사람들만 보게 되거든요. 어느새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죠. 친해지면 가끔씩 와서는 '아주머니 외로우시죠'라면서 빵과 우유를 넣어주고 수줍게 도망가는 아가씨들이 있어요. 어찌나 고마웠던지."

 

지하철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생각하는 간이서점의 필요성은 남다를 것이다. 김양희씨는 지하철 간이서점이 '인간적인 문화사업' 임을 강조한다.

 

"저는 한우리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노인네에 불과하지만, 이 사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흔한 장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죠. 문화사업이잖아요. 단지 책 몇 권 판다고 문화 사업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맺은 인연의 힘으로 20년 넘게 끌고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서울 메트로가 '역사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없애기로 한 2~4호선 지하철 역내에는 총 62개의 간이서점이 들어서 있고, 김양희씨와 같은 아주머니들이 62명 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우리에서 가장 매출이 높다는 교대역에 들러 그곳 직원인 60세 정규순씨를 만났다.

 

"나 같은 늙은이들은 돈 안 받을 테니 가만히만 앉아 있겠다고 해도 내쫓겨요. 그게 우리가 사는 요즘 세상이에요. 사정이 그러한데 우리가 어딜 가겠어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어요. 물론 서울메트로 측의 방침도 이해가 가지만 우리로선 좌절감과 아쉬운 마음만 들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홍현진·구자민 기자는 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지하철 서점, #서울메트로 , #한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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