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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만’에서 손석희 교수를 만나다

 

춥지만 맑았던 1월 31일의 아침이었다. ‘제22기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이하 ’오기만‘)’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상암동에 있는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찾아갔다. 거대한 건물을 마주하고 나니 가슴이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떨려왔다.  

 

 

18층에 위치한 <오마이뉴스>의 대회의실 안에는 약 30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어색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주간지를 읽거나 단잠을 자고 있었다.

 

몇 분 뒤, 대회의실은 오연호 기자와 이번 프로그램의 첫 강의를 맡은 손석희 교수의 등장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TV에서 보던 손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듣게 되었다는 사실에 긴장된 마음은 더 흥분되었다.

 

첫 강의인 만큼 단어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눈을 크게 뜨고 펜을 집었다. 오랜 인터뷰 경력을 지닌 손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핵심사항을 일러주었다.

 

"호기심은 인터뷰의 원동력입니다. 사회 현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문제의식은 호기심에서 나오는 것이죠. 문제의식과 호기심은 반드시 인터뷰에서 필요한 요소입니다."

 

진솔하고도 교훈적인 이야기가 담긴 강의였다. 강의가 끝나자 그의 인기를 실감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긴 문답이 이어지고 나니 그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손석희 교수의 사인 한 장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자기소개 시간, 출신은 다양하지만 마음은 하나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난 뒤, 사람들은 차례대로 오마이스쿨행 버스에 올라탔다. 오연호 기자는 오마이스쿨에서 있을 자기소개 시간에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소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한 사람씩 앉아 있던 사람들이 쑥스러워하며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약 1시간가량 강화도에 도착할 때까지 학생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오마이스쿨에 도착하니 넓은 운동장과 작은 학교 건물이 보였다. 신성초등학교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오마이스쿨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교실을 개조한 방에는 하얀 침대가 햇살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어 마치 사립학교의 기숙사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학식은 한 학생의 경쾌한 피아노 연주로 진행되었다. 곧 대강당에 모인 학생들에게 자기소개 시간이 주어졌다. U자형으로 둘러앉은 책상 위에는 방금 구운 따끈한 고구마가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학생들은 마이크가 돌아가는 대로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을 소개했다.

 

학생들의 출신은 매우 다양했다. 나이대로는 중3 어린 학생부터 50대 어른까지, 직업으로는 모델, 군인, 유학생, 교수, 원불교 스님까지…. 하지만 그들은 이미 기자가 되고자 하는 하나의 마음으로 통하고 있었다.

 

'간절함'이 기자다운 기자를 만든다

 

 

이윽고 강의에서 강의로 이어지는 바쁜 스케줄이 시작됐다. 수업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72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화가 Grandma Moses와 영화 <어거스트러쉬>의 어거스트였다. 어거스트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말했다.

 

"음악은 우리 주변에 있어요."

 

어거스트는 어릴 적 헤어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음악을 연주했다. 오연호 기자는 “어머니를 찾고자 하는 간절함과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간절함, 그것은 기자가 기사를 쓰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가 기사를 잘 쓰려면 무엇보다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음악이 우리 주변에 있듯, 우리 주변에 있는 기사들도 간절함이 있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맞아, 나도 기사 쓸 때 그런 간절함이란 게 있었어.’ 학생들의 마음 속에 여운을 남겨둔 채, 오기만 수업은 연이어 진행되었다. 강화도 불은면, 바깥은 어둑어둑해져도 오마이스쿨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수업에 집중한 학생들의 눈도 천장에 달린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수업 시간, 강사의 목소리만이 오마이스쿨의 고요한 대강당을 울렸다. 벽면의 PPT에는 학생들의 눈을 끄는 다양한 사진과 자료가 올라왔다. 학생들은 선물로 받은 빨간 취재 수첩에 강의 내용을 연방 받아 적었다. 그들의 목표는 2박 3일간 취재 수첩을 메모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첫 날 마지막으로는 다음 날 현장 취재를 위한 조별 취재 계획을 짰다. 학생들은 책상에 모여앉아 무엇을 취재할 것인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새벽 1시 반에는 자기로 약속했건만, 그들의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수차례 새로운 제안을 내놓기도 하고, 그것을 평가하기도 하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장 취재하랴, 기사 쓰랴…. 밤 지새운 이튿날

 

다음 날이 되었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 푹신푹신한 이불 속에서 눈을 떴더니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자고 있던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모두 다음 수업을 위해 일찍 일어났는데, 혼자 게으름을 피운 것 같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기자는 부지런해야 해, 마음을 가다듬으며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점심 이후 늦은 오후에는 학생들과 함께 현장 취재를 다녀왔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선택해 취재를 하러 갔다. 다행히도 날씨는 맑았다. 4~5시간 동안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취재를 하고 돌아온 학생들의 표정은 힘들고 지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그들은 그곳에서 참다운 기자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튿날의 마지막 스케줄은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어두운 2층의 컴퓨터실에는 몇 십대의 컴퓨터 화면이 기사를 쓰는 학생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타자치는 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깰 뿐이었다.

 

"벌써 새벽 3시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와, 부럽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침에 봐요."

 

기사를 빨리 마친 학생들은 남은 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하나 둘씩 사라졌다. 아직 기사를 마치지 못한 학생들의 표정은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긴장과 걱정으로 사뭇 진지했다.

 

새벽 5시, 거의 아침이 밝았지만 컴퓨터실에는 6~7군데의 컴퓨터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가 되어 겨우 다른 학생들에게 인사를 마친 일부 학생들은 짧지만 포근한 잠자리에 들었다.

 

마지막 날, 기자다운 기자로 거듭나다

 

다음 날,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서 만난 학생들은 졸리고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아침 식사는 새벽까지 버틴 사람이 잠을 쫓는데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사흘째 첫 수업을 들어야 했다.

 

수업 도중이었다. 첫 수업인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가르치던 김귀현 기자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씀 안 하세요? 여기 선물도 있는데…. 저기, 아까부터 계속 졸고 있던 학생,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이럴 수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꾸벅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못난 잠은 그제서야 달아나 버렸다. 부끄러웠지만, 정신을 재빨리 수습하고 대답했다.

 

"저는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은 못해요, 하지만 하나는 정말 제대로 할 수 있어요."

 

김귀현 기자는 박수와 함께 선물을 주었다. 시간 관리와 관련된 자기계발서였다. 책 안에는 '낮은 곳에서 존경받는 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김 기자의 격려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앞으로 매사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뒤를 이은 오기만의 마지막 수업은 오연호 기자가 장식했다. 오 기자는 학생들에게 선물로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명함에는 '오연호리포트'라고 적혀 있었다. "언젠가,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이름을 명함에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훗날 나의 명함에는 무엇이 적힐까, 궁금해 하는 동안 마지막 강의는 박수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2박 3일의 추억, 인연과 교훈은 계속 남기를

 

오기만은 강화도에서 짧지만 긴 여운이 남았던 2박 3일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오기만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기자들, 강사들, 그리고 시민 기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수업 내용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업에서 배운 것, 어찌 보면 그것은 단순히 기자뿐만 아니라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세상의 구성원인 모든 이에게 필요한 가르침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오마이스쿨에서 쉬는 시간마다 들려오던 어린이들의 합창 소리, 노릇노릇한 군고구마 냄새가 간절하다. 기자가 되고자 한 학생들과의 인연과 그곳에서 얻은 교훈이 합창 소리와 군고구마 냄새처럼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마이스쿨#오기만#기자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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