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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2일 ∼ 3월 31일

- : 문화공감 카페 〈사이〉 / 02) 888-5502

      (서울 관악구 신림5동 1424-7번지 2층)

      (지하철 2호선 7번 나들목으로 나와 당곡네거리 쪽으로 걷다가,

       김밥천국 보이는 건물 안쪽)

- 여는 잔치 : 2월 2일(토요일) 17시

 

 저 개인으로 어느덧 열 번째에 이르는 ‘사진잔치’를 엽니다. 첫 사진잔치부터 아홉째 사진잔치를 여는 동안 한결같이 생각해 오고 있는 사진감은 “헌책방 사람들”입니다. 저는 지난 1992년부터 헌책방을 즐겨찾고 있습니다.

 

헌책방을 처음 사진으로 담아낸 때는 1998년 봄입니다. 1998년 봄에 처음으로 헌책방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때, ‘헌책방을 찍어서 남겨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진기라는 물건을 처음으로 손에 쥐고서 제 둘레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 삶과 삶터였기에 몇 장 찍어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헌책방 한 가지만 줄기차게 찍고 있습니다.

 

 다른 사진작가들이 자기 사진감을 하나씩 잡아서 찍는 마음하고 제 마음하고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작가도 아니고 사진쟁이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헌책방을 어떤 꾸밈이나 겉치레나 겉발림으로 바라보지 않고 싶을 뿐인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땅에서 헌책방이라는 곳은 ‘잊혀져’ 가는 곳, ‘묻혀져’ 가는 곳, ‘추억이 어린 옛’ 곳입니다. 그러나, 헌책방에서 일하는 분들과 헌책방을 즐겨찾는 사람한테는 이곳 헌책방은 언제나 ‘지금 이곳’입니다. 지난날이 아닌 오늘날입니다. 헌책방 책손한테 헌책방은 ‘잊힐’ 수 없는 곳입니다. ‘묻힐’ 수 없는 곳입니다. ‘추억’이 아닌 ‘지금 읽을 책’을 만나는 곳입니다.

 

 

 돌이켜보면, 책만 사려고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진기를 들고 나타났을 때, 단골 헌책방 아저씨 아주머니들 얼굴이 재미있게(?) 또는 씁쓸하게(?) 떠오릅니다. 요즈음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만, 헌책방을 취재하는 기자나 피디 들은 헌책방 일꾼을 얕보거나 깎아내리기 일쑤입니다.

 

허락도 안 받고 사진을 찍어대질 않나, 헌책방 일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앞뒤 잘라먹질 않나, 묻는 말도 늘 같아요. ‘헌책방이 차츰 사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든지 ‘헌책방에는 무슨 책이 있나요?’ 같은 물음들.

 

 참 짓궂은 물음, 어리석은 물음, 터무니없는 물음이 아닐까요?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는 헌책방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되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가는 곳도 있습니다. 장사가 안 되어 문닫는 술집도 많고 극장도 많습니다. 모든 문화는 흘러가기 마련이라, 헌책방도 세상 흐름에 발맞추어 바뀌거나 달라집니다.

 

그런데 신문기자나 방송피디는 이런 흐름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아요. 돌아보지 않습니다. 한 해 두 해 쌓이는 역사가 있는 헌책방입니다. 이제는 문닫고 사라졌지만, 종로서적이 한 해 두 해 이어가는 동안 이곳 역사가 쌓였습니다. 헌책방도 저마다 다른 역사가 쌓이고 이어지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어느 곳은 대물림을 하며 예순 해가 넘는 곳이 있고, 어느 곳은 마흔 해, 어느 곳은 스무 해라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역사는 새로 써 나가고 있습니다.

 

한편, 헌책방마다 헌책방 일꾼이 만져 온 책이 바로 그 헌책방 역사를 말해 줍니다. 세월에 따라 조금씩 다른 책들을 만져서 우리들 책손한테 선사해 온 발자취가 있습니다. 우리가 헌책방을 취재한다고 할 때, 또는 헌책방 사진을 찍는다고 할 때에는 바로 이런 발자국이나 발자취를, 손때나 손품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새기고 곰삭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 조금 앞서 말을 하다가 끊어졌는데, 헌책방 책손이기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진기를 들고 단골 헌책방에 나타났을 때, 헌책방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아주 싫어하는 얼굴’을 하셨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찾아오는 기자들”이 그동안 모질게 괴롭혀 왔기 때문에, 들볶아 왔기 때문에, “사진기 든 사람만 보면 진저리”를 치시더군요. 아직까지도 어느 헌책방에서는 사진기를 꺼낼 수 없습니다. 다행스레 이런 곳은 딱 한 군데만 남았지만,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 얼굴이 풀어지도록 하는 데에는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헌책방을 팔아먹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님을, “헌책방을 멋대로 칼질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님을, “헌책방을 제멋대로 깎아내리거나 다치게 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님을 말이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란, 참.

 

 

 어쩌는 수 있겠습니까. 사진을 찍도록 허락을 안 해 주시니, 가게 앞 모습이나 책시렁 모습을 슬그머니 찍었습니다. 여러 달 이렇게 찍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동안 찍은 사진 가운데 잘 나온 녀석을 몇 장씩 뽑아서 드렸습니다. 책을 다 고르고 책값 셈까지 끝낸 뒤 슬그머니 드렸습니다.

 

이때에도 달갑지 않아 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이게 뭐냐?”는 반응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헌책방에서 이렇게 사진을 내어드렸을 때 옆에 있던 다른 책손이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잘 나왔네. 멋있게 나왔네. 사진으로 보니 다르네” 하면서 칭찬해 주니까, 헌책방 아저씨나 아주머니들 얼굴도 차츰 풀렸습니다.

 

 그러나 요즈음도 아직 사진 찍기가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스스로 사진눈이 덜 무르익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헌책방이라는 곳은 모든 책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책마다 다른 책값어치를 느끼며 만나는 곳인데, 이러한 헌책방임을 살갗 깊이 헤아려 주는 책손은 좀처럼 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사진눈이 모자란 모습은 제 스스로 갈고닦을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눈높이가 제자리걸음도 아닌 뒷걸음을 하는 데에는 저로서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 가방끈은 자꾸자꾸 길어지고 있으나, 사람들 마음깊이는 되레 작아지거나 좁아집니다. 책을 보는 눈도, 세상을 읽는 눈도, 사람을 부대끼는 가슴도 오히려 오그라듭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곰곰이 헤아려 보아 주면 좋겠습니다. 모든 책은 그냥 책일 뿐입니다. 헌책도 없고 새책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헌사람도 새사람도 없습니다. 더 나은 사람도 더 못난 사람도 없습니다. 더 잘난 책도 더 못난 책도 없습니다.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펼쳐 읽는 우리들이 문제일 뿐이지, 책한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배우고 더 똑똑하고 더 훌륭한 우리들은 왜 헌책방을 헌책방 그대로 바라보지 못할까요. 헌책방 헌책을 왜 헌책방 헌책 그대로 껴안지 못할까요.

 

 지난 1998년부터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이런저런 느낌들을, 생각들을, 이야기들을 담아 보려고 했습니다.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모자라지만 모자란 대로 사진을 담았습니다. 이제 겨우 열 번째로 여는 헌책방 사진잔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스무 번째 사진잔치도 열고 쉰 번째 사진잔치도 열어야지 생각해 봅니다.

 

돈 나올 구석이 없이 살아가는 터라 열한 번째 사진잔치를 할 수 있겠느냐 싶지만, 책은 돈으로 만들 수 없고 사진도 돈으로 찍을 수 없는 만큼, 뚜벅뚜벅 한길을 고이 걸어가노라면, 어디에선가 길이 트이고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헌책방 사람들 모습과 삶을 담아냈다고 깝죽거리는 제 사진을 보아주시는 모든 분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처럼 날마다 읽는 책이요, 날마다 만나는 사람처럼 날마다 우리 곁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헌책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은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입니다.


태그:#사진, #헌책방, #헌책방 사진잔치, #사진잔치, #사진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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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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