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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스테레에서 순례원점(原點),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세상의 끝.
▲ 피니스테레에서 세상의 끝.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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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로 향하는 버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위로 지난 순례를 비쳐보았다.

도망치듯 짐을 꾸려 비행기를 타고 한 밤을 날았다. 파리의 푸른 하늘에 넋을 놓고 루르드의 차가운 성수에 활짝 웃었다. 생장피드포르에서 느낀 난생 처음의 끌어안김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피레네를 넘고, 걷고 또 걸었다.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만남, 헤어짐을 이어가다 무모한 영적 욕심이 부른 화에 잔뜩 겁먹고 치를 떨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산중의 작은 피난처는 내게 있어 안식처와 같았다. 따뜻한 보금자리와의 헤어짐을 흐느끼고 산을 넘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잔뜩 날을 세우고 긴장을 놓지 못한 채로 오랜 시간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어느새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때마침 만난 친언니 같은 한국 순례자들 속에서 안정을 찾아갔다. 하루하루 순례가 잦아드는 것을 아쉬워하고, 한밤의 꿈처럼 닿아버린 산티아고에서 더 이상 갈 곳을 잃어버린 것이 아쉽기만 해 다급하게 땅 끝으로 발을 옮겼다.

처음 마음을 숨긴 채 내달린 길 위에서 서툰 어림짐작과 어설픈 각본 속에서 꼭두각시 노릇하듯 혼자 상처입고 앓아갈 때에, 한 통의 전화로 인연의 덜미를 붙들렸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재회하였다. 복잡하고 심각한 추측의 세계에서 날아온 나는 단순하고 경쾌한 현실에서 웃고 즐거워하는 그와 함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걸었을까?
이 모든 것은 환상일까?
나는… 꿈을 꾼 것일까?

끝없을 것만 같았던 길, 낮게 날던 제비와 부지런히 밀알을 옮기던 개미떼, 부질없는 말을 빼앗아 갔던 아마폴라 밀밭과 찬란한 태양, 귓가를 간질이던 서늘한 바람, 꼭 나처럼 솜털을 바짝 세우고 조심스럽기만 했던 고양이들, 꼭 그 애처럼 안아달라며 무섭게 품안으로 파고들던 강아지들을….

그리고 내게는 반짝이는 보석이 되어준 그 여름 길 위에서 인연을 맺은 아름다운 사람들, 저마다의 모습으로 진리를 찾던 이들, 내게 반짝임이 되어준 이들을, 그리고 두려움과 환상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고 하나의 만남과 이별을 선물해 준 그를, 순례를 마치고 기어코 열네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스페인의 서쪽에서 동쪽을 가로질러 나를 발렌시아에 닿게 한 사람을….

나는 모든 것들을 아프도록 사랑했다.
그리고 이 모두를 품에 안은 길의 사랑을 받았고,
길 위에서, 삶을 사랑하는 법을 온 몸으로 배웠어.

내딛는 걸음마다 은총이었던 그 여름, 당신이 주셨던 선물들을 이제 돌려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2007년 겨울, 한국에서

한여름 해변가의 풍경
▲ 피니스테레에서 한여름 해변가의 풍경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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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과 눈부신 가을을 지나, 두 개의 계절이 바뀌었어요.

산티아고 다녀오면 다 바뀔 줄 알았고 삶이 또렷해지고 미래에 대한 계시를 짠, 받을 것 같았어요. 아니, 적어도 ‘800킬로미터 정도의 고행이니까, 살은 빠지겠지?’ 천만에요. 오히려 늘었고요(길에서 다이어트를 염두에 두는 분들 후폭풍 특히 조심하시길).

고행을 하고 나면,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에게 용서받고, 내가 용서를 해야 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역시 천만의 말씀. 미운 사람들은 여전히 얄밉고(저 역시도 그들에게 그렇겠지요!), 보고 싶은 사람들은 만날 수 없어서 괴로워요.

세상 끝에서 받은 멋없는 팔찌를 끊어낼 때, 너무너무 힘겨웠어요. 그러나 그건 ‘지난 여름 함께 걸었던 그 애’였죠. 분명하게 숨김없이 ‘너를 좋아해’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첫 사람, “이제 시작된 거야. 너는 앞으로 수많은 또 다른 호르케를, 만나게 될 거야.” 그렇게 저를 응원해줬던 고맙기만 한 사람. 만 킬로미터를 떨어져 있지만, 지금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어요. 저도 그 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그 애도 저의 글과 삶을 응원하고 있음을….

비단 그뿐만 아닌 길 위에서 닿은 아름다운 인연의 그물망을 가만 매만져 봅니다.

혼자서 말도 모르는 땅에 떨어져서 진짜 생각만 잔뜩 하고 올 요량으로 온갖 ‘기대와 환상’을 품고 시작한 순례였지만 돌아보면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그동안 혼자 생각하던 것처럼 저 자신이 대단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았고, 딱 그만큼 지지리 궁상도 못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저 그 분이 준비하신 세상에 뿌려진 한 줌 씨앗 가운데 하나인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위에서 꾸밈없이 웃고 울고, 어쩌면 그리도 한없이 기쁠 수 있었는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 지난 여름, 최초의 천진난만한 생의 경험.

그의 말처럼 과연 저는 시작한 것일까요. 삶을 온전히 만나고 느끼고 그 안에서 배우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길 위에서 그랬듯이, 24년 내내 그랬듯이, 저의 서툰 계획과 각본대로 삶이 이뤄져 나가지는 않을 거라는 것은 어렴풋이 느껴져요.

성소요? 세례 받고 반년도 안 지났는데요. 마치 ‘커서 대통령이 될 거야’하는 어린애의 꿈일지 몰라요. 언제든 당신의 찌가 제 입에 물리게 되면 아무리 발버둥치고 요나의 모습처럼 반대로 달음질해도,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때, 부르실 때를 준비하면서 ‘지금은 좀 잘 살아봐’, 하고 머리 한 대 콩, 쥐어박아 주셨네요(아파요!).

혼배성사를 참 많이 봤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제 안의 여성성에 대해 느끼게 되었어요. 여전히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한 불신, 결혼한다는 것에 대한 도리질, 가지고 있지만 예전처럼 ‘절대, 죽어도, 안 해, 못해!’ 그런 강한 부정의 긍정(?)은 넘어선 것 같아요. 사랑도, 사귐도, 그리고-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일에 대해서도. 지금은 아예 생각 바깥이 되었어요.

돌아오자마자 했던 건 인터넷 항공권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 마드리드 행 왕복 티켓을 클릭하는 일. 정말, 다시 가고 싶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갈 수가 없었고, 이렇게라도 마음으로라도 두 손으로라도 걸어야겠다 싶었지요. 우습지만, 쓰지 않고 토해내지 않고 그저 견디고 사는 것을 할 수가 없어서 다니던 학교까지 중간에 멈추고, 다시 걸었어요….

지금요? 200여 페이지의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우선 제 힘으로 한 건 아닌 것 같고(세상에 이렇게 긴 글을 써 본 적이 없는데?),  걷게 해 주셔서, 글 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저, 감사드려요.

‘어쩜 그렇게 매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기억일까 추억일까 환상일까, 이 글은 순례기일까 소설일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정말 진짜 있었던 이들일까, 내 글은 사실을 담은 걸까 그저 내가 본 또 하나의 거울일까….’ 그렇지만요.

Be yourself. 그리고 Do what makes you happy. 저 자신이 되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걸었어요. 그리고 그 파편들을 이기지 못해 온 마음에 박힌 기억조각 빼내듯 이 글을 썼어요. 글을 쓸 때에도, 마치 길을 걷듯 기뻤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겠지요….

“Ad Majoram Dei Gloriam.”
모든 이야기를 이 한 마디로 줄입니다.

여성 순례자상
▲ 산티아고에서 여성 순례자상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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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진난만하게, 만나기 위해서, 삶을 걷는 순례자, 지형 에디트슈타인 드림.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로 이어지는 순례기록은 고이 품어두기로 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의 서툰 연재,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태그:#산티아고가는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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