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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을까?”

 

텅 빈 마당 한 구석, 나무 아래에 서 있는 눈사람이 외롭다. 하얀 몸으로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왠지 나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감정이 그렇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에 무슨 논리가 필요하겠는가? 이성이 작동하지 않으니 합리성이나 이유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가야 할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를 들여다본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외롭다는 점이다. 부평초의 아픔은 의지를 상실하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움직여지고 있다는 점에 절망하는 것이다.

 

  이제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부터 귀향 행렬이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황금 같은 9일간의 연휴여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 겨울에 한 여름의 열기를 만끽하기 위하여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보고 자랐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효이고 실천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각도 달라질 수는 있고 문화가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효는 그렇게 흔들릴 수 있는 가치가 아니지 않은가?

 

  고향을 찾을 명분이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고독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향에 친척이 살지 않게 되니, 암담하다. 마음 내킬 때마다 찾게 되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고향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고향을 찾아가도 반겨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은 외로움이 뼈까지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눈사람은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내 고향의 겨울은 눈 세상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서면 허리까지 찰 정도로 하얀 눈이 쌓여 있곤 하였었다. 하얗게 변해버린 새로운 세상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홀로 서 있는 눈사람에게서는 추억의 문이 있었다. 그리움의 세상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추억 세상은 온통 감미로움으로 넘쳐나고 있다. 사랑이 넘치던 어머니의 웃음이며 골목을 뛰어다니던 유년 시절의 내가 반겨준다. 그 때에는 근심도 걱정도 고민도 없었다.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어머니에게 말만 하면 무슨 일이던 다 이루어지던 마법의 세상이었다.

 

  마법이 언제 끝이 나버렸을까? 어른이 되면서부터 시나브로 인색한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다 보니, 어느 사이에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다. 이렇게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점이다.

 

  눈사람이 웃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르게 살라 한다. 근엄한 표정을 버리고 재미있게 살아가라 한다.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르게 보고 삶의 깊이를 심화시키라 한다. 욕심은 공허한 것이니, 미련을 갖지 말고 살아가라 한다. 이제 더는 잃을 것이 없으니,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 한다.

 

  텅 빈 공간에 외로움을 발산하고 있는 눈사람을 보면서 나를 보고 명절을 생각한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이고, 소탈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명절을 맞이하여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형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외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먼 곳에 잊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금강에서


태그:#눈사람, #명절, #외로움,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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