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차가 졸속했다, 2)논의가 부실했다, 3)동기가 불순했다, 4)논리에 결함이 많다, 5)국가 비전이 없다, 6)반대가 많다, 7)국정의 화근이 된다, 8)때가 아니다, 9)이래서는 끝까지 추진도 못한다, 10)대안이 있다, 11)진짜 논의를 가로 막는다, 12)시간이 갈수록 모순은 점점 커진다. 한 서울대 교수가 특정 사업에 반대 의사를 피력하면서 내세운 12가지 이유다. 그는 한 일간지에 게재한 이 글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맺었다. "결자해지라고, 먼저 대통령이 말을 거두고 국가의 장래를 내다보는 원점으로 돌아가 주어야 한다.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기를 쓰고 나서고 국민이 함께 잘못이라고 할 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용기요, 애국의 정치다." '이명박 운하' 구상자의 아이러니한 행보
한번 상상해보시라. 서울대 교수는 대체 무슨 사업에 대해 이토록 반기를 든 것일까? 많은 독자들은 위의 글을 읽고 아마도 '이명박 운하'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빗나간 추측이다. 위의 글은 쓴 주인공은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그가 지난 2004년 7월7일자 <문화일보>에 게재한 '수도이전해서 안되는 12가지 이유' 제하의 글 내용이다. 유 교수는 지난달 31일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 실장'에 내정됐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는 수도이전 반대운동을 함께하면서 친분을 다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런 글을 썼던 그가 '이명박 운하 구상자'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현재 대운하 반대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반대 논지가 당시 유 내정자의 수도이전 반대 논지와 거의 일치하기에 더욱 그렇다. 더 극적인 것은 유 교수가 실장에 내정된 그날, 서울대 교수 80명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을 발족했다는 것이다.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서명을 받기 시작한 지 불과 3일만에 130여명이 동참했다. 보수-진보-중도 교수들이 너나할 것 없이 뭉쳤다. 이들은 법대 1000년 기념관에서 첫 토론회를 열고 '행동하는 지성'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학자적 양심을 지키겠다고 나선 서울대 교수 집단과 같은 날 권력의 품에 안긴 유우익 교수. 엇갈린 이들의 행보에 앞서 주목할만한 것은 수도이전을 반대할 때의 유 교수와 이명박 운하 전도사로서의 유 교수의 엇갈린 행태다. 위에 언급했던 유 교수의 12가지 논지 중 몇 가지를 그대로 이명박 운하에 대입시켜보자. 절차 무시, 동기 불순, 그리고 비논리... 우선 절차를 보자. 이 당선인은 지난 대선 때 경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해지자 "선거가 끝난 뒤에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외국의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인수위에서는 "100% 추진한다" "내년 2월에 착공한다" "특별법을 만들어 추진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특별법을 만들어 환경영향평가 등 다양한 법적 절차조차 생략한 채 불도저처럼 밀어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기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대 교수모임의 김상종 공동대표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면 납득할 수 없다"면서 "땅을 가진 지역유지들을 끌어내는 요인이 땅값을 올려주는 것이고 그것이 전 국토를 운하로 연결한다는 발상으로 연결된다, 물길을 잇는 게 아니라 '표'로 전 국토를 잇는 발상"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뿐인가. 이명박 운하 찬성론자들의 '비논리'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표적인 발언은 다음과 같다. "운하에 배가 다니면서 스크류가 돌아가면 폭기현상으로 수질이 개선된다" "바이칼호, 천지 못도 고여있는 물인데 썩지 않는다" "운하에서 사고가 날 확률은 63빌딩에 비행기가 부딪칠 확률과 비슷하다". 카지노 경제가 우리의 경제비전? 그렇다면 '이명박 운하'에는 어떤 국가 비전이 담겨있을까? 우선 경부운하를 통해 30만명의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사 기간인 4년 뒤에는 없어지는 '시한부 일자리'다. 다른 사업에 경부운하 공사비인 14조원(터무니 없이 축소된 액수지만)을 투자해도 비슷한 수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정도의 돈을 투입해서 고비용 저효율의 일자리를 창출하느냐, 아니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 것이냐는 문제이다. 이미 한 물 간 18세기형 유럽의 운하가 국가 비전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사업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개발업자와 땅투기꾼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소위 '카지노 경제'가 우리의 비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유 교수의 지적대로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독일의 운하컨설팅 회사인 플랑코의 피터 리켄 대표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 국가에서 왜 해운을 이용하지 않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인 대구-부산간 117km 구간이 2010년 완공되면 서울-부산간 KTX 전구간이 개통되고 경부노선의 복선화가 완료된다. 이러면 화물철도로 전용될 수 있는 화물수송능력이 7.7배 증가한다고 철도공사는 밝히고 있다. 현재의 여객은 대부분 고속철로 흡수되기에 철도 운송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철도는 배 운송보다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친환경운송 수단이다. 운하 찬성론자들은 도로운송 수단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덜한 배를 띄우면, 즉 운하를 파면 지구온난화를 저감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철도운송에는 눈감고 있는 것이다. 유 교수가 이 칼럼 마지막에 "결자해지라고, 먼저 대통령이 말을 거두고 국가의 장래를 내다보는 원점으로 돌아가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야말로 지금 유 교수가 자문해보아야 할 말이다. "나라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내친 김에 또다른 칼럼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2004년 6월16일자 <한국일보>에 쓴 '국정의 화근이 된 수도이전' 제하의 시론이다. "관변단체들과 어용학자들이 나서서 논리를 급조해보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밀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강변을 거듭하는 데 또 다른 무리를 부를 뿐이다. (중략) 4조원이라던 건설비가 46조원으로 늘어나더니, 국책연구소 용역보고는 다시 그 배 이상이 들 것같다고 한다.(중략) 수도이전이 국정의 화근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멈추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니고, 나라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이 역시 이명박 운하 반대론자들이 그간 지적해왔던 내용과 흡사하다. 권력에 빌붙은 '어용학자'들의 거짓말과 곡학아세가 판치고 있고, 운하 주변의 치솟는 땅값에 눈독을 들이는 지역토호들과 개발업자들이 관변단체를 만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경부운하 건설비가 14조원이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40-50조원이 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유 교수는 수도이전에 맞서 '나라는 실험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막상 그는 수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 2/3의 식수원인 한강과 낙동강을 실험대상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 4년전 유 교수 자신이 수도이전에 들이댔던 냉혹한 잣대는 선거가 끝난 뒤에 휴지통에 처박은 모양이다. 학자인가 정치인인가 유 교수는 대통령실장으로 내정된 뒤인 1일 인수위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유 교수는 이날 "앞으로 10년 이내에 대략 물류, 유통량이 두 배로 늘어나고, 컨테이너로 하면 세 배 정도"라면서 "철도, 고속도로, 수로를 더 개설하지 않고는 늘어나는 물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문제는 어느 것이 덜 환경을 파괴하냐, 더 환경친화적이냐 인데 여러 연구에 의해서 수로쪽이 자연이 만든 길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도로나 철도에 비해서는 훨씬 더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 소모량이나 배기가스 배출양에 있어서도 내륙 수로는 철도, 고속도로에 비해서 월등히 환경 친화적이다." 하지만 물동량 주장도 근거가 없고, 운하가 친환경적인 운송수단이라는 것도 상징조작이다. 가령 운하 찬성론자들이 주장한 2011년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량을 대입하면 경부운하에 오가는 5000톤급 배는 하루 6척에 불과하다. 또 배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도로에 비해는 덜하지만, 철도에 비해서는 높다. 사실조차 왜곡해가면서 경부운하가 '친환경적 운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운하건설로 대규모 환경재앙이 확실시되는 비난 여론을 가리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사실상 정치 공작인 셈이다. 유 교수는 또 "대통령 실장은 대운하 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주무부서가 아니지만 정책의 조정, 조율에 어떤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면 지금 논의 되는대로 많은 전문가와 국민들의 참여 속에 논의를 거치겠다"면서 "가장 환경 친화적이고,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안전한, 그런 운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지원과 절차를 도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역시 고도의 정치적 수사다. 왜냐면, 그의 말에 따르면 운하 추진은 이미 결정된 상태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을 참여시키겠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국민들을 들러리로 세우겠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권력자의 오만이다. 과거 '애국의 길'을 주장했고, '나라가 실험대상이 아니다'라고 절규했던 그 학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국토가 투기장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던 유 교수 그의 변신은 여기에 그친 게 아니다. 잠시 또 과거로 가보자. 그는 2005년 세계지리학연합회 사무총장이 된 뒤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반도는 섬과 대륙의 특성과 함께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큰 땅입니다. 반도의 지리적 특징은 개방성이죠. (중략) 세계화란 닫힌 공간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국가발전 전략차원에서 그 특성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최근 이명박 운하 반대론자들이 하는 얘기와 똑같은 말이다. 삼면이 바다인데, 굳이 백두대간을 파헤치면서까지 운하를 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유 교수는 또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좋은 국토 환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땅과 바다가 오염되고 파괴되는 데서 나아가 돈벌이의 수단, 심지어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의 우려가 이명박 운하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운하 예정지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 땅의 70% 이상이 외지인 소유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교수모임의 공동대표인 김상종 교수는 "(이명박 운하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1%밖에 안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개발업자와 투기꾼뿐이라는 것이다. 수도이전에 대한 반대논리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현실. 유 교수는 이런 아이러니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자신이 수도이전 문제에 대해 지적했던 12가지 이유를 '이명박 운하'에서는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학자적 양심을 걸고 말이다. 하지만 인수위측은 되레 '서울대 교수모임'을 향해 정치적이라고 공격했다. 추부길 대통령 당선인 정책기획팀장은 4일 SBS라디오 '백지연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대운하 반대토론회'를 개최한 서울대 교수들을 향해 "단순히 정치적인 반대, 말도 안되는 의견도 많았다"고 맹비난했다. 학자에서 정치권의 실세로 화려하게 변신한 유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와 그와는 다른 길, 즉 '행동하는 지성'이 되고자 일어선 80명의 서울대 교수들. 누가 정치적인가? 교수모임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절규하듯 한 이 말을 유우익 교수에게 전하고 싶다. "영혼이 없는 자들이 이명박 운하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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