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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식 경제호'가 출항도 하기 전에 비틀거리고 있다. 우선 국내외 경제환경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경기침체를 빼더라도, 물가폭등과 주가폭락 등 경제 주체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MB식 경제'에 대한 기대감도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식 경제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의 대표공약을 중심으로 본 당선 이후 50여일간의 평가와 전망을 5차례에 걸쳐 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3일 서울 관악구 봉천11동 재래시장. 이날 아침 조용하던 시장이 갑자기 북적거렸다. 새벽부터 수십명의 사복 경찰을 포함해 폭발물을 탐지하는 개까지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방문 때문이었다.

 

이 당선인이 재래시장을 찾은 것은 지난해 12월 24일 이후 처음. 지난 40일 동안 이 당선인과 마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인과 사회 주류층 인사들이었다. 일부에선 '국민을 섬기겠다'는 차기정부의 구호 속 '국민'에 '서민은 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이날 재래시장의 떡집 상인은 "서민 좀 살려주세요"라고 말했고, 이 당선인은 "서민경제가 살아야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가 폭등의 직격탄은 서민들에게 집중되고 있고, 소비심리 등 경기불안도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달 초 "서민이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내놓겠다"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사실상 손을 놓았다. 총선을 앞둔 '표'를 의식한 섣부른 정책이 쏟아졌고, 이해 당사자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물론 '서민용'이란 대책 자체가 유명무실화됐다.

 

[통신비] 1월까지 20% 인하→취임 전까지 피부에 닿는 정책→새 정부가

 

인수위는 지난달 초 통신비와 유류세 인하를 대표적인 서민경제 대책으로 꼽았다. 이어 지난 1월 말까지 정보통신부와 협의를 거쳐 이동통신요금 인하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명박 당선인 취임 전까지 피부에 와닿는 대책을 낼 것이라는 해명만 이어졌다. 결국 지난 3일 인수위는 통신비 인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20% 인하' 역시 장기적인 통신 규제 완화와 경쟁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대체됐다.

 

사실상 통신비 20% 인하 대책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가입비나 기본요금과 같은 실질적 인하는 전혀 손도 대보지 못했다. 대신 정부의 통신규제 정책인 요금 인가제를 폐지하거나, 통신업체의 망내 할인 유도 등 방안이 나왔다.

 

일부 독과점 업체 이익만 불릴 뿐

 

이에 4일 KT와 SKT 등 유무선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인 업체들이 일부 요금인하 상품을 내놨다. 하지만 업계와 시민단체는 "새로운 것이 없다", "독과점적 위치를 유지하려는 상술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비판이 뒤따랐다.

 

LG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요금인하 혜택이 일부에만 가지 않고 소비자 전체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현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서 "이번에 나온 일부 상품은 결국 자신들의 시장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 정책위원은 "인수위의 정책 방향이 일부 독과점 기업에 이로운 것 같다"면서 "오히려 통신 소비자들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서비스 이용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선희 서울YMCA 시민중계실 간사는 "통신비를 인하하려면 가입비나 기본료를 내려야 하지만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면서 "20% 할인은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업체들의 망내 할인, 결합상품 등에 대해서도, "또 하나의 요금제일 뿐이며 오히려 기본요금이 올라가는 등 실질적인 할인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기름값] 뻘쭘한 'LPG 경차' 대책...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기름값 인하 대책도 마찬가지. 현재 휘발유와 경유 등에 매겨지는 과도한 세금을 실질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것이 인수위의 방향이었다.

 

지난달 초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정권 출범 전이라도 현 정권과 논의해서 가급적 유류세 10% 인하와 휴대전화비 인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인수위는 이 약속마저 사실상 접었다. 인수위 경제분과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는 법을 바꿔야 하는 사안이어서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인수위가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물러섰다.

 

그는 "유류세 인하가 당선인의 공약인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서면 법 개정 등 제도적인 보완 등의 작업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더이상의 유류세에 대한 인수위 차원의 대책이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달에 저소득층 지원과 에너지 절감을 위한 일부 대책이 나온 것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 인수위는 지난달 10일 고유가 대책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연탄 쿠폰 지급을 늘리는 것과 액화석유가스(LPG) 경차 허용 등을 발표했었다.

 

그렇지만 인수위가 내놓은 LPG 경차 허용의 경우, 이미 지난해 11월 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내놓고, 추진해온 것을 재탕한 것에 불과했다.

 

휘발유 절감 효과도 미지수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각종 세금 혜택에도 휘발유 경차에 대한 보급률이 여전히 낮고, LPG도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 휘발유보다 연비가 떨어진다는 점 등 때문이다.

 

통행료 인하, 약값 인하, 보육비·사교육비 절감... 말로만?

 

 

이뿐만 아니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선공약집 등에 나온 각종 서민경제 대책에 대해 인수위 쪽의 방향이나 대응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약값인하, 보육비와 사교육비 절감 대책 등은 전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진 '환상'에 불과한 셈이다. 이 당선인은 애초 출퇴근 고속도로 요금을 50% 내리겠다고 했지만, 인수위 쪽에서 누구도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보육비 절감은 공약이 훨씬 구체적이다. 5세까지 영유아를 대상으로 보육시설 이용금액을 전액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임신-출산-보육-취학 4단계에 걸쳐 각종 진료비 등도 국가에서 지원하겠다는 언급도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보육비 절감 등을 위해선 막대한 재원 마련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이미 공약에 나온 만큼 이 역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세금 파트 쪽과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답변 역시 앞선 인수위 쪽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값 인하 부분은 새 정부 임기 중에 추진될 지도 불투명하다. 치매를 비롯해 심장병·당뇨·고혈압 등 노인성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에 대해 국가가 부담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일부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아예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주는 정책과 공약에 대해선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경제학회 토론회에서 "유류세 10% 인하는 세수 손실이 큰 정책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에너지 가격정책은 나라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실험이 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올 지,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모습이다.


태그:#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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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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