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는 크게 미나미오사카(南大阪)와 기타오사카(北大阪)로 나뉜다. 미나미오사카는 오락과 식도락으로 유명하고, 기타오사카는 역사적 건축물과 호텔, 백화점, 쇼핑몰 등의 비즈니스 중심지이다.
이날은 쇼핑 중심가인 난바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우메다역 주변 상가를 돌아보기로 했다.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 염려가 된 것은 교통편 이용과 언어였다. 하지만 몇 번에 걸친 실수와 시행착오로 3일째부터는 걱정할 게 없었다.
오사카 지역에 관한 여행 안내서를 두 권이나 읽었고 몸으로 때우는 배낭여행이라면 이력이 나 있기 때문이다. 동서독이 통일된 직후 1개월 동안 혼자 유럽 여행할 때는 유명한 관광지만 얼른 둘러보고 사진만 찍은 후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식이었지만, 지금은 목적을 둔 테마여행이고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사카를 방문하는 사람의 필수 코스라는 도톤보리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밤이면 방문하는 사람으로 불야성을 이룬다지만 오후 두 시쯤이라선지 관광객들만 보이고 걷기에는 지장이 없다.
도톤보리의 대표적인 명물로 소문난 피에로 복장의 움직이는 인형은 줄무늬 피에로 복장으로 간판이름은 ‘쓰러질 정도로 먹자’는 뜻의 ‘구이다오레’(くいだおれ)이다. 처음으로 움직이는 간판을 세워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유명해져서 관광객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곳이다.
미도스지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신사이바시 상점가를 만날 수 있다. 신사이바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쇼핑거리다. 상점가 전체가 아케이드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다. 아케이드 형태의 상점가는 비도 맞지 않고 가운데가 볼록한 원형이어서 구심점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대기업이 주도하는 쇼핑몰로 죽어가는 재래시장을 살리려는 지자체는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명품 상점이 많아서인지 멋쟁이들과 점잖아 뵈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도 상점들을 기웃거린다. 평일 낮 시간인데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나왔는지 길에 가득하다. 낮 시간에 쇼핑하는 사람들이 다 나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도톤보리 끝 지점까지 걸어와서 우메다역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걷다가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점에 왔다. 국립분라쿠 극장이다. 분라쿠(文樂)는 가부키, 노(能)와 함께 일본의 주요 3대 고전 연극의 하나이다.
17세기 초 여러 종류의 가요곡과 무용을 모아 시작한 가부키는 연기, 무용, 음악의 결합에 의해 오늘날에는 양식, 색, 소리가 결합된 화려한 무대연출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분라쿠는 가부키와 마찬가지로 에도시대에 도시에 사는 서민들 사이에서 생겨난 전통적인 예술 양식의 하나로, 일본의 직업적 인형극이다.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우메다역에 내렸다. 6개의 전철과 지하철이 연결돼 있고 다양한 쇼핑가와 먹거리들로 가득찬 곳이어서 처음 방문한 관광객들은 길을 잃기 쉽다. 엄청난 크기의 전자상가를 구경하고 거리로 나섰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높은 빌딩 1층에 중요 도로로 연결되는 통로를 마련해 상가에 대한 인지도도 높이고 옛날 오사카 분위기를 살려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건물을 통과하며 지름길에 대한 고마움과 소속된 빌딩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옛날 오사카 분위기를 내기 위해 가게 전면만 옛 분위기로 치장하고 하고 내부는 완전히 현대식이어서 불편함이 없다. 상술일까? 아니면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와 공존의 개념일까?
우리나라와 일본의 유원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관람차는 지상에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종합 쇼핑몰 HEP FIVE 7층에 있는 관람차는 우리의 상상 차원을 뛰어넘는다. 도심 한복판 빌딩 중간에 설치됐고, 7층 높이에 자리 잡아 시내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한 바퀴 도는데 15분이며, 최고 높이가 106m에 달해 군대 간다던 대학생은 타고 난 뒤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우메다역의 저녁 퇴근 시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으며 다들 무엇으로 생계를 꾸려 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전철을 기다리며 식당을 찾다가 대형 전광판에서 스모결승전 중계 방송하는 것을 구경했다. 차를 기다리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인 요꼬즈나와 서양인과의 시합에 열중하고 있었다.
스모에서는 경기 전후에 손바닥을 치고 손을 모았다가 벌리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바닥을 힘있게 밟는 일, 이긴 리키시가 다음에 싸울 자기편 리키시에게 물을 떠주는 일, 소금을 쥐었다가 힘껏 뿌리는 일, 상금을 받을 때 손을 좌우로 흔드는 일 등등 스모에는 의례적인 색채와 예절이 매우 중시되고 있다.
스모 경기를 할 때 씨름꾼은 땅에 한 손을 짚은 자세로 서로를 노려보다가 앞으로 튀어나가 힘과 기를 겨룬다. 구부린 자세에서는 허리에 두른 엉성한 발 모양의 ‘사가리’(下がり)가 하늘을 향해 곧추선다.
이는 닭싸움에서 볼 수 있듯이 조류가 깃털을 세우고 기를 불러 모으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조상을 포함한 광의의 동이족이 대대로 전해 온 숭조(崇鳥) 신앙의 흔적을 스모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일본의 신사나 절에 가면 우리나라 절을 들어가기 전에 일주문을 거치듯이 통과해야 하는 문이 ‘도리이’다. 도리이는 일본의 건국신화가 새와 관련을 맺는 하늘숭배와 관련이 있다.
일본의 스모팬들은 순식간에 결정되는 단판 승부의 박진감을 즐기면서 이런 전통적·제의적 요소를 양념으로 삼는다. 활짝 피었다 금방 사라지고 전쟁에 지면 자살을 하는 일본의 전통이 우리의 삼전 2승의 승부 개념과는 다른 것 같다.
유럽 배낭여행할 때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지금도 꾸준히 테니스를 하기 때문에, 걷는 것은 자신이 있어서 많이 걸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발바닥이 아프다. 나이는 못 속이는 걸까? 절룩거리며 걸을 수는 없어 발을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커다란 서점 구경을 하기 위해 키노쿠니야 우메다본점에 들어갔다.
잡지, 취미생활, 지도, 신간서적, 문학, 예술, 의학, 컴퓨터, 이학, 건축, 학습참고서, 어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 없는 게 없다. 직원의 얘기로는 약 백만권 쯤 되며 하루 판매량은 비밀이라 말해 줄 수 없단다. 평수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이 넓은 서점에 수백 명에 달하는 고객들이 책을 고르며 구경하고 있다. 손님이 서 있는 순서대로 인기부서를 살펴보니 신간과 화제작, 여행, 취미생활, 여성잡지, 어학, 컴퓨터 관련 부서다.
다리도 쉴 겸해서 저녁을 사먹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식당에 들어갔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메뉴판 사진을 보고 가격표에 해당하는 접수판에 돈을 넣고 표를 주고 나서 금방 나오는 그릇을 들고 돌아보니 모두 서서 밥을 먹지 않는가? 촌놈 티냈다. 제기랄! 식사는 맛있을 것 같지만 서서 먹어야 하는 내 발은 어떡하지.
집에 돌아오니 처삼촌과 친척 사이인 조선족 동포가 와 계셨다. 그 분은 하얼빈 태생으로 지금은 북경에서 남한, 북한, 일본과 유통업을 한다. 예전에는 교사였지만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그녀는 일본 사람에 대해 “깔끔하고 예의 바르며 조용하다”고 한다. “음식은 눈으로 먹는 것만큼 모양과 색깔에 대해 신경 쓴다”고 전했다.
“태어난 지 30일밖에 안 된 손주가 응급실과 중환자실까지 20일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 “보험이 적용된 가격이지만 천엔밖에 지불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대수술할 때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일본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예의 바르며 고객으로 대우 받는 느낌이 들어 만족했다.”한국 일본사람들과 무역을 하면서 동포로서 한국 사람들에게 충고할 점에 대해 말한다.
“남한 사람들은 돈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차별한다. 어떤 사람은 술집에서 아가씨한테는 팁을 주면서 중국 직원들에게는 월급도 잘 안 주는 사장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을 망신시킨다.”“중국 TV에서도 <상도>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어 인기가 있었다. 왜 연속극처럼 못하는가? 예를 들면 한국사람 A가 와서 물건 값을 100만원 준다고 계약을 하고 간 뒤 B라는 사람이 와서 105만원에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사람은 A라는 사람이 먼저 계약을 했다면 뒤에온 B라는 사람은 ‘잘하시라’고 하며 간다. 그런 사람은 신뢰가 간다.” 정말 반성해야 할 일이다. 잠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본과 중국의 상술. 일본과 중국의 가운데 낀 한국의 미래는? 방향타는? 수백명 아니 천 여명쯤 되어 보이는 서점을 찾는 사람들과 전철 속에서 책을 읽는 일본인들의 지적 탐구를.
덧붙이는 글 | U포터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