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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대선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 대학생 유세단으로 활동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 대학생 유세단으로 활동했다. ⓒ 송주민

 

"오른쪽으로 치우친 한국 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버린 지금 이 순간…. 눈물을 머금고, 사랑했던 민주노동당을 떠납니다."

 

저는 민주노동당 학생당원 활동한 지 반년도 안 된 새내기 당원입니다. 또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았던 아웃사이더(?) 평당원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수년, 수십년 간 당을 위해 헌신했던 당원들 앞에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다소 건방져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소위 '한 운동' 했다는 사람들만의 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를 사랑하고,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최근의 사태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혁명의 길'을 외치는 결의에 찬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학생당원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가장 큰 계기는 대학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담론이 소통되고, 다양한 사상을 접할 수 있는 대학의 모습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요즘 대학은 천편일률적인 '기업맞춤형 취업공부'를 하는 곳이었고, 효율과 경쟁의 가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획일적인 문화에 사로잡힌 '취업의 전당'이었습니다.

 

이렇게 변질된 모습 속에서 '진보'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보'는 현실에 대해 안주하길 거부하고, 잘못된 대세라면 거슬러 보기도 하는 당돌한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 내에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기존의 관습화된 질서에 대해 순수한 비판자 역할을 하는 것은 '진보'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인 숙명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고민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고 학생당원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혁명의 길'을 외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균형 있는 사회,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를 바라는 소박한(?) 꿈을 가진 대학생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말고, 다른 세상도 가능하다는 것을 민주노동당이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노동자,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보수를 지향하는 정당과 진검승부를 벌이는 균형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기대했던 '비대위' 활동, '4주 천하'로 끝나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4일 국회에서 비대위 총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4일 국회에서 비대위 총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제가 순진했던 걸까요? 밖에서 바라본 민주노동당과 안에서 느낀 민주노동당은 매우 달랐습니다. 정파 구조에 의해 진보정당 가치가 훼손되는 모습에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 생각은 대선을 거친 이후 더욱 또렷해졌습니다. 기대를 걸었던 '심상정 혁신안'은 당 쇄신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는데 이마저도 부결됐습니다.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결국 비대위는 4주 천하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짧은 제 생각으로 당 내 '정파'라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과 국민을 위하여 끊임없이 혁신하고, 그들의 요구를 받들어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노동당의 정파구조는 심각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선진 활동가 부대'여야 할 정파는 사실상 사익추구집단으로 전락했고, 민주노동당의 모든 권력은 사익 추구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틀 안에서 저 같은 평당원은 표결을 위한 '거수기'에 불과했으며, 참여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해야 할 대학생들의 모임인 학생위원회조차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학생당원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바로 소통의 부재였습니다. 저같은 평당원들은 당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만들어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진보정당 아닌가요? 당의 중요한 현안들이 평당원들에게 바로 전달되는 경우는 적었습니다. 정파라는 비공식 라인을 통해 중요사항들이 전달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저같은 사람들은 당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왜곡되어 갔고, 당은 점점 특정 정파에 의해 독점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많은 회의가 들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소수 '선구자'들이 다수 국민들을 이끌어 가는 엘리트주의 정당이 아닙니다. 다수의 대중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고, 그들이 정치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사회의 구조를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민주노동당의 모습이 아니었던가요?

 

민주노동당은 문상객 하나 없는 장례식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3일 임시당대회에서 표결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대의원들.
3일 임시당대회에서 표결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대의원들. ⓒ 진보정치 정택용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보다 정파 이익을 우선하는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국민을 위한 공당이 아닙니다. 이러한 진보의 탈을 쓴 수구적 모습에 대해 국민들은 진작부터 우리에게 경고카드를 내밀어 왔습니다.

 

가슴 아팠던 대선참패 이후 당이 무언가 느끼길 바랐습니다. 뽑을만한 정당이 없다는 국민들의 절규에 찬 요구를 떠받드는 진정한 쇄신이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두 달도 채 안 되어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이 보인 행보는부끄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두 달 가까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대선참패의 정치적 책임을 떠안는 사람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수를 점하고 있는 자주파 당원들은 그동안의 패권주의적 작태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을 감싸기에 급급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선 참패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진정성 있는 쇄신 보다는 감정적인 몰아세우기로 일관했습니다. '종북주의 때문에 망했다', '김정일 추종세력은 광신도'라는 식의 지극히 정략적인 공세만이 난무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문상객 하나 없는 쓸쓸한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임시 당 대회는 원수 같은 당내 두 정파 모두의 승리였습니다. 한 쪽에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당내 패권을 다시 한 번 장악한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쪽에게는 왜 분당해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확실한 명분을 제시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민주노동당이 정파들의 사익을 추구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구적 정당이었습니까.

 

정말 이제는 질렸습니다. 그 대립 속에 저와 같은 젊은 평당원은 당 내에서 어떠한 존재였습니까? 무슨 이유로 이토록 '진보적이지 않은' 정당에 몸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탈당 말고 제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과연 존재할까요?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민주노동당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민주노동당은 이 땅의 차별받는 노동자, 도시빈민, 농민 이른바 민중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이었으며 자랑스러운 이름이지 않았습니까? 일한만큼 대접받는 세상,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꿈을 모아 힘겹게 만들어진 정당 아닙니까? 서민정당, 민중정당이 어찌하여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는 분열로 치닫고 있는지, 고개를 들기 힘든 심정입니다.

 

탈당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소위 평등파만이 아닙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만든 진보정당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를 통해 일궈낸 최초의 진보정당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아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진보정당의 기본 가치가 훼손되고, 기존 당 질서가 순전히 '정파싸움'으로 발전 원동력을 잃어갔고, 당내 소수 계층들은 그저 수단에 불과했음이 증명된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제가 당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임시 당대회에서 증명됐지요. 현 상황은 몇몇 정파 간의 타협으로 치유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버렸습니다.

 

외람된 말일 수 있으나 '민중의 희망' 민주노동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던 보수 세력의 음해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누구를 탓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이제 사랑했던 민주노동당을 떠나려고 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 이 순간, 지난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뽑아달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외쳤던 말들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저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제가 뽑아달라고 호소했던 민주노동당이 지금의 민주노동당과 같은 것일까요?

 

진보정당의 가치를 부여잡고 기다리겠습니다

 

 3일 오후 2008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안건을 설명하고 있는 정종권 집행위원장.
3일 오후 2008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안건을 설명하고 있는 정종권 집행위원장. ⓒ 진보정치 정택용

 

지금은 떠나지만 민주노동당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신은 가져갑니다. 비상식적인 정파 대립 속에 묻혀 있던 소중한 가치까지 버리고 갈 순 없습니다. 당가 속에 묻어있는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란 사회적 정의를 위한 가치는 어떤 위치에서든 우리가 간직해야 할 진보의 모습입니다.

 

민주노동당이 했던 지난 7년간의 경험은 정말 소중했습니다. 헛된 시간들이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척박한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서 진보정당도 대중적 인기몰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2004년 총선에서 목격했습니다. 더불어 진보 세력에게도 대중적인 스타 정치인이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밑거름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진보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청년실업, 양성평등, 환경문제 등등 진보의 어깨에 짊어질 짐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이 위기는 역설적으로 거대한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겠지요.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외치는 우리끼리의 진보가 아니라 카드빚과 자녀 학비에 절망하는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진보정당이 탄생해야 합니다. 저는 숨죽이며 기다릴 것입니다. 투명한 진보, 순수한 진보를 기치로 세운 정말 좋은 진보정당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념과 사상의 잣대보다는 진보의 정진을 고민하는 그런 정당 말입니다. 그리고 미력하나마 그 '올바른 진보'의 싹을 틔우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좁은 공간이 아닌 너른 광장, 삶의 현장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송주민 기자는 민주노동당 동작구위원회 대학생 평당원이자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민주노동당#평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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