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우가 도서관에서 골라든 책 제목, Flotsam, 낯선 단어다. 사전을 찾아보니, '표류물, 바닷가에 떠밀려온 잡동사니'라는 뜻이다.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지나가는 뻘건 다홍색 표지 중앙에는 볼록렌즈같은 까만 원이 있다.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낯선 제목과 낯선 표지였지만, 저자의 이름을 보고 망설임없이 빌려왔다.
저자 데이비드 위즈너(David Wiesner)는 칼데콧 메달을 2번 (<이상한 화요일 Tuesday> 1991년, <아기돼지 세마리 The Three pigs> 2002년), 칼데콧 어너를 2번 (<구름공항 Sector 7> 2000년, <자유 낙하 Free Fall>1989년)이나 받았으며, 최근작인 <표류물 Flotsam>에도 2007년 칼데콧 메달 수상,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최고의 아동그림책(Best Illustrated Children’s Book Awards)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
미국에 온지 한달 쯤 되었을 때, 중고시장에서 우연히 <이상한 화요일>을 구입하게 되었다. 바로 다음 날로 도서관에서 그의 작품을 모조리 빌려와, 넋 나간 듯이 보고 또 보았었다. 아동용 그림책이지만, 그의 책에는 어른들도 단숨에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글 없는 그림책 <표류물 Flotsam>은 그간의 어떤 작품보다 상상력과 깊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국내 번역판의 제목은 '시간상자'이지만, 원본의 맛을 살리기 위해 '표류물'이라고 표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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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otsam"의 속표지: 제목처럼 바닷가에서 주워모은 잡동사니 표류물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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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파도에 밀려 바닷가에 쓸려온 온갖 표류물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다. 소라껍질, 동전, 불가사리, 나무조각, 열쇠... 등등. 이번에는 ‘멜빌- 수중카메라’ (Melville: underwater camera) 라고 적힌 상자를 발견한다('바다'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작, <모비 딕>의 저자 멜빌이 연상되지 않는가?).
사진관에서 필름을 인화해 보았더니 사진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경이로운 바닷속 모습을 담고 있었다. 다홍색의 책 표지는 그 첫 번째 사진으로, 빨간색 물고기들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이다. 중앙의 검은 원은 물고기의 눈이었고, 그 속에 사진을 찍고 있는 카메라의 모습이 담겨있다. 여기서 이 놀라운 사진들에 대해 묘사하여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서점에 들러 <시간상자>(베틀북)를 들춰보시기 바란다. 탄성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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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otsam"중에서: 수중카메라가 찍은 여러 사진들 중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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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상자>라고 번역한 이유는 이 마지막 사진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에서도 <표류물 Flotsam>을 ‘사진 속에 사진이 있고, 사진 속에 또 사진이 있는 책’이라고 부른다. 3살짜리 쩡우에게도 이 마지막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라는 뜻이다. 수중카메라가 찍은 환상적인 바다세계는 너무 작거나, 너무 크다. 우리가 실제 볼 수 없는 놀라운 크기의 세계다.
우리 눈에 매우 익숙한 동양 여자 아이가 어떤 남자아이의 사진을 들고 있다. 누구인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낯설지 않은 배경과 얼굴들이다. 다른 사진들이 수중카메라가 지나간 놀라운 '장소'들의 모음인 반면, 이 한 장의 사진은 '시간'의 모음이다. 적어도 백 년의 세월 속에서 수중카메라가 만난 열 명의 아이들에 의해 소중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니,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작품이다.
책의 제일 앞 장, 속표지에는 소년이 모아둔 여러 잡동사니 ‘표류물’들이 있다.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수중카메라도 어른들에게는 그저 그런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소년의 부모님도, 해안경비대 형도, 사진관의 누나도 이것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호기심과 순수함으로 그 속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들만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속의 친구들과 함께 이 멋진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어릴 적의 말랑말랑했던 감성이 다 굳어버린 내게 이 소중한 비밀을 나누어 주었다. 책의 뒷표지 저자소개란에 실린 사진처럼, 그것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수영복차림의 5살짜리 데이비드 위즈너이다. 우리집 꼬마들을 통해서도 새로운 비밀을 엿보게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