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에서 유명한 오천항으로 가다보면 도로변에 도미부인 사당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정절사, 백제시대 정절의 상징인 도미부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입구 삼문에는 도미부인 祠宇라고 적혀 있고 삼문을 지나면 있는 정절사 내부에는 도미부인상 영정이 모셔져 있다. 바로 옆은 도미공과 도미부인 묘소가 있다. 사실 도미부인 이야기는 알아도 이 곳에 도미부인과 관련된 장소가 있다는 것은 찾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오천면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도미부인 이야기 도미는 백제 한성 부근의 벽촌 평민이었다. 그러나 의리를 알고, 그 아내는 아름답고 행실이 곧아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개루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도미를 불러 말했다. “무릇 부인의 덕은 정결이 제일이지만 만일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좋은 말로 꾀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 도미가 이에 말하기를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아내같은 사람은 죽더라도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를 시험하기 위해 개루왕이 도미를 머물게 하고 왕의 신하 한 사람을 왕으로 속여 도미의 아내에게 보냈다. “도미와 내기를 하여 내가 이겼기 때문에 너를 궁녀로 삼게 되었다. 너의 몸은 내 것이다.” 도미의 아내는 자기 대신에 몸종을 시켜 왕을 대신 모시게 하였다. 뒤늦게 속은 사실을 안 개루왕은 화가 나 도미의 두 눈알을 빼고 사람을 시켜 작은 배에 띄워 보냈다. 한편 도미의 아내는 궁을 탈출하여 강가에서 통곡하니 빈 배 한 척이 오기에 타고 천성도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고구려 땅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삼국사기> 권 48 열전 제8 '도미(都彌)' 오천면과 천북면 일대에는 도미부인 이야기와 관련된 지명들이 남아있다. 도미가 살던 포구는 도미항이고, 도미의 아내가 출생한 섬은 보령호 안쪽에 미인도(일명 빙도)며, 도미부인이 눈 먼 남편을 생각하며 올라 한 없이 기다리다 눈물을 흘렸던 산봉우리는 상사봉이라 전한다. 보령 관아문과 성곽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는 보령 관아문이 있는데 조선시대 보령현의 외곽에 쌓았던 보령읍성의 남문 문루 건물로, 세종 13년(1431)에 현감 박효성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정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양편의 기둥을 성벽 위에 걸쳐 세워 성곽의 일반 문루처럼 가운데 1칸만 통행하도록 되어있다. 앞면에 ‘해산루(海山樓)’라는 현판은 명필 이산해의 친필이라고 하며 바로 뒤에 보령중학교가 있다.
보령 성곽은 조선 태종 원년(1400) 봉당성을 없애고, 세종 12년(1430) 최윤덕·박안식이 새로 터를 잡아, 서산 군수 박눌생· 보령현감 박효성과 힘을 합하여 돌로 쌓아 올린 성이다. 문헌에는 성의 둘레 630m, 높이 3.5m이며, 성문 3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인 옹성 2개가 있고, 성안에 우물 3개, 성밖에 주위에 물길을 만든 도랑 600m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안에는 주포초등학교와 보령중학교가 있고, 동쪽과 북쪽에는 성벽이 잘 남아있다.
바로 옆으로 보령을 다스렸던 현령들의 송덕비가 늘어서 있고 비머리에는 재미난 조각들이 많은데 용머리 조각이 두드러진다.
보령중학교내 오층석탑 보령중학교 교정에는 오층석탑이 있는데 원래 진당산 서쪽 기슭의 옛 절터에 묻혀있던 것을 1974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원래는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놓여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4층까지만 남아있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있으며, 몸돌은 면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층급받침이 4단씩이고 지붕돌의 반전은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홍예문이 아름다운 오천성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중종 5년(1510)에 성을 쌓아, 고종 33년(896) 군대 처소가 패쇄될 때까지 서해안을 방어하는 성의 역할을 해왔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두었는데 모두 없어지고, 서쪽에 홍예문만이 남아있다. 아마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홍예문일 것이다. 주변 바다를 관측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경치 또한 아주 좋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보령만의 산수가 가장 좋다할 정도로 망망한 서해바다가 주변을 감싸고, 대천 해수욕장의 머드팩 축제만 생각했지 역사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유적을 만나고 나니 또 새롭게 보령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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