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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사람 솜씬데도 한 사람이 빚은 듯 크기와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채반 가득 담긴 만두를 장독대에 올려 놓고 얼리고 있다.
네 사람 솜씬데도 한 사람이 빚은 듯 크기와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채반 가득 담긴 만두를 장독대에 올려 놓고 얼리고 있다. ⓒ 김정애

1년에 두 차례 설날과 추석, 명절 준비를 위해 시댁에서 1박을 하는 것을 동서와 난 동계, 하계 극기 훈련이라 표현한다. 

지난 6일은 2008년도 동계 극기 훈련을 떠나는 날. 5시 30분 알람소리에 잠은 깼지만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과 달리 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뒤척인다. 동서네가 일찍 온다고 했는데….

더 이상 늑장을 부려선 안 되겠기에 벌떡 일어나 찬물로 세수부터 하고 아우네보다 먼저 도착할 생각에 채비를 서두른다. 미리 장을 봐다 싸 놓은 짐 보따리를 남편과 나눠 들고 집을 나섰다.

어머님 댁은 아파트보다 추운 단독주택이라 평소에 입지 않던 내의까지 챙겨 입고 단단히 무장을 했음에도 해가 퍼지기 전이라서인지 차가운 공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이른 시각이라 도로는 한산했지만 차창 유리의 뿌연 성애가 자꾸 성가시게 한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파란 신호등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도심의 외곽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기만 했다. 유난히 뻥 뚫린 도로, 단숨에 달려 도착한 시각은 8시경.

일찍 온다고 한 동서네가 먼저 오지나 않았나 싶어 집 앞에 주차된 차들을 눈여겨 살펴본다. 낯익은 차가 없음에 1등으로 목표지점에 도착한 마라톤 선수마냥 안도와 함께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일찌감치 자식들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신 어머님이 벌써들 왔냐며 반기신다. 노인네 혼자 계신 집이라 그런지 집안이 썰렁했다. 도착하자마자 일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져 간 짐을 풀어 정리를 하고 있는데 뒤따라 동서네가 들어온다.

동서 역시 형네보다 먼저 오려고 했는지 나를 보자마자 “형님네 차가 안 보여서 저희가 먼저 왔다고 생각했죠~” 하며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우린 시댁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형넨 아우보다, 아운 형네보다 서로 먼저 가려고 서두른다. 늦기라도 하면 미안한 마음에 더욱 솔선수범하려 애를 쓴다.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우리의 동계 극기 훈련은 시작되었다. 어머님 댁 안마당, 땅 속에 묻힌 항아리에서 방금 꺼낸 딱 먹기 좋게 익은 새콤한 김장김치는 곱게 다지고 삶은 숙주나물과 당면은 숭숭 썰어 파 마늘을 넣고 갖은 양념을 고루 하여 빈대떡 재료를 만든 다음 큼직한 피자 팬 두 개를 나란히 준비한다.

 곱게 다진 김장김치, 채썰어 볶은 양파, 두부, 삶은 당면과 숙주나물 그리고 파, 마늘,참기름, 후추, 깨소금을 넣은 만두속.
곱게 다진 김장김치, 채썰어 볶은 양파, 두부, 삶은 당면과 숙주나물 그리고 파, 마늘,참기름, 후추, 깨소금을 넣은 만두속. ⓒ 김정애

하나는 동서, 또 하나는 내 차지, 어머님은 손이 크셔서 해마다 양을 줄인다 하시면서도 말씀뿐 늘 그대로시다. 방앗간에서 갈아 온 물에 불린 녹두를 되지도 질지도 않게 하여 조금만 간을 한다. 이미 재료에 양념과 간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널따란 피자 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녹두 간 것을 국자로 떠 원을 그리듯 둥글게 펴 놓고 그 위에 재료를 얻고는 다시 한 번 녹두를 끼얹듯 하여 애벌부침한 것을 나의 팬으로 옮겨 충분히 익히면 맛있는 빈대떡이 완성된다. 

허리를 펼 겨를도 없이 화장실 가는 일 외엔 꼼짝도 못하고 몇 시간을 기름 냄새를 맡으며 녹두빈대떡과 동그랑땡 그리고 생선전 등을 하고 나면 다음은 손이 많이 가는 만두 빚기가 시작된다.

요즘은 만두피를 사서 쓰기도 하지만 시어머닌 아직도 밀가루에 끓인 불을 부어 익반죽을 해서 일일이 밀대로 밀어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시며 굳이 힘든 방법을 고집하신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은 반죽을 밀기 좋게 손으로 편 다음 밀대로 밀어 동글동글하게 만두피를 만든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은 반죽을 밀기 좋게 손으로 편 다음 밀대로 밀어 동글동글하게 만두피를 만든다. ⓒ 김정애

만두 속은 빈대떡 재료에다 두부와 양파 채 썰어 볶은 것을 첨가시키면 맨입에 먹어도 맛이 있다. 세 동서 중 막내는 맞벌이를 하기에 두 동서만이 마주앉아 반죽을 밀대로 밀어가며 빚노라면 좀처럼 만두 개수가 늘지를 않는다. 그런데 어머님이 거드시고 느지막이 막내까지 합세를 하니 속도 푹푹 줄어들고 금방 채반 가득, 쟁반 가득 냉동실에도 만두가 넘쳐난다.

 냉동실에서 얼린 만두가 쟁반에 수북이 쌓여있다.
냉동실에서 얼린 만두가 쟁반에 수북이 쌓여있다. ⓒ 김정애

만들어진 만두는 바로 냉동을 하거나 장독대에 내다 놓으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언다. 한참을 만들다보니 속도도 붙고 모양도 제법이다. 네 사람 솜씬데도 한 사람이 빚은 듯 크기와 모양이 거의 일정한 채반 가득 놓인 만두가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무리 봐도 예쁘다. 

1년에 두 차례 동서들과 동침을 하며 보내는 극기훈련,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종일 허리 펼 새도 없이 힘은 들지만 동서지간에 우애를 다지는 덴 그만이다.


#설날#만두#밀대#만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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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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