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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음력설을 맞아 고향으로 떠난 호치민시의 외곽은 한산하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 나오면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음력설 하루 전, 그믐날 저녁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사람들은 시내에서 열리는 공연을 구경하기도 하고 온통 불빛으로 장식한 도로를 거닐며 설날 잔치 기분을 만끽한다. 나도 이국에서 맞이하는 음력설을 인파에 휩쓸리며 즐겨본다. 자정에는 불꽃놀이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같이 잠 많은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음력설을 맞아 시내 구경을 나온 사람들
 음력설을 맞아 시내 구경을 나온 사람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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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은 솜사탕 만드는 아저씨의 대목이기도 하다
 음력설은 솜사탕 만드는 아저씨의 대목이기도 하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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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 어제 심심풀이로 집사람과 둘이 빚은 만둣국으로 아침을 먹으며 음력설 아침을 맞는다. 꽃 전시회를 구경하려고 시내로 향했다. 겨울이 없는 베트남에는 유난히 아름다운 꽃이 많다. 한국에서 귀하게 여기는 난 종류도 많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꽃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에는 꽃 잔치가 자주 열린다. 베트남 내륙에 있는 ‘달랏‘이라는 도시에서 매년 열리는 꽃 잔치는 텔레비전에서 중계할 정도로 유명하다. 또한 각 지방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풍성한 꽃이다. 베트남에 온 이후로 점점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꽃 전시회장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올해의 주인공 '쥐 가족'
 꽃 전시회장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올해의 주인공 '쥐 가족'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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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전시장에는 꽃 항아리도 있다.
 꽃 전시장에는 꽃 항아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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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도자기 기술은 대단하다. 그래서 그런지 도자기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베트남의 도자기 기술은 대단하다. 그래서 그런지 도자기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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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베트남에 오기 전에는 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막연히 '꽃은 아름답다'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사진기에 꽃을 담은 적은 별로 없다. 그러한 내가 꽃에 푹 빠진 적이 한 번 있다. 서부 호주 황량한 들판에서 호주 원주민과 함께 생활할 당시였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1년에 한 번 만발하는 야생화를 본 것이다. 노란색, 보라색 등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한 들꽃이 무리를 이루어 들판을 가득 메운 경치는 장관이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공주가 춤을 추는 꽃밭을 상상하게 하는 경치다. 이 들꽃을 보려고 서부 호주의 행정중심지 '퍼스'에서는 관광버스를 운행한다. 심지어는 호주의 다른 도시는 물론 유럽에서 관광객이 찾아올 만큼 멋진 풍경이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흙바람이 흩날리는 황량한 광야를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이며 꽃동산으로 바꾸던 야생화가 눈에 선하다.

호찌민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난.
 호찌민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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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국을 연상케하는 사진사. 사진기가 없는 가족일까? 곱게 차려입고 나와 사진을 찍고 있다.
 오래전 한국을 연상케하는 사진사. 사진기가 없는 가족일까? 곱게 차려입고 나와 사진을 찍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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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시는 음력설 휴일에 시내 한복판 도로를 막고 꽃 전시회를 한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올해의 주인공 ‘쥐’가 사람을 반긴다. 도로를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꽃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많은 것은 ‘난’ 종류의 꽃이다. 꽃 색깔도 다양하다.

어렸을 때 흔히 보았던 봉숭아 꽃, 한국의 시골길을 생각나게 하는 코스모스, 언젠가 보았던 외국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해바라기 꽃,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맨드라미 등 많은 꽃이 정성들여 전시되어 있다.

인상적인 것은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볼 수 있는 벼를 흙에 직접 심어 놓고 그 옆에는 추수한 낱알도 모아 전시하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벼를 전시해 놓은 것을 보면서 베트남사람의 쌀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한 곳에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나무다리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건너게 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줄을 서서 기다리며 건넌다. 농촌 체험을 하는 곳인 셈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꼬마 아가씨들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꼬마 아가씨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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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보는 도시 어린이들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보는 도시 어린이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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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전시장은 사람으로 붐빈다. 베트남 전통복장을 한 여인네와 아이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외국인이 사진기에 이국의 모습을 담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람들은 꽃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많은 사람이 디지털 사진기로 찍고 있으나 가끔 필름을 사용하는 사진기를 이용해 찍는 사람도 보인다.

특히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직업사진사들이다. 유니폼을 입고 손님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물론 필름을 사용하는 오래된 사진기를 사용한다. 어렸을 적에 남산공원 등에 가면 사진사 아저씨들이 사진을 찍어주던 모습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디지털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으니 사진사 아저씨들이 필요 없을 때가 곧 오리라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다. 

향 연기 자욱한 사원에서 한해의 소원을 기원하는 사람들.
 향 연기 자욱한 사원에서 한해의 소원을 기원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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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석양이 든다. 복잡한 전시장을 빠져나와 천천히 호치민 시를 집사람과 함께 걷는다. 많은 오토바이가 전시장 쪽으로 계속 오고 있다. 아마도 호치민 시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시내로 나오는 모양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 보인다. 호기심에 가보니 사원이다. 절 같지는 않고 힌두교사원을 생각나게 하는 건물이다. 건물 밖에는 향을 비롯해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향에서 나는 연기 때문에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다. 오늘이 음력설이라 더 붐비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코끼리 상을 만지며 그들만의 소원을 빌고 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사람에게 평안함과 행복이 깃들기를 빌어본다.


태그:#베트남, #설날, #호치민시,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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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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