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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로살 행사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9일 오후 2시 경기도 파주 '보광사' 설법전 안, 어색한 한국어로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티베트력 2135년을 맞아, 네팔 이주민 노동자들 주체로 열리는 로살(rosar)맞이 히말라야불자회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로살(rosar)이란, 쉽게 말해 티베트의 '설날'이다. 티베트에서는 음력 1월 1일부터 15일까지 새해 명절인 '로살'을 세는데, 이는 티베트의 4대 명절 중 하나로 꼽힌다. 티베트 히말라야 불자들은 이때에 '푸자', '로살랍수', '샤부르' 등의 행사를 펼치면서 새해를 보낸다.

 

하지만 이주민 노동자들이 한국까지 와서 자국의 전통 명정을 챙기기는 어려운 일. 이들을 돕고자 능인선원 YBA(Young Buddha Association)에서는 3년 전부터 네팔에서 온 한국 이주민 노동자들을 위해 새해 행사를 개최해왔다. 작년까지는 네팔인들이 모여 간단하게 새해맞이를 했지만, 올해는 네팔인들이 직접 주최하여 전통 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티베트의 승려 '라마' 열 분도 함께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행사는 감사의 말씀과 식순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특히 장소를 허락해 주신 '보광사' 주지스님도 초청되어, 행사 내내 함께했다.

 

주지스님은 축사에서 "집을 떠나면 항상 고향이 생각이 자주 나기 마련인데, 이주민 노동자분들이 한국에서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게 느껴집니다"며 "또 그만큼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항상 마음의 안정과 화합을 다지고, 건강하길 바랍니다"라고 이주민 노동자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 자리에는 미국인 부부도 함께 참석했는데, 이들은 "84년도에 네팔을 여행하고 네팔에 대해 큰 호감을 느꼈습니다"면서 "그 후, 아시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다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이곳에서도 많은 정이 들었네요"라며 "네팔 행사를 한국에서 보게 된 뜻깊은 자리였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법당 내 사람들은 밀가루로 만든 과자인 '갑세'를 나누어 먹고, 얇은 스카프 '가다'를 어깨에 두르면서 새해의 행복을 염원했다. 구경하러 온 한국 불자들과 기자인 나에게까지 밝은 미소로 '갑세'와 '가다'를 건네는 모습에서 그들의 따뜻함을 읽을 수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내내 법당의 분위기는 밝았다. 라마 열 분이 티베트식 공양의식인 '푸자'를 진행하면서도 사람들은 나누어준 음식을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엄숙한 한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라마 승려들의 '푸자'는 단순히 목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긴 관으로 된 악기, 북과 비슷하게 생긴 악기, 나팔처럼 생긴 악기들을 사용해서 중간 중간 음악을 곁들이는데, 음악과 어우러진 경전 소리는 듣고만 있어도 흥이 날 정도로 경쾌했다. 한 해의 첫 출발인 새해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는 소리였다.
 

라마 승려들은 짧은 머리에 빨간 옷을 두르고 있었는데, 영화에서 자주 보던 이들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느낌에 호기심이 생겼다. 살짝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라마 승려인 우르겐(30)씨는 올해 한국에 온 지 5년째 되는 베테랑 한국어 실력자였다. 그에게 한국에 오게 된 계기를 물었다.

 

"처음엔 '만다라'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지금은 YBA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죠. 아마 2년 뒤에 다시 티베트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음식과 언어였지만 우리 라마승은 '어디서나 음식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철칙이 있기에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합니다"라면서 "한국어는 처음엔 무척 쉽게 느껴졌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네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실내 행사를 마친 후 야외로 장소를 이동했다. 부처님의 석상 앞에 음식과 향을 피우고, 라마 승려들이 경전을 읊은 후엔, 네팔인들의 민속춤인 '샤브루'가 이어졌다. 여자들과 남자들이 서로 마주 보고 어깨동무를 한 채 발을 굴러가며 서로 한마디씩 주거니 받거니 하는 춤이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놀이인 '우리 집에 왜 왔니'와 흡사했다.

 

또 밀가루와 보릿가루를 섞은 것을 하늘에 뿌리는 '잠바'라는 의식을 행했는데, 이는 조상들에게 복을 빌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젊은 네팔인들은 이 곡식가루를 서로 머리와 옷에 뿌리는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다. 우리나라도 밀가루를 이용한 게임을 하는데, 네팔과 우리나라의 놀이 문화가 많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네팔인들의 곡주인 '창'을 대신하는 쌀 막걸리와 '갑세'를 나누어 먹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막걸리를 마시면 자꾸 따라주는 통에, 집에 오는 길에 나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로살' 행사는 오후 6시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네팔인들은 추위도 잊은 채, 저녁이 다 된 시각까지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그들에게 오늘 하루는 즐겁고도 아쉬웠으리라. 

 

행사가 끝난 후 기념 촬영을 할 때에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네팔인들은 나에게 이리오라며 손짓했다.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들과 하나가 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네팔인과 함께한 시간 동안 누구 하나도, 한 번도 찡그린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 그들과 내가 보낸 하루엔 그저 자연과 하나 되는 평화로움과 유쾌함만 감돌 뿐이었다.

 

'티베트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많은 서양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에 심취한 이유도 이에 있지 않을까? 집에 돌아오면서, 언제가 꼭 한번 이들의 나라 '티베트'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김혜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로살, #티벳, #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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