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에서 군인으로!"내가 입대하고 훈련소에 있을 때 우리 신병교육대대 앞에 쓰여 있던 글귀다. 저 글귀처럼 훈련소는 단기간에 게으른 젊은이들을 전투형 인간으로 변신시키는 곳이었다. 조교들의 귀가 빠질 듯한 호통, 무자비한 얼차려, 열악한 내무생활 등은 첫날부터 우리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처음 잠자리에 든 순간, 얼마 전까지 사회인이었다는 사실이 한탄스럽게 느껴졌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제대 날짜 때문이었을까. 몇몇 동기들은 훌쩍였다. 그리고는 내일부터 시작될 고된 하루를 위해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군인에서 민간인으로!"어느 덧 2년이 지났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표현이 적당할까? 그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들은 평생을 술자리에서 쏟아부어도 모자란 것이 대한민국 남자들의 공통사항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술안주거리가 될 듯하다.
내가 제대하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2008년 2월. 나의 동생(송주후·24)이 2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무리한다. 지금은 제대를 앞두고 마지막 휴가를 나와 있다. 훈련소 때가 민간인을 군인으로 변신시키는 기간이라면, 이른바 '말년 휴가'는 군인을 다시 민간인으로 변화하게 하는 준비기간이다.
2년 동안 완벽한 군인이 되었던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은 어떠할까? 20년 넘게 살았지만 갓 제대하는 군인에게는 어색하기만 곳이 대한민국 사회다. 말년 휴가를 나온 동생은 군인 티를 벗고, 사회인이 되기 위해 어떤 사회적응준비를 하고 있을까? 훈련소처럼 고된 과정은 아닐지라도, 2년동안 몸에 배어있던 '군인물'을 빼는 과정은 쉽지 않다. 동생과 하루종일 같이 다니며, 그가 사회인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아 보았다.
제대하는 청년이 가진 것은 자신감 뿐말년휴가 나온 예비 사회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일단 대부분은 솔로다. 군인들의 90% 이상은 여자친구와 헤어진다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있다. 그래서 외롭다. 한달 내에 소개팅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코스다. 딱히 모아놓은 돈도 없다. 월급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시급으로 따지면 300원 정도밖에 안 된다(병장 월급 9만7500원. 경계 포함 하루 10시간 근무로 가정).
한참 젊은 나이. 자신을 꾸미고 싶을 때 아닌가. 그러나 가진 옷은 2년 전 입던 구닥다리 뿐이다. 그리고 전에 있던 낡은 신발, 가방 등도 성이 안차긴 마찬가지다. 2년간 격리되었던 탓에 사회란 곳도 어색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직 어리기만 한 것 같은데 좋은 시절 다 갔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는 훌쩍 지나가버리고 장래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어느덧 24살이 돼 버렸어. 나의 20대 초반은 그냥 이렇게 없어져 버린 것일까?"
말년 병장의 사회 적응기, 첫 번째 코스는 역시 학교다. 다시 시작될 젊은 날의 꿈을 펼칠 장소 아닌가. 공교롭게도 이 녀석과 나는 같은 학교를 다닌다. 오랜만에 가는 학교가 좋은가 보다. 2년 연속으로 다닌 내게는 새로울 것이 없는 우리 학교 캠퍼스를 꽤나 들뜬 표정으로 성큼성큼 거닐고 있다.
"학교 많이 변했다. 방학이라 썰렁하네. 봄이 되면 캠퍼스에 꽃도 피고, 화사해지겠지? 나에게도 봄이 올테고…(웃음)."군대 생활할 때는 지루하기만 했던 공강시간과 머리 쓰느라 골머리 앓았던 전공수업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에게 있어서 다시 시작하게 될 대학생활은 TV 시트콤에서 나오는 낭만의 캠퍼스 생활과 다름없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예비역들은 자신만은 피해갈 줄 알았던 복학생의 비애를 체험하게 된다. 대학은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에게만 열려있는 불평등한 공간이란 말인가.
이러한 사실을 아직 모르는 내 동생은 설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 학과 게시판을 확인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2008년 예비군 전입 신청'이라고 쓰인 공지사항이다. 아직 군인티를 못 벗긴 못 벗었나 보다. 그리고는 다음 학기 강의시간표 책자를 챙긴다. 곧 있으면 하게 될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서다.
학과 사무실에서 조교와 대화를 좀 나누고 싶어 했는데 아무도 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휴일이다. 그래서 발길을 옮겼다. 입대하기 전, 많은 시간을 동기들과 함께 있었던 과실을 찾아갔다. 거의 2년 만에 들른 과실. 감회가 새로운가 보다.
"여기도 많이 변했다. 다음 학기면 다시 이 곳에서 귀여운 후배들과 수다 떨고 있겠지?" 쇼핑은 최대한 신중하게, 최대한 저렴하게
말년 병장의 민간인 변신, 다음 코스는 이대 앞 옷가게였다.
"나도 이제 지겨운 군복 벗고, 좀 꾸며보자. 근데 형, 내가 봐도 잘 모르겠다. 형이 좀 골라줘." 패션 감각 없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내게 옷을 골라달라니 이놈도 참 딱하다. 어째 고르는 것마다 군복이랑 다름없이 칙칙하기만 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 또한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옷 하나 고르기가 이렇기 힘든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역시 가난한 군인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가격표! 창고정리, 가격파괴, Season-off 등의 단어가 써있는 매장만 찾는다. 그러나 50% 세일된 가격도 동생에겐 만족스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오늘 옷은 사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더 골라보고, 더 저렴하게 산다고 한다.
이대 앞을 거닐던 동생은 '무조건 만원'이라고 써 있는 가방 가게로 들어간다. 내 동생이지만 겉멋 들지 않고, 알뜰한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새로 시작되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이리 저리 참 많이도 고른다. 손에 들어도 보고, 어깨에 메어도 보고,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가 다른 가방을 들어 보기도 하고….
결국 가방 하나를 낙찰. 싼 가격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산 눈치다. 얼굴 표정이 걸어가는 내내 무척이나 밝았다.
"형 신발도 하나 사야겠어. 지금 신고 있는 게 너무 닳았어. 군화 신고 다닐 순 없잖아."그러고는 냉큼 바로 앞에 있는 신발가게로 직행한다. "아직 나에게 메이커 신발은 사치"라고 말하며 길거리에 있는 신발가게에서 신발을 고르기 시작한다. 군대 가면 철든다고 하더니 그 말이 순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랐는지 힘찬 목소리로 주인 아저씨를 부른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가격협상에 돌입했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아, 그거는 2만 8천원이야."
"그렇게 비싸요? 조금만 깎아주세요."
"안 되는데…. 그래 오늘만 선심 쓰마. 2만5천원까지 해줄게."
"아저씨, 제 시급이 말이죠. 혹시 얼마인줄 아세요? 한 시간당 300원 받으면서 막노동하고 있습니다. 나라지키는 대한민국 육군이라고요!"
"(웃음)아이고 그래 알았다. 갑자기 군대시절 생각이 나는군. 얼마면 되겠어?"
"그냥 깔끔하게 2만원에 주세요."
옆에 있던 나도 안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순진하기만 했던 이 녀석이 언제 저렇게 능구렁이가 되었는지…. 말년 병장 얼굴 두꺼워지는 것은 아무도 당할 수 없다. 결국 2만원에 마음에 드는 신발까지 골라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뭐가 있을까? 요즘 민간인들에게는 누구나 있는 것이지만 일반 군인들은 절대 소지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휴대폰이다. 동생도 휴대폰 생각이 절실한가 보다. 휴가 나오자 마자 인터넷으로 휴대폰 모델을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동생은 휴대폰 가게에 들어가서 진열되어 있는 대부분의 휴대폰을 꼼꼼하게 살폈다.
"인터넷으로 본 것과 실제로 본 모습이 많이 다르네. 나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고 싶어."투박한 군인과 예쁜 디자인의 휴대폰이라…. 어울리는 조합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동생은 기능은 전혀 보지 않고 딱 두 가지만 살폈다. 가격과 디자인. 요즘에는 공짜 폰도 많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최대한 알뜰하게 구입하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인기도 많은 법. 디자인이 예쁜 휴대폰은 대부분 가격이 상당했다.
한참을 고르던 동생은 결국 결정을 하지 못했다. 2년여 만에 새로 개통하는 휴대폰이니 만큼 신중하게 골라서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다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말하면서, 정 고르기 힘들면 천천히 구입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어학원 학원비 정도는 내가 벌어서...오늘 하루 참 많이도 걸어 다녔다. 어느 덧 어두워졌다. 다리가 아파서 어디 좀 앉아 있고 싶을 무렵, 동생은 또 다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도착한 곳은 바로 '어학원'이었다. 이 녀석은 전공이 영어영문학이다. 그래서 군 생활하면서 뒤떨어진 어학 실력을 조금이나마 만회하고자 어학원을 찾은 것이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상담하는 사람은 퇴근하고 없었다. 학원 앞에 쓰여 있는 수강 정보를 유심히 살펴보는 동생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그 앞에 잔뜩 놓여 있는 학원 선전물 및 개강 정보물을 손에 한웅큼 쥐어 들고 학원을 나왔다. 나오면서 동생은 말한다.
"등록금 이번에도 많이 오르던데…. 걱정이야. 우리 둘 대학 다니려면 학비 정말 부담 많이 될 텐데. 영어 전공자가 영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긴 하지만 학원비는 내가 벌어서 충당하려고."
이로써 예비 사회인과 함께 했던 오늘의 데이트는 끝나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생하고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녔다. 참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철부지인 줄만 알았던 동생의 새로운 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예비역 3년차인 형이 이제 갓 제대하는 동생에게 술 한잔 사기로 했다. 말년 병장 '사회적응 준비'의 마지막 코스인 셈이다.
다시 만난 덤 앤 더머, 술잔 부딪치며 '일낼 것' 다짐술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오늘 동생의 모습을 보니 내가 형으로서 별로 해줄 말도 없었다. 2년 동안 착실히 군생활 잘 하고 온 모습이었다. 동생은 제대하는 모든 군인들과 같이 자신에 차있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실 군대에 있을 때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천국이고, 꿈이 있는 곳이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하면 잘될 것 같고, 세상의 미인들은 나를 향해 줄을 서있을 것 같고, 앞으로의 인생은 밝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정말 크다. 어떻게 보면 참 좋을 때다.
이러한 동생의 기대감을 깨고 싶진 않지만, 밖에서 지내보면 민간 사회는 군대보다 더 냉엄한 곳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또한 대부분의 예비역들이 전역할 때의 초심을 잘 지키지 못하고 게을러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참 많은 방황을 했다. 오히려 군대 가기 전보다 못한 날을 보냈던 적도 꽤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한마디 던졌다.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아무리 군대 편해졌다 한들 타지 생활이 어렵긴 매한가지 아니겠냐. 하지만 밖에서 생활하다 보면 오히려 군대에서 삽질하던 때가 그리운 순간도 많을 거야(웃음). 그래도 지금 마음가짐 절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이 열심히 살아보자고."
2년 만에 다시 만난 덤 앤 더머가 무언가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송주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