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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달을먹다>는 독특한 형식미를 지닌 장편소설이다. 마치 숨은그림 조각찾기를 하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의 짤막한 서술을 통해 진행되어 나가는 소설은, 그렇기에 묘한 긴장감을 전해준다. 마치 하나하나의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퍼즐게임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퍼즐게임에 대한 소개를 하기 전에, 우선 김진규라는 독특한 여성작가의 등장을 관심깊게 봐야할 듯하다. 소설을 쓴 김진규라는 여성작가는 문학동네 소설상을 통해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여태껏 단편소설, 시하나 변변히 써본적 없던 평범한 주부가 덜컥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한 번에 덜컥 붙었다는 것이 아니다. <달을먹다>를 통해서 내뿜는 소설가의 탄탄한 '묘사와 내용전개'가 진정 놀라운 이유다.

 

<달을먹다>는 그동안 쉽게 찾아볼 수 없던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 탓에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던히 난해했다. 흐름을 조금만 놓치면 다시 앞 장부터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그런데 재밌게도, 그런 번거로움은 소설을 심사했던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심사평에는 이와 관련된 여러 지적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층위의 인식에서 <달을먹다>의 작가는 민첩했다. 내간체를 낳은 영정(英正) 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이 그 첫 번째요.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남녀의 사랑을 다루었음이 그 두 번째이며, 그 사랑의 방식의 대담함이 그 세 번째이다. 계층적 폐쇄 사회속의 근친상간 스런 모티프 이로써 작가는 소설 바둑판을 짰다.  - P246 심사평 중에서

 

하지만 형식의 불편함 속에서도,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장점들이 <달을먹다>에서는 나오고 있었다. 옛 시대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해석, 사물의 심층을 파고드는 묘사, 참신하게 까지 느껴지는 소설의 시도에 많은 칭찬을 해줘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달을먹다>는 조선 영조, 정조, 순조로 이어지는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삼대에 걸친 치명적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사랑이야기가 밖으로 조선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묘사들이 사랑이야기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조선 역사에 대해 상당한 내공을 쌓아야지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책속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불교는 믿을 것이 못되오. 또한 내가 이를 존승해 믿는 것도 아니오.-

그러니 봐달라는 왕의 간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당을 세우고 싶다는, 세워야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임금의 협박과 타협안 모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리를 건 임금과 목숨을 건 신하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런데 구원의 힘이 의외의 곳에서 뻗어왔다. 마찬가지로 반대노선을 걷던 영의정이 맘을 바꾼 것이다. 임금의 상처를 정치문제에서 분리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노정승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집현전 학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 P39

 

위의 내용은 세종과 맹사성에 대한 역사적 지식없이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달을먹다>는 굳이 그런 역사적 맥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역사의 사실만을 전달한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책의 구석구석을 차지해서 <달을먹다>의 외피를 형성했다.

 

그 단단한 외피 속 중심에 3대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겹겹히 쌓여져 있었다.  3대에 걸친 이야기, 책은 각각의 인물들의 사랑을 통해, 양반, 중인, 천민이 함께 존재했던 조선시대의 모습을 상세히 그려낸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도.

 

친정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시아버지 좌의정 김익루는 현재 진행형의 전설이었다. 아버님은 성균관 유생 시절 재생들의 자치기구인 재회의장의 였다. 사학인 서원이 발달한 데다가 왜란과 호란으로 국가재정이 궁핍하고, 극심한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유생들이 권신에게 휘둘리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던 성균관이 모처럼 임금에 의해 진흥을 꾀하던 때였다.  -P18

 

신분과 갖가지 제약이 있었던 시대, 하지만 계층을 뛰어넘고자 했던 사랑은 시대의 무게앞에 꺽이고 허다하게 상처입는다. 그런 현실앞에서 소설 속 인문들의 행동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 미치광이로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고자 했던 사람, 이들의 사랑은 슬프고 아팠다.

 

-오라버니!

 .....응?

 장가가?

 ......응

 그렇구나.

 

난아!

마비를 거스르며 간신히 돌아온 방에서 나는 차마 앉지 못했다. 나흘 후, 난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감선사에 다니러 갔다고 필순이가 일러주었다. 그 말이 하도 고마워서 하마터면 필순이를 와락 끌어안을 뻔했다. - P177

 

소설 속 난이와 희우의 사랑은 그런 얽히고 설킨 사랑이야기의 종점이다. 하지만 이들역시 다른 인물들처럼 이들이 사랑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달았다. 남매인듯 하면서 남매가 아니고, 연인인듯 하면서 연인이 아니였던 이들의 사랑은 아프게 끝이 난다. 김진규 <달을먹다>는 그 아픈 사랑의 역사를 퍼즐게임처럼 여러 개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덧붙이는 글 | 달을먹다/ 김진규/ 문학동네


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문학동네(2007)


#김진규#달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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