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보 1호인 숭례문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나 1,2층 누각이 전소돼 11일 새벽 끝내 붕괴되고 말았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이 걱정스럽게 진화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나 1,2층 누각이 전소돼 11일 새벽 끝내 붕괴되고 말았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이 걱정스럽게 진화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훼손되었다.

주요언론들은 소방당국의 발언을 빌어 숭례문 화재 발생 시 문화재청이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도록 진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초기진화에 실패하였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문화유산전문가들은 일반적인 화재와 달리 목조건축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소방차로 진화할 경우 2차적인 훼손우려가 있다며 문화재의 특성에 맞는 방재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1984년 이후 16건의 문화재에서 화재 발생

지난 1월경 문화재청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제출한  '화재 소실 문화재 보고서'에 따르면 1984년 이후 16건의 중요문화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문화재청 등 관련부처가 목조문화재의 화재예방책을 본격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다. 소방방재청은 2005년부터 목조문화재 화재진화훈련을 실시했고, 문화관광부는 2005년 5월 낙산사 화재 이후 '낙산사 화재피해복구 및 전통사찰 화재예방대책'을 내놓으면서 목조 문화재에 훼손이 적은 액체계 소화기를 배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문화재청은 2005년 6월까지 문화재 및 보관장소에 소화설비, 경비설비 등의 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2006년 2월경에는 문화재 재난위기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이 추진 운용중이라던 방재시스템의 주요 내용을 보면 ▲문중ㆍ사찰ㆍ서원 등에 첨단감시 경보장치 설치(04~08년 75개소 추진) ▲목조문화재에 방연제 도포(05년까지 2512동 완료) ▲소화전설치(05년까지 171개소) ▲화재경보시설 설치(05년까지 95개소 완료) ▲지속적인 정기 안전검사실시, 긴급보수예산 편성 운용, 최첨단 시설 설치, 문화재 종합방재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조사연구용역 실시(06년 4월) 등이었다.

그러나 2006년 5월 소방방재청의 '전국의 문화재시설 등 6307개소(사찰 4385, 목조문화재 등 1922)에 대해서 지자체(문화재)·소방 등 합동점검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목조문화재 71개소(88건), 사찰 159개소(241건) 등 230개소 329개소가 소화기 미설치, 화재경보기 불량 등 소화용수 관리상태 및 연등·촛불 등 화기취급 안전관리가 불량한 것을 드러나 시정조치를 받았다. 

당시 소방방재청은 "목조건물 및 문화재에 적응성이 있는 액체계소화기 배치, 단독경보형감지기, 수막설비(현 스프링클러설비 등 시스템 형태) 설치 및 건축물 주변 소화용수 확보(20분 이상)토록 하고, 목재 등에는 방염처리 등을 적극 권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낙산사 화재 이후 문화재청이 추진 운영 중이라고 밝힌 추진 사업과 소방방재청의 발표 내용에 숭례문 화재 손실을 막을 대비책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목조문화재에 방연제 도포였다. 방염(防炎)이란 어떤 가연성 물질을 화학적 또는 물리적로 처리하여 보통 환경조건에서 불꽃연소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나 문화유산운동단체들은 목조문화재의 특성상 수막설비 및 방염화가 최우선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목조건축물의 소실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예방이다. 즉, 도포와 방염화가 예방의 최선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계속된 주문이었다.

목조건축물의 소실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예방'

구 과학기술처 연구개발 조정실장이었던 손연수씨는 <소방안전 통권 73호>에 게재한 '목조문화재의 방염'이란 글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화염이 목조물에 접할 경우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제2단계의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바로 목조물의 방염화이다. 왜냐하면 적절히 방염처리된 목조물은 웬만한 화염에 접하더라고 그 표면에서 탄화만 일어날 뿐 착화는 되지 않으며 화염전파도 전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목조건축물의 방염화는 1986년 김제의 금산사 화재 현장에서 실증되었다고 한다.

'화재 조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금산사의 화재는 고의적인 방화였고 특히 미륵전은 강력한 화인으로 수차 방화를 시도하였으나 표면에서 탄화만 일어났을 뿐 소실되지는 않았다. 이와 같이 방염처리된 목조물이 착화가 안되고 탄화만 일어나는 이유는 인 성분이나 붕소화합물로 된 방염제로 목재를 처리할 경우 목재표면이 화염에 접하면 이들 방염성분은 목재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 열분해 과정을 변화시켜 가연성 기체의 발생을 억제하고 대신 탄화작용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목재표면의 탄화층으로 덮히게 되면 그 탄소층이 열과 산소로부터 나무의 속부분을 보호하므로 목조물의 착화와 연소를 계속 방해하게 된다.'

그런데 2005년까지 2512동에 대한 방연제 도포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에 국보 1호 숭례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숭례문의 경우 저녁 8시 이후에 사설경비업체 무인경비시스템에 의존해왔고 소화기나 야외 소화전이 전부였다.

숭례문의 방연제 도포가 되지 않은 것과 달리 제주도 소재 국가지정문화재에는 방연제 도포작업이 실시되었다. 제주시는 지난해 국가지정문화재인 제주목관아(사적 308호) 8채 목조건축물, 삼성혈(사적 134호) 내부의 13채 목조건축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연제 도포사업을 실시했다. 이는 5800여만원을 투입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장기 임상실험과 성능 실험을 거친 우수한 방연제를 선정한 것이었다. 목조건축물에 방연제를 바르면 6년간 화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국보 '서울숭례문' 소실의 책임은 당연히 문화재청에 있다. 그러나 서울시도 자유롭지 못하다.

숭례문의 소실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지만...

문화재보호법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라고 하더라도 관리단체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맡도록 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를 관리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의 관리책임은 문화재청뿐 아니라 서울시에도 있다. 그런데 서울시의 문화재보호조례나 서울시화재예방조례 어디에도 목조건축물의 화재예방을 위한 규정은 전무하다. 제주도 사례처럼 해당 지자체가 적극적인 의지만 있었더라도 목조건축물에 대한 방염처리는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부는 2007년도 '안전관리계획 추진 및 평가'에서 "문화재의 경우 재난피해시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므로 소유자, 관리자의 평소안전관리와 방재사업 확충 등 보다 체계적인 예방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2008년 국가안전관리집행계획에도 ▲문화재별 재난대응 매뉴얼 작성 ▲방염제 도포 ▲소화전·화재경보시설 설치 등 방재시설 지속 확충 ▲교육 및 안전점검 강화 등 매년 똑같은 계획만 세운 채 실효성 있는 추진은 실시하지 않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예산부족이 원인이다. 이 점은 외국에 대한민국을 홍보하거나 관광과 연계할 때만 곁다리로 문화유산을 사용할 뿐, 정작 필요한 예산이나 인력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국회와 정부의 잘못된 관행이 고쳐져야만 목조건축물, 나아가 문화유산의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숭례문은?
국보 1호 숭례문의 정식 명칭은 '서울숭례문'이다. 조선 태조 5년(1396)에 창건하였으나 세종 29년(1447)에 대대적인 개축이 있었으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던 문화유산이었다.

국보로 지정된 것은 1962년 12월 20일이다.  (참고=문화재청)

숭례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편액이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부착되어 있다. 숭례문 안내판에는 "숭례문의 편액이 여느 문의 편액과 달리 세로로 쓰려 있는 것은 '숭례(숭례)'의 두 글자가 위 아래로 있을 경우 불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로써 경복궁을 마주 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좀 더 살펴보자.
숭례문의 '례(禮)'를 음양오행에 따라 구분하면 '불(火)=남(南)'에 해당되어 '숭례= 崇禮'의 두 글자가 불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럴 경우 경복궁을 마주하는 '화산(火山)'인 관악산과 마주하게 되는 형국이 된다. 조선시대 궁궐은 목조구조였기 때문에 불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풍수지리학적 힘을 빌어 예방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숭례문은 화재로 전소되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 '생명은 힘이 세다(http://blog.naver.com/storyrange)'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문화유산연대 사무차장을 역임했습니다.



태그:#숭례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