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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그 며칠 전부터 설레기도 하고, 울렁거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하던 일이 손에 잘 잡히지도 않거니와 마음이 들썩 들썩 거려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운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 보고픈 형제 친척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져 하던 일손이 잘 잡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문 밖에 나오셔서 멀리 동구 밖을 바라보며 자식들을 기다리고 계실 늙으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마치 어린 아이처럼 힘껏 내달려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어머니에게 얼른 달려가서 껴안아도 보고, 볼도 비벼보고,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들과도 반갑게 인사하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명절이 있어서 나는 참 좋습니다. 그런 명절은 사람들에게 사치롭지 않게 소박한 부자가 되는 법을 공짜로 가르쳐 줍니다.

 

한편 세상 사람들에게 명절의 의미는 또 다른 걱정거리와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묘한 이중성으로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시댁에 가서 차례상 볼 장도 봐야 하고, 식구들 먹을 음식 장만에다 셀 수 없는(?) 상차리기와 먹은 음식 설거지 그리고 손님 치르기.

 

그밖에 뒤치다꺼리를 감당해야 하는 초인적 일꾼며느리가 되어야 하는 운명의 여자, 그 아내들은 괴로운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 따라 그를 열심히 보좌하고 아내의 명령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충복 남편들의 명절 또한 만만치 않은 ‘봉사와 헌신의 나날’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는 3남 4녀 칠남매의 막내아들로 운좋게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와 형제들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명절날이면 으레 볼 수 있는 고향 가는 차량들의 줄지은 귀성행렬, 즉 교통체증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나의 명절은 비교적 여유롭기(?)까지 하니 명절날 엄청 수고하시는 이 땅의 수많은 아들, 며느리님들께 미안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 집 형제들은 일 년이면 몇 차례 찾아오는 명절과 가족 행사를 아들 삼형제 집이 한 차례씩 돌아가며 맡아서 치릅니다. 예를 들자면, 설날은 큰 형님네서, 추석(한가위)날은 둘째 형님네서, 어머니 생신은 막내인 우리 집에서, 그렇게 하다보니 명절을 치르거나, 가족행사를 치르는 일이 그다지 힘들거나 부담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며느리들끼리 미리미리 전화로 통화하여 나누어 준비하게 되니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부산하거나 번잡스럽지 않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에게, 사람들에게 기다리던 명절(설)이 찾아왔습니다. 따뜻하고 맑은 햇살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스리 사알짝 밀쳐내고서 자박자박 정겹게 까치까치 설날이 찾아왔습니다. 6일(수)부터 10일(일)까지로 이어지는 황금 같은 명절연휴는 그간 생활의 터전에서 수고하고 고생한 많은 이들에게 마음으로라도 넉넉한 여유를 듬뿍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설 명절날은 서울 ‘천호동’ 큰 형님네서 모이기로 며칠 전부터 얘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년에 둘씩이나 며느리를 본 큰 형수님께서 새애기(며느리)들과 알아서 음식을 장만하신다며 제 아내에게는 아무런 음식준비도 하지 말고 그냥 일찌감치 오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살려 아내와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남편, 자상한 남편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깜짝 제안을 했습니다.

 

“여보, 얘들아, 오늘(2월 6일) 우리 네 식구 고궁에 나들이 가면 어떨까?”

“아빠, 어딜요? 어디로요?”

“으~응, 창경궁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데….”

“창경궁에? 여보, 그거 정말 좋겠는데요. 그래 우리 네 식구 창경궁에 나들이 가요!”

“모두들 찬성이지? 그럼 맛있는 간식 싸고, 옷 따뜻하게 입고 창경궁으로 출발해보자!”

“얏~호~! 신난다. 그치 엄마?”

“그래, 나도 너무 좋구나.”

 

아내와 아이들은 남편과 아빠의 제안을 그렇게 만장일치로 찬성해 주었습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다섯 궁궐 중에서 제대로 답사해 본 적이 없던 ‘창경궁’을 우리 가족 명절나들이의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창경궁은 가본 지도 가장 오래되었고, 어렸을 적 ‘창경원’이라 불리며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운영되었을 때 가본지라 기억도 가물가물해 언젠가 꼭 다시 가보기로 마음먹었던 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명분은 명절연휴를 맞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봉사 헌신 하겠노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주입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아침 일찍부터 각자 서로의 맡은 일을 나누어서 기쁜 마음으로 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조그만 보온병에 따끈하게 커피를 끓여 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보로 빵도 몇 개 챙겨서 배낭에 담았습니다. 혹시 마실 것이 모자랄까, 두유 몇 봉지도 배낭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목도리하고 장갑 단단히 끼고서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는 창경궁에 도착했습니다. 창경궁으로 오는 도중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 도심은 썰물처럼 차량이 빠져나가 평소와는 달리 한산한 표정이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연휴이고 비교적 이른 오전이라선지 창경궁의 홍화문 안에는 고궁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홍화문을 들어서자 저만치 멀지 않은 뒤편에 옥천교가 보이고, 또 그 뒤에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으로 통하는 제2관문인 ‘명정문’이 침착하고 절도 있는 모습으로 서서 오래 전 조선의 왕을 알현코자 찾아온 우리 집 네 식구를 반겨 주었습니다.

 

 

명정문을 들어서자 품계석이 줄을 지어서 법전인 명정전을 향해 직립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조정의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고서 임금의 어명을 받들어 뫼시는 듯한 순간의 착각이 문득 스쳐 지나갑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임금님만이 발을 디뎌 걸을 수 있는 ‘어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얼른 입에 침을 바르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중전마마, 오늘 기분이 어떠하신지요? 조정의 햇살은 괜찮으신지요?”

“호호호~ 여보, 오늘 왜 이래! 우습잖아! 깔깔깔.”

 

아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마냥 좋아라하며 웃었습니다. 나는 우리 집 쌍둥이 딸들에게도 능청스럽게 아첨했습니다.

 

“공주마마님들, 두 분 마마님들도 오늘 기분이 괜찮으십니까? 소인의 서비스가 그런 대로 마음에 드시는지요?”

“큭큭큭, 아빠! 제발 웃기지 좀 마세요!”

 

아이들과 아내와 나 우리 네 식구는 한바탕 소리 내어 명정전 앞 조정의 뜰에서 불온하게도 거침없이 실컷 웃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이들의 표정에도 아내의 표정에도 즐겁고 유쾌한 미소가 가득이 피어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명정전을 한 바퀴 돌아서 뒤편에 있는 ‘문정전’과 ‘숭문당’을 천천히 걸으며 고색이 묻어나는 단청의 아름다움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내전과 외전을 이어주는 명정전 뒤 행각의 끝 ‘빈양문’을 나서며 외전으로 향했습니다.

 

빈양문을 나서자 바로 눈앞에 오래 전 ‘영조’가 문무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며 연회를 베풀었다는 ‘함인정’이 남향을 하고 앉아 따사로이 비추는 햇살을 온전히 쬐고 있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저기 몇 발치 앞서 걸어가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내와 단 둘이서 늙으신 어머니에 대한 얘기며, 우리 새끼들 얘기,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얘기 등을 조곤조곤 맛있게 나누며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도 나도 서로의 눈을 맞춘 채 오래도록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아내와 나는 다시 걸었습니다. 함인정 뒤편에 번듯하게 자리 잡은 ‘환경전’을 보고, 그 옆에 정조와 헌종이 태어나고,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경춘전’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내는 기분이 한결 상쾌하고 가벼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상쾌하고 뿌듯했습니다.

 

명절연휴에 고궁에 들러 역사의 숨결을 더듬어도 보고, 또 평소 아내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을지 모를 생활의 고뇌를 털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오늘의 궁궐 나들이가 비로소 유의미함을 실감했습니다.

 

우리는 병자호란으로 청 태종에게 치욕의 항복을 한 ‘인조’가 환궁하여 머물렀다는 ‘양화당’을 지나고, 그 옆에 자리잡은 ‘통명전’을 스쳐 ‘영춘헌’과 ‘집복헌’이 있는 마당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곳에서 명절을 맞아 펼쳐놓은 민속놀이판에 ‘얼씨구나’ 하고 뛰어들었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아내와 큰딸이 한편이 되고, 나와 작은딸이 또 한편이 되어 윷놀이 한판을 진짜 재미나게 놀았습니다. 팽이치기도, 오랜만에 해보는 제기차기도, 흥분되어 얼굴이 빨게 지도록 신나게 놀았습니다. 아내도 너무나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고 호호호~ 깔깔깔~ 웃었습니다. 아이들도 호젓한 궁궐의 뒷마당에서 아빠 엄마와 함께 벌이는 한 판 윷놀이와 팽이치기, 제기차기를 실컷 웃으며 즐겼습니다.

 

 

나는 우리 식구들과 함께 예전 ‘자경전’이 있던 자리를 지나쳐 성종의 태실비가 있는 나지막한 언덕을 돌아 얼어붙은 ‘춘당지’ 연못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추위로 대부분 얼어붙은 연못 주위를 걷다보니 동그랗게 물이 얼지 않은 곳이 있었습니다. 우연히도 그 곳에는 무리를 지은 예쁜 원앙새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문득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 독백했습니다.

 

“이보게들, 자네들이 내 곁에 있어서 나는 참말로 행복하다네.”

 

 

소리 없이 자기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을 보며 아내가 슬며시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여기에 참 잘 온 것 같아. 한적하고 운치 있는 고궁에서 명절연휴 첫날을 당신하고 아이들하고 함께 걸으니 너무 뿌듯하고 좋네요. 나 내일 큰 형님네 가서 친척들에게 자랑할 거야. 그리고 아무리 일해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습니다. 나는 명절연휴를 맞아 여유로이 고궁을 거닐며 산소처럼 맑은 생활의 활력소를 새롭게 충전하고, 우리 네 식구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더욱 진실하게 마음에 새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고향을 찾아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서울 도심의 고궁 안에서 호젓하게 즐기는 명절연휴의 평화로움과 한가로움이 좋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6일 설 명절 연휴에 가족과 함께 창경궁 나들이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명절, 남편들도 두렵다고요> 응모글 입니다.


태그:#명절,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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