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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과 서해바다가 맞닿는 심포항
 
심포항은 만경강 물줄기가 느릿느릿 흘러와서 서해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다. 진봉반도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작은 포구다. 망해사를 나와 해발 72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인 진봉산을 가로질러 심포항을 향해 걷는다. 잠시 진봉산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서 만경들을 바라본다. 
 
참으로 광대무변이라는 단어가 실감난다. 지평선이 너무 넓고 멀어서 막막하기까지 하다. 들녘에 줄지어 선 전봇대들이 없었다면 그 막막함은 얼마나 깊고 아득했을 것인가. 너른 들판에 여기저기 흩어진 마을과 집들이 마치 꼬막 껍질 같다. 이번엔 뒤돌아서서 동쪽에서 느릿느릿 흘러오는 만경강을 바라본다. 만경강이 유장한 흐름을 멈추는 곳에서 서해바다가 시작된다.
 
 
산을 내려서자, 어민 셋이 낚시질하는 풍경이 눈에 띈다. "무슨 낚시질을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숭어를 낚는 중이라 한다. 숭어는 정약전(1758~1816)이 쓴 <자산어보>에는 치어라고 소개된 물고기이다.
 
<자산어보>는 숭어에 대해 "몸은 둥글고 검으며 눈이 작고 노란빛을 띤다. 성질이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하다"고 설명하면서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서 제1이다"라고 평한다.
 
아직 낚시를 시작하기 전이라 구럭은 비어 있다. 슬쩍 새만금방조제에 대한 생각을 떠보았더니 "반대하는 사람들이야 물고기 잡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도 보상금은 다 받았어요"라고 못마땅한 듯이 얘기한다. 작은 가치는 큰 가치에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다. 그게 세상살이의 원리다. 문제는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가없는 욕망이 그 기준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함정이 있다.
 
예전엔 백합 주산지의 하나였지만
 
 
해안을 타고 이어진 길을 따라가자 몇 집 안 되는 횟집들이 나그네를 맞는다.  더할 나위 없이 소박한 어촌 풍경이다. 아주머니들 몇이서 좌판을 벌여놓고 키조개, 소라, 피조개, 생합, 개조개, 가리비, 동죽, 새꼬막 등을 팔고 있다.
 
예전 심포항은 썰물 때면 10km의 길이나 드러나는, '돈머리'라고 부르던 긴 갯벌이 있었다. 개펄에선 갖가지 조개가 자랐다. 특히 백합조개가 유명했다. 백합조개로 백합죽, 백합국, 백합구이 등 다양한 요리를 개발해서 손님을 끌었다.
 
점심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띄엄띄엄 찾아든다. 잠시 멈춰서서 지켜보노라니, 백합과 개조개가 가장 인기다. 보통 생합으로도 부르는 백합은 껍데기 표면이 암갈색에서 회백갈색까지 다양하며 매끈매끈하고 광택이 난다. 국물맛이 아주 시원해서 술 마신 뒤 속풀이 할 때 먹으면 좋다.
 
개조개 역시 백합과에 속하긴 하지만 모시조개와 비슷한 형태로 크기가 백합보다 훨씬 크다. 맛이 좋아 구이나 찜, 국 등 다양하게 요리된다. 개조개와 비슷한 크기에 모양도 비슷한데 색깔이 약간 짙은 게 있어 "무슨 조개냐?"라고 물었더니 "빈들이"라고 대답한다. 개조개는 1kg에 만원 정도 하는데 8000원을 부르는 걸 보면 개조개보다 맛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생합은 1kg에 만원 정도 했다. 손님이 "비싸다"고 까탈을 부리면 맛조개나 동죽 따위를 덤으로 얹어서 얼른 입막음을 한다.
 
 
선착장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길거리가 한적하기 짝이 없다. 선착장 근처에 이르자 망둥어 말리는 풍경이 눈길을 잡아끈다. 망둥어는 바다와 만나는 강의 하구에서 산다.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공기호흡을 하며, 진흙 바닥을 파고들어가서 알을 낳는다.
 
망둥어를 먹어본 지 하도 오래 전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젊었을 적에 군산 부둣가에 서서 낚시로 잡아 바로 초장에 찍어 먹던 망둥어 맛은 심심하기만 했지 별맛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해풍에 말린 망둥어 맛은 어떨까. 무슨 생선이든지 바닷바람 간이 배면 진미가 되는 것을.
 
 망둥어 낚시꾼 몇몇이 지키는 선착장
 
선착장 배들은 한가로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갈매기들 역시 망중한을 즐기는 중인지 얼씬거리지 않는다. 부둣가 갈매기는 항구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선착장 끝에 이르자, 한 초등학교 어린이가 망둥어 낚시를 하고 있다. 김제시 월촌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이 어린이는 망둥어 낚시가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희한하게 미끼로 돼지고기를 쓴다. 나도 열네 살 적 군산으로 이사가서 처음 망둥어 낚시를 해봤는데, 그때는 미끼로 갯지렁이를 썼다.
 
만약 죽음을 맞는 망둥어에게 미끼에 대한 선택권을 준다면 어느 것을 선택할는지. 간척사업으로 살 곳을 잃어가는 것은 어민들만이 아니다. 빈번한 간척사업으로 망둥어들도 점차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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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바다가 제 몸을 꼭꼭 씹어 뻘밥을 만들던 곳
 
 
항구의 끝에 서자 군산 옥구면 하제와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등 고군산열도가 보인다. 실루엣처럼 아슴푸레하다. 내 젊은 날의 치기와 방랑이 얼룩진 추억의 땅이다. 문득 알 수 없는 슬픔 하나가 가슴에 와 얹힌다. 나이든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있다면 자꾸만 회고하려는 병이다.
 
아름답게 놀이 지는 바다와 번잡하지 않고 한가한 포구, 거기에 망해사라는 소박한 절까지 끼고 있어 심포항은 많은 외지인들과 이 땅의 시인들에게 사랑받았던 조용한 항구였다. 정영주 시인은 옛 심포항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바다가 제 몸을 꼭꼭 씹어서
뻘밥을 만들어 놓는다
에미가 딱딱한 밥을 씹어
여린 새끼 주둥이에 넣어주듯이
바다는 하염없이 질긴 물살을
안으로 땡기고 새김질해서
찰진 뻘 사래 긴밭을 만들어 놓는다
 
포구에 다닥다닥 붙어서
물때들고 나는 그 실한 진저리
꿈틀꿈틀 쟁기질로 뒤집어 놓는
광활의 뻘밭에 엎드려
하루치 만나를 줍는 아낙들을 본다
괭이갈매기 눈보다 빛나는
욕설의 갈고리 뻘밭에 푹푹 내려 찍으며
바다의 백합을 따는 가난한 이들
손톱과 발톱이 툭툭 잘려 나간다
하루에 두 번씩 제 몸을 씹어서 식량을 주고
허허실실 돌아서 가는 바다 앞에서
이깟 설움, 한 끼 밥도 되지 않는 이깟 설움
무엇이라고 나는 보탬도 없이
뻘밭 고랑만 뒤지다 일어선다
김 서린 아낙의 등에 뜨거운 고봉의 밥이 얹혀 있다 - 정영주 시 '심포항' 전문
 
심포는 그렇게 "바다가 제 몸을 꼭꼭 씹어서" 만들어 놓는 뻘밥이 많던 곳이었다. 그래서 백합을 캐는 아낙들의 등에 "고봉의 밥이 얹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새만금방조제는 어민들로부터 그 '뻘밥'을 빼앗아가 버렸다. 밀물 때라서 심포항의 개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어장과 개펄을 잃은 심포항은 점차 쇠락해 갈 것이라는 점이다.
 
심포항은 이제 폐점을 앞둔 도회지 점포 같다. 머지않아 이곳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움치지도 뛰지도 못하는, 할 줄 아는 거라곤 오로지 호미로 조개 캐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냥 이 자리에 주저앉아 생을 이어 가리라. 삶을 산다는 것과 삶을 견디어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이른바 삶의 질이 다른 것이다.
 
항구는 떠나려는 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래서 쓸쓸함을 액세서리처럼 달고 사는 것이 항구의 운명이다. 오후 2시, 안녕을 고하며 심포항을 떠난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이곳을 찾아와 나와 임무 교대하리라.

태그:#심포항 , #망둥어 ,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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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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