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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막대풍선을 들고 신나게 응원하는 이주노동자들
▲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붉은 색 막대풍선을 들고 신나게 응원하는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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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짜자짝 짝짝.”
“외~국사람, 좋아 좋아.”

설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던 한-투르크메니스탄 월드컵 예선전 관람 열기가 채 식지 않았는지, 닷새 만에 쉼터에서 만난 밤방(Bambang)이 장난스럽게 응원전 흉내를 내며 인사를 건네 왔다.

설 연휴를 앞두고 월드컵 예선전 티켓을 후원해 준다는 곳이 있어서 버스를 빌려 축구장으로 향했다. 다들 자신들이 평소 좋아하던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는 듯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경기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응원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설을 앞둔 날의 쌀쌀한 저녁 날씨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어깨를 움츠린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행히 티켓을 후원해 준 곳에서 관람석마다 손을 덥힐 수 있는 휴대용 손난로를 준비해줘서, 손으로 부비며 응원을 하는 동안 점차 추위에 적응이 되었다.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앞좌석에서부터 함께 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건네진 것이 있었는데, 투르크메니스탄 국기와 투르크메니스탄을 상징하는 녹색 막대풍선(에어 방망이)이었다. 졸지에 투르크메니스탄 응원단이 된 셈이었다.

그런데 막대풍선과 국기를 나눠 준 이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평소 좋아하던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을 시작하더니, 어느새 한 입으로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다. 게다가 뒷좌석에선 언제 준비했는지 빨은 악마 티셔츠를 갈아입고, 붉은 색 막대풍선을 들고 신이 나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쉼터 식구들이었다.

날씨는 추워도 응원은 한다
▲ 콧물이 날만큼 날씨는 추워도 응원은 한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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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축구가 그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이 특이했던지 축구협회(KFA) 소속 기자가 캠코더를 들고 인터뷰를 청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신이 나 응원을 하던 그들은 기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마냥 웃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운동장 전광판에 응원을 하는 외국인들이 모습이 비치자, 빨간 막대 풍선을 들고 응원하던 이주노동자들이 더욱 큰 목소리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장난스럽게 외치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 소리를 다들 따라하는 통에 배꼽을 잡아야 했다.

“마아~숙(masuk) TV"

우리말로 하자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하는 꼴이었다. TV에 얼굴 비친다고 응원에 열을 내는 그들의 순박함을 느끼며, 평소 좋아하던 선수들이 골을 잡을 때마다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숙 TV'를 외치며 응원했던 한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TV 나오는 게 그렇게 신나요?” 그런데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선 TV에 한 번 나오면 돈 빌리기 쉬워요. 하하” “그럼, 한국에서 돈 빌려야 할 일 있어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신나서요”

‘언론이 갖는 공신력 때문인지 몰라도 인도네시아에선 방송을 탄 사람이 돈을 빌리자고 하면 쉽게 빌려주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12번째 태극전사’를 자처했던 이주노동자들과의 신나는 응원전을 마치고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도 응원구호는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짜자짝 짝짝.”
“외~국사람, 좋아 좋아.”
“마아~숙 TV."

동행했던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도 역시 응원 구호가 심심찮게 흘러 나왔다. 얼마간 응원소리를 기분 좋게 더 들어야 할 것 같다.
운좋게 정면에서 골 넣는 장면을 잡았다.
▲ 설기현 득점 장면 운좋게 정면에서 골 넣는 장면을 잡았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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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킥하고 달리는 모습
▲ 이영표 프리킥하고 달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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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월드컵예선,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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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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