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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신 : 14일 새벽 1시] "후손 생각해 회사 그만두고 왔다"

강을 섬기는 경부운하 예정지 도보 순례 참가자들이 이틀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명상을 하고 있다
▲ 이들은 어떤 기도를 했을까? 강을 섬기는 경부운하 예정지 도보 순례 참가자들이 이틀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명상을 하고 있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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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가 되자 25여명의 순례단원 모두가 용화사 임시 법당에 모였다. 첫날인 어제의  다소 어수선하기도 했던 분위기와 달리 오늘 저녁은 순례단원들 스스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이명박 운하'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눴다.

먼저, 단장인 이필완 목사를 시작으로 한마디 씩 발언했다.

"도보순례에 참여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뒤집어졌다. 내가 관절염, 고혈압, 당뇨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 순례를 마칠 때쯤엔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오늘 이틀 째 걸었는데 무릎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

종교인들 모두 각 분야에서 '한 말씀'하시는 분들이기에 발언 시간마다 도보순례에 참여하게 된 계기, 참여에 임하는 각오, 그리고 운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순례단에는 종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참가자들도 포함됐다.

"우리에게는 진정성 밖에 없다"

전북 진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박한용 씨는 "생명평화결사 소식지를 보다가 이 행사를 알게 되었다"며 참가 계기를 밝혔다.

도보순례를 하는 사람들을 돕는 지원팀 팀장 이상배 씨는 무릎을 꿇은 채 "후손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 회사도 그만두고 왔다"고 말했다. 순례단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자 앞으로 있을 도보순례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이야기 했다. 수경스님은 "쉴 때 이야기하고 걸을 때는 묵언을 했으면 한다"고 제안을 했다. 이필완 목사님 역시 "우리에게는 '진정성' 밖에 없다"며 수경스님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 목사는 "원래 묵언을 해야 하는데 <오마이뉴스>팀에서 여러 명이 함께 동행 취재하는 것이 고마워 오늘까지는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걸으면서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임시법당에서 < PD수첩 > 상영

곧, 임시 법당 내에 빔 프로젝트가 설치되고 순례단원들은 어젯밤 방송되었던 < PD수첩 >을 시청했다. 이명박 당선인이 주장하는 '대운하의 경제성'이 허구라는 것을 보여준 '현지보고, 독일운하를 가다'였다. 이명박 운하 찬성론자들의 주장과는 상반된 독일 운하의 모습이 비춰지자 곳곳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법스님은 "잘 보았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을 잘 설명한 것 같다"면서도 "생명의 가치, 21세기적 가치를 담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쪽에서 방송을 시청한 정주은 시인은 "방송을 보면서 운하의 경제적 효용성에 의문이 들었다"면서 "생명, 생태 등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까지 추진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 덧 9시가 되었다. 별다른 토론이나 논의없이 바로 묵상하고 잠자리에 들 채비를 했다. 이들은 "어제 밤에는 바닥도 울툴불퉁하고 너무 추워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다"면서 "노천 천막이었던 어제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라며 흡족해 했다. 순례단은 조용히 침낭을 덥고, 옹기종기 모여 누웠다. 올 겨울들어 가장 추웠던 두 번째 순례날도 이렇게 마무리 됐다.

김포 후평리의 맥가이버 할아버지

김포시 후평리 김재준 할아버지가 13일 오전 100일 도보순례길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을 찾아와 따뜻한 음료수를 건네고 있다.
 김포시 후평리 김재준 할아버지가 13일 오전 100일 도보순례길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을 찾아와 따뜻한 음료수를 건네고 있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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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났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도보순례 둘째 날인 13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천막을 철거하고 있는데 빨간 잠바를 입은 한 할아버지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어제 후평리에서 만났던 김재준 할아버지다.

애오개 전망대에서의 출발행사가 끝나고 순례단은 첫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사진팀, 방송팀 선배님들을 따라 차를 타고 후평1리 마을회관으로 갔다. 우리는 순례단의 첫 날 목적지인 이 곳 마을회관에서 기다리며 출발행사 기사를 빠른 시간 내에 송고한 후, 첫 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순례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으려고 했다.

마을회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혹시 인터넷이 안 되면 어쩌나, 마을회관을 사용할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마을회관 문을 열자, 우리의 걱정은 단번에 사라졌다. 사정을 말하자 마을회관을 관리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우리를 반기며 "어서 들어오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최신식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고 계신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힐끔 쳐다보니 할아버지는 컴퓨터로 메일을 보내고 계신다.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할아버지는 메신저로 채팅까지 하고 계신다. "어떻게 이렇게 컴퓨터를 잘 다루세요?"라고 물어보니 복지관에서 가르쳐 줬단다.

할아버지에게 "이 곳에서는 대운하가 건설되는 것에 대해 민심이 어떠하냐"고 물어보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운하 들어서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며 "나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조강에 운하가 건설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100일 도보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할아버지는 놀라며 "아니, 어떻게 이 추운 날에 걸어 다니고, 노숙까지 하려고 그래. 마을회관에서 자고 가면 안 되나"라며 안타까워한다. 

작업을 하며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순례단과 동행하고 있는 취재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순례단이 후평1리가 아니라 석탄4리 마을회관 근처에서 천막을 치고 자기로 했다는 것" 할아버지는 석탄4리 찾아가는 곳까지 친절히 알려주신다.  

그 할아버지가 오늘 순례단을 찾아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순례단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아침 8시부터 석탄리를 헤매고 다녔다"며 일정을 위해 출발하는 순례단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았다.

'재미있는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순례단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 일행은 봉성리의 칼국수 집 앞 도로에서 또 다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틀 동안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 고생할 순례단이 걱정되어 찾아왔다"며 순례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음료를 손수 따라주셨다.

할아버지는 또 오전에 찍었던 사진을 프린트해서 순레단에게 주셨다. 순례단원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 아래에는 '사진제공 하성면 후평리 맥가이버'라는 글까지 적혀있었다.

사실 도보순례에 동행하기 전에는, 대운하 반대 순례단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주민들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찬바람 맞아가며 100일을 걸어갈 순례단을 위해 따뜻한 관심을 가져준 김재준 할아버지의 마음에 얼어붙었던 몸이 녹는 듯 했다.

다시 길을 떠나는 순례단과 맥가이버 할아버지는 서로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3시간 후 용화사에 여장을 푼 뒤 컴퓨터를 열어보니 멋지게 디자인한 맥가이버 할아버지의 사진이 전송되어 있었다. 


기사송고 늦어진 덕에 절간에서 호강하다
공양시간이 끝났는데 이렇게 배달서비스를 해 주는 것은 용화사의 규율을 어긴 것이었다.
▲ 용화사의 만찬 공양시간이 끝났는데 이렇게 배달서비스를 해 주는 것은 용화사의 규율을 어긴 것이었다.
ⓒ 김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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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원고가 늦었다. 실시간 송고를 하기로 한 우리. 그래서 도보 순례를 하는 분들과 함께 시골길을 걸으며 그때 적은 내용들을 핸드폰을 통해 곧바로 송고했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실시간 송고가 우리 인턴기자 2명에게는 꽤나 고된 작업이었다. 날씨도 추워서 꽁꽁 언 손으로 길을 걷는 나그네들의 이모저모를 수첩에 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1신이 나가고, 오늘의 목적지인 용화사에 도달할 때까지 2신이 송고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만 바쁠 뿐, 이들의 풍경을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하기가 참 힘들었다. 원고 시간 넘기고 허둥대는 기자의 모습이 이런걸까? 흘러가는 시간 앞에 머리만 복잡할 뿐, 펜을 잡은 손은 좀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저녁 식사 시간도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김포의 용화사. 공양 때가 지난 뒤 절밥을 먹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2신을 채 송고하지 못한 우리들이 어찌 밥을 먹겠는가. 끼니를 포기하고, 오늘 걸어왔던 풍경을 떠올리며 기사 작성에 열을 올렸다.

기사 작성이 끝나갈 무렵, 절에 계시던 불자 한분이 직접 우리가 있는 방으로 상을 차려 오셨다. 공짜밥이라 직접 가서 먹어도 미안할 판인데 이곳에 직접 상까지 차려오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감사하다는 우리들의 인사에 그 분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수경 스님께서는 천리 길도 거뜬히 걸을 수 있으셔요! 잘 좀 써주세요.”

불자가 차려 온 밥상에는 끼니도 거른 채 열을 올리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환갑의 나이에도 먼 길 마다않고 떠나시는 수경 스님에 대한 사랑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저녁 굶을 것을 각오했던 우리들은 뜻밖의 진수성찬에 감탄하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절밥이라 기름진 고기반찬은 없었지만 우리를 배려하는 신자들의 사랑에 무엇보다 값진 용화사에서의 저녁식사였다.



[3신 : 13일 오후 4시 50분 김포 하성면 봉성리]

100일 도보순례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3일 오후 둘째날 도보순례를 마친 뒤 숙소인 경기도 김포시 용화사에 모여 정리모임을 갖고 있다.
 100일 도보순례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3일 오후 둘째날 도보순례를 마친 뒤 숙소인 경기도 김포시 용화사에 모여 정리모임을 갖고 있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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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점심시간. 식사를 위해 멈춰선 곳은 김포시 하성면 봉성리에 위치한 한 칼국수 집.

"오~~ 길거리에서 주먹밥으로 대충 배 채울 줄 알았는 데…."

의외다. 추위를 녹일 수 있고,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 칼국수는 '격려 순례'에 나선 어느 분이 내는 것입니다."

어제 출발행사에서 윤인중 목사는 "돌팔매를 맞을 수 있고, 모욕을 당할 수도 있다"고 애정 어린 악담을 하셨지만 이렇게 순례단을 격려해 주는 사람도 많다. '동참하고 싶으니 전체 일정을 올려달라'는 댓글도 달리고 있다.

매서운 날씨, 식당 안에 들어가 칼국수가 나올 때까지도 몸이 채 녹지 않았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자 차츰 정상체온이 돌아왔다. '격려순례'를 해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순례단은 뚝딱 칼국수 그릇을 비웠다. 몸과 마음이 함께 따듯해진다.

다시 길을 나섰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식곤증이 밀려온다. 몸도 무거워졌다.

"좀 쉬었다 갑시다!"

누군가가 소리친다. 반갑다. 휴식 시간 틈틈이 윤순영 이사장은 철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때로는 생태계 파괴로 철새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이야기, 때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철새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순례단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와~" 탄식하기도 하고 "그래요?"라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는 강·평야·철새가 김포의 3대 보배라고 말했다. 그러자 누군가 "사람은 도움이 안 되나?"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스님이 자동차에서 내리셨다. 스님은 "뜻은 함께하지만 행동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일일 순례에 합류했다. 불교 환경연대 명계환 조직팀장은 "앞으로 일일 순례에 동참할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월간 <풍경소리> 대표 김민해 목사는 "이번 순례에 참여하고 싶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사실 여기 종교인 몇 명이 100일 동안 순례에 참여하는 게 뭐 그리 큰 의미가 있겠나. 참여하지 못해도 응원해주는 더 많은 이들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강을 왼쪽에 끼고 걸으며, 연관스님은 "한강이 참 기가 막힌 강이지!"라며 한강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이 되고,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이 된다"며 "수많은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 바로 한강"이라고 말했다.

김민해 목사의 말처럼 길을 따라 걸으며 보는 한강은 확실히 달랐다. 연관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을 보니 더욱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오늘 숙소는 김포 용화사. 순례단 중 한 명인 지관 스님이 주지로 계신 곳이다. 일일순례에 참여한 허병섭 목사는 일정을 마치며 "오늘 하루, 한반도를 걸으며, 지구 위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오늘 아름다운 동행을 마친 목사님과 신부님도 지관 스님과 함께 사찰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이다.

도법스님 "어제 < PD수첩 > 브리핑 좀 해봐"
힘든 발걸음을 옮기던 순례단은 '전류리 매점'이라고 쓰인 판자집 매점에서 잠시 몸을 녹이기로 했다. 인스턴트 커피 한잔에 잠시나마 추위를 잊는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나 보았던 갈탄 난로를 사이에 두고 담소가 이어졌다.

"어이...오마이뉴스, 어제 본 < PD수첩 > 브리핑 좀 해봐요."

도법스님이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에게 운을 뗐고, 자리에 앉자마자 수경스님도 거들었다. 노천 천막에서 추운 밤을 지새느라 어젯밤 방송을 보지 못한 순례단의 주문이었다. 좁은 매점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순례단원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방송 내용을 궁금해 했다.

"어제 방송 내용은 추부길 이명박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장이 운하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면, 취재진이 이에 반대되는 독일 취재사례를 제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속도와 관광효과, 경제성이죠. 속도의 경우 갑문 1개를 통과하는 데 무려 25분이 걸리고, 반대편 대기 선박 있으면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이 당선인은 속도를 25km로 올리면 문제없을 것이라 했지만 독일 전문가는 가장 빨리 운항하더라도 시속 13km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관광 효과의 문제도 짚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측은 운하의 관광 효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독일에선 절대 새 운하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유람선들은 폐업이 속출하고 있고요. 팔라고 (배를) 내놓은 유람선 선주도 있답니다.

경제성 문제도 당초 MD운하를 만들면 경제성이 있다고 주장한 독일 회사 관계자가 등장해 과거 자신들의 평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했습니다. 지금도 운하 찬성론자들은 경제성이 높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독일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방송 내용을 간략히 전달하자 난롯불을 쬐며 경청하고 있던 순례단 사람들이 공감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마디씩 던진다.

"경부운하 생각은 딱 개발독재 시절 발상이지."
"왜 자꾸 순리를 거스르고 거꾸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과연 < PD수첩 >을 많은 국민들이 보았을까. 운하에 대한 조그마한 진실이라도 알려졌으면 하는 것이 이들의 작은 바람이었다. 매점 안 분위기는 갈탄 난로의 은근한 열기와 함께 훈훈함이 느껴졌다. 자연이 함께하고, 생명의 가치를 등에 업고 가는 걸음. 논리와 명분도 이들을 함께 따르고 있기에 먼 길 떠난 순례단의 발걸음은 결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송주민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2신 : 13일 낮 1시 김포 하성면 전류리]

100일 도보순례 둘째날을 맞이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3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 포구에서 얼음이 떠다니는 한강하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00일 도보순례 둘째날을 맞이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3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 포구에서 얼음이 떠다니는 한강하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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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8시 40분. 또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말 추운 날씨다. 겨울 철새 보금자리라는 보리밭 들판 길을 지나 한강변에 다다르니 귀가 떨어져 나갈듯하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들며 걷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펜을 든 손도 자꾸 주머니 속으로 숨어들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조금씩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취재진은 <오마이뉴스> 뿐이다. 어제 출발행사 때 왔던 50여 명의 취재진은 어제 다 떠났다. 순례 행렬도 2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길을 재촉하던 연관스님(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 수좌)이 문득 뒤를 돌아보면서 "다른 기자들은 다 어디갔냐"고 묻는다.

순례단 중 한 분은 "왜 <오마이뉴스>는 이렇게 운하에 관심을 갖냐"고 묻는다. 내심 뿌듯했다. 지원팀 중 한 분은 "내일이 지나고 나면 <오마이뉴스>도 떠나고 취재할 사람이 없어진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도보순례단은 이틀쨋날 순례를 시작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도보순례단은 이틀쨋날 순례를 시작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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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에 걸친 도보 순례 끝에 당도한 김포 하성면 전류리 포구. 얼음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상류 쪽으로 역류하고 있다. 진풍경이다. 한강 하구에서 올라온 밀물이 이곳 전류리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한강상류에서 내려온 강물과 마주치면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야생조류보호협회중앙회 윤순영 이사장은 "한강 하구에서 얼어붙은 얼음이 밀물에 밀려 4m 정도 높이로 밀려오면서 얼음이 뒤집히는 소리가 날 때도 있다"면서 "조강 쪽에 용강갑문이 설치되면 이곳은 담수호로 변해 썩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이사장은 이어 "수심이 깊어 보이지만 평균 수심은 4m 정도"라며 "5000톤급 배가 다니려면 강바닥을 한참 파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철새와 야생동물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이곳은 고니가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이 뒤집어지니까, 강바닥에 있던 먹이들이 강물 위로 뜨니까 조류들의 먹거리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와 군사작전지역인 김포시 하성면 둑길을 걸었다. 철책 너머로 보이는 한강. 나는 강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해병대원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촬영을 저지한다. 안타까움을 안고 자리를 옮겼다.

걷다 보니 빈 공터가 나왔고, 그곳에서 흐르는 강물을 구경했다. 추위 속에 강은 반쯤 얼어붙어 있었지만 물살은 제법 빨랐다. 자연의 흐름을 막는 대운하의 물살도 이렇게 빠를까. 어젯밤 < MBC PD 수첩 >에서 방영된 독일 운하의 정체된 물살이 불현듯 떠올랐다.

강가에는 떼 지어 돌아다니는 청둥오리도 보였고, 강가 반대편 먼 곳에는 새로 지은 일산대교가 보였다. 이곳에 운하가 생긴다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한강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될까. 윤 이사장이 설명하고 있는 철새와 야생동물들을 계속 볼 수 있을까.

[1신 : 13일 오전 9시 45분 김포 하성면 석탄리]

100일 도보순례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3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석탄리에서 둘째날 도보행진에 앞서 각자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100일 도보순례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3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석탄리에서 둘째날 도보행진에 앞서 각자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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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 찾아 떠난 도보순례 둘째 날 아침 해뜨는 모습
 '생명의 강' 찾아 떠난 도보순례 둘째 날 아침 해뜨는 모습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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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도보순례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천막으로 가보니 순례단들의 얼굴이 모두 꽁꽁 얼어있었다.

이원규 시인에게 물었다.

"간밤에 춥지 낳으셨어요?"
"머리가 빙빙 돌아."

수경스님께 "편히 주무셨어요?"라고 묻자 "편히 주무시기는 무슨…, 얼어 죽을 뻔 했다"고 하신다. 인턴기자들이 "간밤에 MBC < PD수첩 >에서 운하와 관련한 방송을 했다"고 하자 순례단들이 모여들어 "(방송이) 어떻게… 잘 나왔냐?"고 묻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던 최종부 신부와 찍히던 이원규 시인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신부님, 모델료는 나중에 청구하겠습니다."
"수고료도 나중에 청구하겠습니다."

'종교인 순례단'이라고 해서 엄숙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화기애애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 메뉴는 떡국이다. 이필완 단장이 식전기도를 한다. '여러 종교인이 모이면 어떻게 기도를 할까?' 궁금했는데 갑자기 노래를 하신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갖듯이. 밥은 하늘입니다.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것."

목사님의 노래실력도 좋지만 가사가 참 좋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을 나눠 먹는다.

순례단 참가자들이 떡국 등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순례단 참가자들이 떡국 등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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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끝나자 순례단은 줄지어서 밥그릇에 떡국과 밥, 김치를 담는다.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다고 우리 인턴기자 두 명은 차례를 기다렸다. 순례단 참가자들이 "이런 밥 생전 처음 먹어보지?" "서 있지 말고 이리 따뜻한 곳에 와서 앉아 먹으라"고 권유하신다.

식사를 마치자 지원팀이 설거지를 위해 수세미를 찾는다. 박남준 시인이 나무에 열려있던 수세미를 잘라낸다. 그걸 발로 자근자근 밟아 코털 깎는 가위로 잘라난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다시 어리둥절해진다. 옛날에는 이 수세미를 지금의 수세미처럼 썼단다.

자연에서 맞는 하루하루는 오염도 공해도 없다. 지원팀은 "수세미 안 사길 잘했네"며 웃는다. 뒷정리를 하고 천막을 철거한 뒤에는 둥글게 모여 아침체조를 한다. 간밤에 얼어버린 몸을 풀기 위함이다. 곧 이필완 단장의 '훈화 말씀'이 이어진다.

"출발이 반입니다. 어젯밤 처음 노숙을 했는데 발가락이 조금 시린 거 빼고는 괜찮았습니다. 오늘이 두 번째 출발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걸어나갑시다!"

순례단은 김포 하성면 석탄리에서 전류리로 발길을 옮겼다.

덧붙이는 글 | 송주민 홍현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경부운하,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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