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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타러가는 길 산 중턱인 중천문에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맞은 편은 그대로 절벽이다.
▲ 케이블카 타러가는 길 산 중턱인 중천문에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맞은 편은 그대로 절벽이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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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한국에 가질 못하고 중국에서 설을 보내게 되었다. 한국에 사는 아들이 오기로 해 무엇을 하고 지낼까 궁리하다 작년 설에 가려다 자동차 고장으로 가지 못한 태산(泰山)에 다시 가기로 했다.

'티끌 모아 태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는 말 등으로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익숙한 태산은 내가 사는 청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동성 태안에 위치해 있어 꼭 한번 가고 싶었는데 여러 번의 시도에도 가지 못한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설 이틀 전부터 갑자기 큰 눈이 내려 도로가 온통 눈 천지다. 태산은 눈이 오면 입산금지다. 게다가 쌓인 눈 때문에 공항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들이 타고 올 비행기가 지연된다는 소식까지 접하니 태산에 올라 새해 일출을 보겠다던 소망은 이번에도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밖을 내다보니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도로의 눈은 녹기 시작한다. 좋은 예감에 우리는 아들이 도착하면 바로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아들이 도착하자마자 재회의 기쁨을 나눌 새도 없이 서둘러 길을 떠났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까지 춘절 휴가로 뻥 뚫려있어 예정시간을 앞당길 줄 알고 기뻐했는데 초행길이라 길을 잘못 들었다. 깜깜한 밤중이 되어서야 태안 시내에 도착하니 이미 산문은 닫혀있다. 산 정상에 있는 호텔에 묵고 새해일출을 보기로 한 계획은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생각하고 가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태산 역시 중국인에게 그런 산이다. 이번엔 기필코 태산에 올라 그 유명한 '태산 일출'을 보며 새해 소원을 빌어보리라 다짐했지만 천지가 아무에게나 그 비경을 보여주지 않듯 태산의 일출 또한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모양이다.

태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풍경은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과 기암이 눈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 태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풍경은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과 기암이 눈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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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태산입구 매표소 앞에는 입장권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120위안(약 1만 5천원)의 입장료는 너무 비싸다. 청도의 근로자 월 기본임금이 760위안(약 9만 5천원)인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꿈도 못 꿀 큰돈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것을 보면 '명산에 위치한 사당에서 제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 짐작할 수 있다.

등산이 익숙지 않은 우린 일단 버스로 산 중턱까지 갈 수 있는 천외촌(天外村) 코스를 택했다. 그곳에서 걸어서 정상에 오를 것인지 다시 케이블카를 탈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생각보다 그리 아름답지 않다. 비싼 입장료가 슬그머니 아까워진다. '그래도 중국명산 오악 중 제일이라는데 뭔가 있겠지'라며 내심 기대를 해 본다.

버스가 내려준 곳은 중천문(中天門)이다. 이제 여기서 거의 수직으로 난 십팔반(十八盤)의 계단을 이용해 정상에 오르든지 아니면 케이블카를 타고 편안히 가든지 결정해야 한다. 우린 편한 길을 택한다. "죽어라 일했으니 이럴 때나 편해 봐야지"라는 동생의 한마디가, 너무 쉬운 길만 택하는 것 같아 어쩐지 머뭇거려지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남천문에 이르니 편히 올라온 우리와 달리 상당수의 사람은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올라오고 있다. 더욱이 조상에게 드릴 커다란 향과 지전(紙錢)을 싼 붉은 보따리를 짊어지고 아이까지 동반한 모습에 공연히 미안해진다. 태산에 한번 오르면 지상에서 10년 장수한다는 옛말이 있다던데 혹시 그 때문에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부끄러운 마음을 엉뚱한 것으로 합리화시킨다.

 저 붉은 보따리 안에 조상에게 드릴 '지전'이 들어있다.
 저 붉은 보따리 안에 조상에게 드릴 '지전'이 들어있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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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문 바로 아래에는 십팔반 계단이 있다. 거의 수직에 가까워 그냥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 남천문 바로 아래에는 십팔반 계단이 있다. 거의 수직에 가까워 그냥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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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하사(碧霞祠)에 다다르자 평소 다른 관광지에서 보던 모습과 상당히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원의 남쪽 마당가 벽에 큰 글씨로 만대첨앙(萬代噡仰)이라 쓰여 있고 그 앞의 작은 누각에선 붉은 불길과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오른다.

이곳이 조상을 위해 준비해온 지전(紙錢)을 태워주는 곳이다. 마당에는 준비해온 지전을 차곡차곡 쌓아 보기 좋게 만드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금방 타버릴 것인데도 온 정성을 다해 가능한 보기 좋게 만든다.

대부분은 얇은 황색 종이에 동전이나 지폐의 모양을 인쇄한 것이지만 두꺼운 은박지 금박지의 사다리꼴 모양도 보인다. 곱게 접어진 그 많은 것을 하나하나 입으로 불어서 배 모양을 만드는 손이 발갛게 얼었다. 이 추운 날씨에 보통 정성이 아니다.

 준비해 온 '지전'을 다시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다.
 준비해 온 '지전'을 다시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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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에게 드릴 노잣돈을 태우는 곳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지전들이 활활 타고 있다. 저 불길이 하늘에 닿아 후손들의 정성이 조상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일까?
▲ 조상에게 드릴 노잣돈을 태우는 곳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지전들이 활활 타고 있다. 저 불길이 하늘에 닿아 후손들의 정성이 조상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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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지전은 얼마나 합니까?
"정해진 가격은 없고 파는 이가 값을 부르면 그 값을 주고 삽니다. 절대 값을 깎으면 안 됩니다."

- 지전을 태우는 일이 조상을 위한 일입니까? 아니면 자손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까?
"두루 다 좋은 일입니다. 저승의 조상에게도 좋고 자손도 복을 받습니다."

- 이렇게 많이 태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이 태울수록 좋습니다."

- 특별히 여기까지 와서 태우는 이유가 있습니까?
"태산이 가장 사자(死者)와 가까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오악(五岳) 중 으뜸이란 이유가 혹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예부터 중국인들은 죽으면 영혼이 태산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만큼 태산은 모든 중국인들의 신앙이며 성지인 것이다.

발길을 돌려 옥황정(玉皇頂)에 들어서자 마당에는 커다란 향을 태우며 복을 비는 사람들이 또 줄을 지어 서 있다. 마당 가운데 '泰山極頂1545米'라 쓰여 있는 비석 앞의 조그만 돌 항아리를 겨냥해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동전을 던진다.

동전이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태산의 최정상을 나타내는 비석을 기점으로 둘러쳐진 자물쇠 무더기 또한 서로 언약의 맹세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큰돈을 주고 사서 매달아 놓은 것이다. 연인이나 동업자들이 주로 하는 행위라 한다.

 태산극정이라 새겨진 비석을 두른 자물쇠 무더기가 인상적이다.
 태산극정이라 새겨진 비석을 두른 자물쇠 무더기가 인상적이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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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타파할 미신이라며 사당 등을 모두 불태우고 이런 행위자를 고발하던 무시무시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은 많은 돈을 들여 복을 빌기에 여념이 없다. 추운 날씨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영험한 곳을 찾아와 소원을 비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상께 차례도 못 지내고 관광길에 나선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민망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맘속으로 기도하며 저들의 간절한 소원도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그나저나 가난한 인민은 복을 받기 위해 어찌해야 하나? 자본주의의 위력은 이제 기복신앙에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한다. 그래서일까? 뒤뜰 장독대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빌던 예전 우리네 신앙이 훨씬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태산 #기복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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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면서 오블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란 방을 마련하고 타국살이의 고단함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운영한 지가 일 년 반이 되었으나 글쓰기에 대해 늘 자신이 없어 좀 더 체계적이고 책임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시민기자 활동을 신청합니다. 주로 사는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주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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