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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오는 3월 1일 FC 서울과 미 LA갤럭시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할 데이비드 베컴의 참석 여부를 놓고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과정이 꽤 복잡합니다.

 

일단 인수위 측의 해명을 돌아봅시다. 인수위는 축구팬들의 반응을 포함해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데이비드 베컴이 방한한다면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래서인지, 데이비드 베컴의 참석을 크게 바라면서, '참석 여부'에 대해 강한 어조를 띠고 있습니다.

 

"베컴이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결론이 내려진 것이 아니라 논의 중인 사안이다. 소속팀이나 한국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베컴 선수의 에이전시와 접촉해 '(취임식 참석을 위해) 며칠 당겨서 올 수 있는지'를 물었다. 베컴 선수가 오게 되면 국민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수위는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참석 의사를 타진해보려고 했다고 합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의 해명을 들어봅시다.

 

"구정 연휴 전 참석 의사를 묻는 문서를 보냈다. 아직 결과에 대한 답변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공식 답변이 없었다는 점을 인수위가 '불참은 사실이 아니'라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고 있습니다. 다음은 베컴의 한국 측 매니지먼트 소속사라고 할 수 있는, LA 갤럭시와 FC서울의 친선경기(코리아투어)를 성사시킨 세마스포츠마케팅 이성환 이사의 해명입니다.

 

"베컴 선수가 시합에서 선수로 뛰어야 하는 데다 팀 구성원들을 두고 따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 일정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베컴의 취임식 참석 여부를 영국 현지 매니저에게 이메일로 확인한 결과 '모른다'고 부인했다. 인수위 쪽의 초청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취임식 참석에는 부정적 입장이었다. 워낙 세계적 스타이다 보니 '영화 촬영을 했다'거나 '에이전시를 바꿨다'는 등 베컴 선수에 대한 소문이 많다. 특히 내한 소식에 소문이 더 무성해졌다."

 

LA갤럭시 구단 선수들은 오는 26일에 입국합니다. 한 구단 소속 선수로서 혼자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아무리 세계적인 대스타라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요소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일단 대한축구협회는 '답변이 없다'는 것으로 베컴이 혹시라도 불참할 것에 대비해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고자 발을 빼는 기색인 것이 흥미롭습니다.

 

베컴의 현지 매니저와 한국측 매니지먼트 사의 해명도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영국 현지 매니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고, 한국 측 매니지먼트 사의 반응은 부정적입니다.

 

이 매니지먼트 사는 LA 갤럭시의 코리아투어 일정 자체를 성사시킨 당사자로서, 베컴에 따른 이런저런 소문들이 확대돼 베컴의 실제 행적에도 영향을 미치면 곤란한 입장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컴의 행적에 따라 이벤트 자체의 성공 여부가 갈리진다는 것은 축구팬들이라면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베컴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어디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수위가 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답변이 없다"를 "논의중"으로 해석하면서, 이벤트 몰이에 나선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베컴이 혹시라도 취임식에 불참하면 또 무슨 비난을 들으려 하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그동안 인수위가 섣부르게 다양한 정책 방안을 발표하거나 말만 앞섰다가 누리꾼들의 비난을 자초했던 사례가 너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베컴'에 목 매달아야 하나

 

제가 인수위 관계자였다면, 굳이 베컴의 참석 유무로 논란을 자초하기보다 미국의 풋볼스타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참석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을 것입니다. 취임식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이슈도 만들어야 하는 인수위 입장에서는 유명인사를 참석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마이클 잭슨이 참석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참석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 마이클 잭슨을 만나 '평화' 등의 이슈에 대해서 논의를 주고받았던 전적도 있기에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월드컵 4강'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취임식 참석이 명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데이비드 베컴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축구선수로서의 유명도를 따진다면, 차라리 박지성 선수의 상징성을 살려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나 웨인 루니를 참석시키려 노력하는게 낫겠죠. 물론,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인스 워드'를 거론한 것입니다. 취임식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면서 명분을 챙기고 싶다면, '하인스 워드'를 부각시키는 것이 나았습니다. 물론, '포토제닉'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혼혈인에 대해 얼마나 냉대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코시안'에 대한 각별한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취임식과 취임사도 준비한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이명박 당선인이나 인수위의 태도로 보건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숭례문 개방 행사 당시에도, 시민에게는 출입을 통제시킨 2층 누각에 올라 활짝 웃으며 시민들을 내려다보는 이명박 당선인의 모습이 담긴 언론의 기사와 촬영 사진도 인터넷 여기저기에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이명박 당선인이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핸즈 프린팅 행사에, '영화인'이 아님에도 행사장에 함부로 들어가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는 것도,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슨 의미겠습니까? '전시행정'에 치중하는 경향이 역시나 강해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이쯤 해서 생각나는, '히딩크 사건'

 

 2002년 7월 3일 이명박 당선인(당시 서울시장)이 히딩크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에게 명예서울시민증을 수여하는 공식행사에서 아들과 사위에게 기념촬영을 하게 해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다.
2002년 7월 3일 이명박 당선인(당시 서울시장)이 히딩크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에게 명예서울시민증을 수여하는 공식행사에서 아들과 사위에게 기념촬영을 하게 해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옆에 있는 사진을 보신 분이라면, 이명박 당선인이 서울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있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한 명예서울시민증 수여 행사가 떠오를 것입니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시킨 행사장에서, 서울시청 관계자가 아닌 이명박 당선인의 아들과 사위가 난입해 절차를 무시하고 사진을 찍은 사건입니다. 긴말할 것 없이, 자세한 정황이 담긴 기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 3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히딩크 감독의 명예 서울시민증 수여식장에서 자신의 아들과 사위를 불러 기념촬영을 하도록해 구설수에 올랐다.

 

게다가 이날 행사는 서울시의 4급 이상 간부들이 참석하는 '공식행사'였는데도, 이 시장의 아들(24·미국 유학 중)이 붉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해 히딩크 감독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시 홈페이지 등에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빗발치고 있다.

 

이날 이명박 시장 아들의 '깜짝 기념 촬영'은 히딩크 감독의 답사와 네덜란드 대사의 축사가 끝난 직후인 오후 4시 50분경 발생했다. "질문이 있는 기자들은 질문을 하라"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명박 서울시장은 "아, 잠깐만"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저지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사회자는 "사진촬영을 하겠다"라고 바로 말을 바꿨다. 물론 미리 발표된 식순에 따르면 '기념촬영'을 해야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촬영 참여자였다. 이 시장은 히딩크 감독과 명예시민증을 들고 사진을 찍은 뒤 주한 네덜란드 대사 그리고 시청 직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촬영은 그쯤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시장이 다시 객석 어딘가로 손짓을 하자 축구공을 들고 있던 붉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20대 중반 남성과 양복차림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무대쪽으로 나갔다. 이들은 다름아닌 이 시장의 아들과 사위였다. 히딩크 감독과 촬영을 마친 이 시장의 사위는 "회사까지 빼먹고 왔다"고 말하면서 흐뭇해 했다.

 

결국 이날 예정돼 있던 히딩크 감독과 기자들의 일문일답은 이 시장의 공적·사적인 사진촬영에 밀려 취소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또 있었다. 수여식에 앞서 히딩크 감독과 이시장,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함께 한 공식접견에도 이 시장의 '대학생 아들'이 참관했다는 것이다. 물론 화제가 한국의 문화 등 다소 가벼운 내용이긴 했으나 엄연한 '공식접견'이었음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후략)" -<오마이뉴스> 2002년 7월 4일자 기사 <이명박 시장, 공식행사를 '집안일'로 착각'히딩크 행사'에 아들·사위 불러 기념촬영>의 일부

 

이 사건을 기억하는 누리꾼들이 아직 많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리꾼들은 "이명박 당선인의 아들과 사위가 아버지에게 베컴의 참석을 조른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남깁니다. 심지어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취임식에도 참석해 베컴과 기념촬영을 할 것이냐"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지능과 상식을 가진 한은, 한번 호되게 비난을 들었는데 설마 하니 또다시 저런 일을 벌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컴'이라는 이름에서의 상징성이 과연 대통령 취임식과 연계될 수 있느냐는 의미에서, 저 지적들도 반드시 무시하기만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행정'은 이제 그만

 

뭔가를 보여주려면, 그 안에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메세지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보여주는 당사자가 얼마나 실천적인 삶을 보여주었는지도 중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이매진 광고'도, 당시에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과거가 부각됐기에, 대중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인은 이미 대선후보 시절부터 숱한 검증 논란과 다양한 '소수자 인격 무시 발언'으로 논란을 유발한 적이 있었으며, 최근까지도 '영어몰입교육'이나 '숭례문 복원 국민성금'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한다면, 취임식에 누가 참석하든 비아냥성 발언을 남기는 이들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청계천 복구공사 당시 출토된 조선시대 유구를 향해 "웬 돌덩어리"로 취급했다는 이명박 당선인, 대통령 취임식도 하나의 문화임을 판단한다면, 이명박 당선인이 그동안 문화나 소수자에 대해 보인 탁한 견해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데이비드 베컴을 초대하고 싶습니까? 이명박 당선인이 취임식에 초대해야 할 사람이 과연 '데이비드 베컴'일까요? 이것도 혹시 '전시행정'은 아닌지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인수위#이명박 취임식#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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