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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인이 작업실로 쓰던 방에 놓여 있는 사진.
▲ 김남주 시인. 김남주 시인이 작업실로 쓰던 방에 놓여 있는 사진.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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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습니다. 하루종일 불어대던 칼바람이 조금은 잦아드는 밤입니다. 아침무렵 전화가 왔습니다. 후배인데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전화입니다. 뭔가 할 말이 있었나 봅니다. 한 시간쯤 후 그는 삼겹살과 술 두병을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서둘러 군불을 지피고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이 그를 잊게 했다

아침도 거른 채 낮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글을 부탁하러 집을 찾아왔습니다. 거절하기엔 명분도 없고 하여 그러마 했습니다. 원고에 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마신 술은 그가 애초 가지고 온 술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술잔은 속절없이 비워졌습니다.

후배를 떠나보내고 어떻게든 술을 깨보려고 했지만 알콜에 젖은 몸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한숨 자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머리만 아파오고 잠은 좀체로 오지 않았습니다. 이른 잠을 청한 어머니의 방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문 앞에 가서 들어보니 어머니는 꿈을 꾸고 계셨습니다. 그 꿈이 어떤 꿈인지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오후엔 박새 한 마리가 유리창을 들이박고 즉사를 했습니다. 눈 깜짝 할 순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간 산촌의 추위는 체온 잃은 박새를 금방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박새가 갑자기 유리창을 들이받은 이유를 짐작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잃은 박새를 양지에 놓아 두곤 영혼이라도 깨어나길 기다렸습니다.

2월 13일의 하루가 그렇게 덧없이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김남주 시인의 기일이 이맘 때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 달력을 보니 이런, 오늘이 그의 기일이었습니다. 하마터면 그의 기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그냥 넘길 뻔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잊혀질 그가 아님에도 시인 김남주를 잊을 뻔했던 것입니다.

김남주 시인 10주기 추모 모습.
▲ 추모제. 김남주 시인 10주기 추모 모습.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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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로 살았던 혁명시인 김남주, 그가 그립다

민족시인 김남주. 그는 생전 전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남긴 정신은 아직도 이땅을 지키고 있는데,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잊혀져야 할 시인이 아님에도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암, 그래야지요 그래야 쓰고 말고요
헌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걸요
부잣집 침대 위에서 태어난 아기나
염천교 다리 밑에서 태어난 아기나
똑같이 평등하게 태어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암,그래야지요 그래야 쓰고 말고요
헌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걸요
집없이 평생을 떠도는 도붓장수 박서방이나
대궐같은 기와집에 사는 왕서방이나
허가 없이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서는 안 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암, 그래야지요 그래야 쓰고 말고요
헌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걸요
물쓰듯 돈을 쓰고도 남아도는 재산 때문에
고민이 태산 같은 자본가 장 아무개나
무노동에 무임금이라
다음날 아침이면 다섯 식구 끼니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은 노동자 김 아무개나
언제라도 아무 데라도 나라 안팎을
여행할 자유가 있으니까요

그뿐이 아니랍니다 자유대한에서는
예 예 연발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는
다문 입에 쌀밥이 보장되고
아니오 아니오 목을 세워 고개를 쳐든 사람에게는
벌린 입에 콩밥이 보장된답니다
참 좋은 나라지요 우리나라
자유대한 길이길이 영원히 빛나라지요

-김남주 시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전문

며칠 전 칠순의 노인이 법이 평등하지 못했다며 숭례문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로 인해 숭례문은 6백여년의 역사를 마감해야 했습니다. 숭례문 앞에 국화가 놓여지고,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상여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숭례문이 민중의 애환을 지켜본 산 증인이라고 추켜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일까요. 숭례문이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민중의 삶과 함께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겁니다.

숭례문이 어떤 문이던가요. 조선조를 지탱했던 사대문 중에서도 정문입니다. 행세깨나 하지 않으면 출입도 할 수 없던 문입니다. 도성 안에 살지도 못했던 힘없는 민중들에겐 숭례문 만큼 두려운 존재도 없던 시절을 요즘 사람들은 잊었나 봅니다. 시구문으로 드나들 수 밖에 없었던 이름없는 민중들을 기억조차 하지 않나 봅니다.

꼭 1년 전쯤엔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이가 판사를 향해 석궁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아 생긴 일입니다. 그로 인한 사회적 보복이 줄을 잇는 요즘입니다.

김남주 시인의 생가 앞에 있는 보리밭.
▲ 보리밭. 김남주 시인의 생가 앞에 있는 보리밭.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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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인의 시에 등장하듯 만인은 법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헌법에도 나와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 말이 만들어진 지 꽤 되었지만 요즘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인 듯 싶습니다.

평범한 이들이 투사되는 세상, 그가 바라던 세상이 아니야

지난 해 가을엔 붕어빵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근재씨가 노점상 단속으로 인해 자살을 했습니다. 하루 벌어 살기도 벅찬 이들의 죽음이라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점상 단속의 목적이 거리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는 게 이유이니 할말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 좋은 나라 맞는지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가 기억납니다. 거리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들께서 단속반의 호각 소리 한 번에 고무다라이를 이고 도망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밀수한 양담배를 파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집에서 키운 애호박이나 푸성귀 몇 단 묶어 나온 할머니들이 고무줄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 채 도망치는 모습이 우리네 민중들의 삶입니다.

그 일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김남주 시인께서 뭐라 하실까요. 답답한 일상입니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거리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 또한 김남주 시인이 알면 뭐라 욕설을 퍼부을까요. 평범한 주부였던 이랜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든 것을 알면 김남주 시인은 가래를 끌어 올릴 것 같습니다. 곱게 자란 딸들이 투사가 되어 1년 넘게 투쟁을 하고 있는 KTX 승무원들을 위해서는 김남주 시인은 또 뭐라 말할까요.

노동부가 있어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노동권이 온전히 보호되지 못하고, 여성부가 있었어도 여성은 온전히 보호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있던 여성부를 폐지하겠다는 정권까지 등장했으니 앞날이 감감하기만 합니다.

지난 해 여름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말끔하게 단장되었습니다. 시인의 손때 묻은 흔적들이 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새롭게 단장된 모습을 보며 시인의 부활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긴 세월을 독방에서 보내야 했던 혁명전사 김남주 시인이 아니던가요. 이젠 부활할 때도 되지 않았던가요. 그런 세상이 지금 아니던가요.

그가 바란 세상은 요원하기만 한데, 우리는 그를 자꾸만 잊어갑니다. 잊어야 할 것이 더 많은 세상인데, 잊을 것은 남겨 두고 잊지 말아야 할 김남주 시인이 세상 속에서 자꾸만 잊혀집니다.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김남주 시인인데, 우리는 자꾸 추억만 합니다.
 
배달되는 독촉 고지서는 쌓여만 하고, 텅빈 지갑엔 그저 주민증밖에 없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데도 우리는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목을 세워 고개 쳐들고 항거하기보다는 예, 예 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면 먹을 것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모난 돌이 정을 더 빨리 맞는다는 석공의 말을 믿기 때문일까요.

1994년 2월 14일 우리의 곁을 떠난 김남주 시인.
▲ 민족시인. 1994년 2월 14일 우리의 곁을 떠난 김남주 시인.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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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3일 밤이 깊었습니다. 이 밤 김남주 시인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요. 광주 어느 거리의 건물 계단에 앉아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듣고 있을까요. 그도 아니면 서울의 하늘을 날며 발가락으로 돈을 세고 있는 이의 품에 안긴 여자의 빨간 입술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 일도 흥미없어 폭탄주 마시며 민족시인 김남주를 추억하는 이의 얼굴에 흐르는 개기름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역겨운 세상 뒤로하고 꾹꾹 눌러 쓴 시는 '잿더미'

모든 게 역겹겠지요. 자신을 들먹이며 여자 허리춤이나 감고 있는 그들이 역겹겠지요. 참지 못한 김남주 시인이 역겹다며 감옥에서 먹었던 밥까지 토해내겠지요. 그러고는 바람에 구르고 있는 빈 담뱃갑 하나 주워 은박지에 꾹꾹 눌러 쓰겠지요.

아는가 그대는
봄을 잉태한 겨울밤의
진통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그대는 아는가
육신이 어떻게 피를 흘리고
영혼이 어떻게 꽃을 키우고
육신과 영혼이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는가를

- 김남주 시 '잿더미' 중에서

아, 이 밤 김남주 시인이 더럽고 추잡한 것을 뒤로하고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 자락에 있는 우리집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반찬으로 만들어 놓은 산더덕 무침을 안주 삼아 개소리 마저 숨죽인 동토의 땅에서 그와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걸죽하면서도 단단한 김남주 시인의 목소리를 하염없이 듣고 싶습니다.

다음 주소로 가시면 김남주 시인의 육성 시낭송 <학살2>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blog.empas.com/u90120/19326117

김남주 시인의 손때가 묻은 책들.
▲ 책. 김남주 시인의 손때가 묻은 책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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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민족시인,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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