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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6일,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두기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 후 2월 8일엔 인권위를 독립기구로 유지하는 방안에 사실상 합의하였다. 하지만 12일, 이명박 당선인은 야당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모든 협상 결과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는 최후통첩을 해왔다.

 

이에 따라, 각 인권단체는 인권위의 독립성은 정치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성명을 발표하고 13일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기구화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원광대 김선광 교수의 사회로 한상희 건국대 교수, 서경석 인하대 교수, 인권운동사랑방 최은아 활동가의 발제 및 토론으로 진행됐다. 참석자 중에는 지난 명동성당 노숙 농성에 참가했던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인권', 정치에 끌어들이지 말아야

 

이날 참가한 각 법대 교수들은 "인수위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정치적 협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며 인수위가 내세운 '인권위의 대통령직속기구화 명분'에 대한 구체적 반론을 제기했다.

 

한상희 교수는 "'소속 없는 국가기관은 위헌'이란 발상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다"라며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행정부나 사법부에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 외 모든 권한은 일괄하여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가, 행정권은 대통령이, 사법권은 법원이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권보장처럼 이 세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우리 헌법은 아무런 권한을 두지 않고 있다"며 "헌법 제정 당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고, 이제는 우리가 개정해야할 부분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정이 어렵다면 입법을 통해서라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인수위가 입각하고 있는 '헌법이 최상위법'이라는 입헌주의 또한 구태의연한 국민국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의 규정에는 '인권보장과 권력분립이 없는 사회는 헌법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헌법은 인권보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말은 현재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되어 있다"며 "한편으로는 글로벌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수주의를 놓지 못하는 인수위의 태도가 매우 모순적"이라고 비난했다. 

 

서경석 교수는 "입법, 사법, 행정 영역에 인권위원회가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인수위원회는 대통령 산하로 두려 했다"며 "하지만 왜 꼭 대통령직속기구입니까? 입법부에 두어도 되는 일 아닙니까, 평소에 생각지 못한 부분이죠?"라고 말해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인권위 독립은 인권 수호의 첫 '신호탄'

 

인권운동사랑방 최은아 활동가는 "이번에 인권위가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둔다는 인수위의 발표를 인권 후퇴의 첫 신호탄이라 여기고 있다"며 "김대중 정권과 노대통령 정권 때도 인권 보호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하물며 이명박 정권은 어떻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앞서 인권단체들은 8박 9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인권위 직속화 반대를 주장했고, 이를 통해 시민들과 공감대 형성의 계기를 만들었다. 또, 내부적으로는 각 단체가 향후 인권 수호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에 대해 한뜻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즉, 인수위가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화로 인권 탄압의 첫 신호탄을 쏘았다면, 그들은 노숙농성을 통해 인권 보호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인권 운동', 장기적 밑그림 필요

 

"우리나라에 독립적 인권위가 안착된 것은 인권 운동의 결과가 아니다. 인권 운동의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위원회는 여전히 국가 혹은 권력기관을 상대로 그 전선을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한상희 교수는 인권위가 국가기관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국가기관과 대립되어야 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인권적', '인간적', '인민적'인 인권위가 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 운동은 각 계파의 운동 진영의 발원지이고, 통로이고 축이기 때문에 전체 큰 틀 속에서 고민되어야할 먼 이야기 아니고, 결정의 가장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늘 옆에 끼고 다니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쪽에서는 인권을 이야기 하며, 자본, 권력, 상품화 하고 있다"며 "이제는 싸워야 할 적이 더 많아 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담론 생산하는 세력들을 배척하기 위한 인권 활동의 핵심 주축을 만들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은아 활동가는 인권위의 문제점을 연대의 위기와 핵심적 의지 부재, 인권운동 발현과 실천력 약화로 보고 인권운동 전반의 문제점을 다시 보아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인권위의 출범 이후, 사실 많은 인권 단체는 그들의 활동에 만족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인권위가 인권피해자의 입장보다는 권력기관의 압력을 더 신경써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날 토론회에서는, '권고'라는 소프트 파워를 가진 인권위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절한 견제와 감시로 인권위를 다독여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김선광 교수는 "우리가 인권위를 만들었음에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인권을 방치해놨다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잊었던 가치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혜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국가인권위원회, #인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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