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나를 부를 때
기꺼이 달려가는 것은
그 산에
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리울 때
내가 산으로 가는 것은
산이 두 팔 벌리고
내게로 오기 때문이다.
깊이 뿌리박힌 산을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풍부한 표정보다도 더
넓고 따스한 가슴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외로울 때
산을 찾는 것은
산이 어머니처럼 나를 안고
엉엉 울어주기 때문이다.
산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산이 우수에 찬 우울한 표정으로 젖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산이 때때로
허허허 웃기도 하고
슬픈 울음을 울기도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다녀왔던 산을
내가 다시 찾는 것은
그 산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다.
- 이승철의 시 <산(山)>모두 -
시작(詩作)노트
나는 산을 좋아한다. 바다나 강보다 산을 훨씬 더 좋아한다. 그래서 한창 무더운 여름 남들이 푸른 바다를 찾아 휴가를 떠날 때도 나는 오히려 산을 찾는다.
깊은 산 속 계곡에 안겨 있으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함마저 느낀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철도 마찬가지다. 산 속에 들면 몸은 추워도 마음은 평안함과 포근함에 젖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추운 계절에도 변함없이 산을 찾는지도 모른다. 내가 산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렸을 때부터다. 어린 시절에는 산에 오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집에서 산이 그리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 갈 수 있는 기회는 소풍을 가는 날이 아니면 산 너머 마을로 시집간 누나의 집에 갈 때뿐이었다. 그런데 소풍을 가거나 시집간 누나의 집을 가기 위해 나지막한 산에 오를 때면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산꼭대기에 올라 탁 트인 먼 곳을 바라보는 것도 그랬고 산골짜기 개울가에 앉아 노는 것도 그랬다.
산에 오르거나 산 속에 들면 마음이 평화롭고 넉넉해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공연스레 뿌듯한 것이 좋은 선물이라도 한 아름 받아 안은 느낌말이다. 그래서 산에 갈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산에 올랐다. 누나의 집을 자주 가게 된 것도 누나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고갯길을 넘어가는 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누나의 집이 아늑한 산자락에 안긴 마을이어서 더욱 좋았다. 집 뒤란에 나가면 바로 산자락이었다. 그 산자락을 조금만 오르면 어쩌다 산토끼를 만날 수도 있었고, 곱고 예쁜 산새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따뜻한 봄철이면 누나의 집을 더욱 자주 찾아가곤 했었다.
근래 3년 동안 매주 1회 이상씩 등산을 했다. 처음에는 친구 한 명과 동행이었다. 그러나 그 동행이 1년 후에는 두 명이 되었고 지금은 네 명으로 늘었다. 작년부터는 산림청이 선정한 전국 100대 명산을 목표로 하고 23번째 산까지 올랐다.
그러나 우리들이 오르는 산이 꼭 100대 명산만은 아니다. 가장 많이 오르는 산은 오히려 서울 근교의 산들이다.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그리고 청계산과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도 자주 오르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북한산과 도봉산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각각 100번 이상씩은 올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 산들은 지금도 매번 오를 때마다 항상 새로운 정감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것이 바로 산이 지닌 매력이다. 아무리 많이 올라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산이 가진 풍부한 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넉넉한 가슴으로 품어주는 포용력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산처럼 넓고 따뜻한 가슴을 가졌을까?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이 산처럼 아늑하고 넉넉한 품을 가졌을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포근하고 풍족하게 안아주는 산, 그 산을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산을 오를 것이다. 그리고 산이 나를 사랑하듯 산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변치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