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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속 작은학교' 제 4기 졸업생 다섯 명. (왼쪽부터) 박민, 이재교, 권윤진, 한동희, 홍낙현
'도시 속 작은학교' 제 4기 졸업생 다섯 명. (왼쪽부터) 박민, 이재교, 권윤진, 한동희, 홍낙현 ⓒ 김정미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은 ‘눈물의 졸업식’이었다. 내 낯빛만 보고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곧잘 아시던 선생님, 혼낼 때는 미웠지만 반 아이들을 항상 보듬어줬기에 졸업식 때 나와 친구들은,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주고  받았던 ‘정’이 가볍지 않아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이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이러한 ‘눈물의 졸업식’을 2월 14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 청소년수련관 소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대안학교 ‘도시 속 작은학교’ (이하 작은학교)가 준비한 4번째 졸업식에서 말이다.

이날 졸업을 한 학생들은 권윤진, 박민, 이재교, 한동희, 홍낙현군으로 올해 스물된 동갑내기들이다. 일반 학교 졸업생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지만 오히려 이들은 “가족 같아 좋다”고 한다.

두 달 전부터 졸업식 준비한 아이들... 자서전, 책으로 펴내기도

 다섯 아이들이 졸업 과제로 쓴 자서전. 하나로 엮어 책을 편찬했다.
다섯 아이들이 졸업 과제로 쓴 자서전. 하나로 엮어 책을 편찬했다. ⓒ 김정미

매년 졸업식마다 내용을 달리하는 작은학교는 올해 졸업식의 주제를 ‘카모밀레 이야기’로 정했다. 카모밀레란 2월 14일 탄생화인 ‘들국화’로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뜻한다. 작은학교 길잡이 교사 전상희씨는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꿋꿋한 그 모습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들국화처럼 꿋꿋한 아이들,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제4회 졸업식 안에 담겨지는 것이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소강당이 분주하다. 리허설을 준비하기 때문이란다. ‘졸업식에 웬 리허설일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피아노 연주, 영상물, 졸업생 중창 등 준비한 게 많기 때문”이라 답한다.

학생대표에게만 졸업장을 수여하고 교장선생의 인사말을 듣는 것이 전부인 다른 학교의 졸업식과 달리 작은학교에서는 모든 행사에 ‘학생’을 참여시킨다. 그렇기에 졸업식이 다가오면 학생들도 덩달아 바쁘다. 졸업생들은 ‘졸업 과제’를 준비하느라 바쁘고 재학생들은 선배들과 함께 장기자랑을 펼치느라 바쁜 것이다.

졸업생들이 두 달부터 준비했다던 졸업과제는 바로 ‘자서전 쓰기’다. 졸업생 다섯 명은 저마다 “자서전 쓰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쓴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자서전을 완성했고, 그 기록을 고스란히 엮어 책으로 출간했다.

책 이름은 <도시 속 작은 학교 졸업식>. 자서전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했던 얘기부터 첫사랑에 대한 얘기까지 죄다 들어가 있다. “그동안 거짓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살았다”는 한동희군도 자서전에서만큼은 아주 솔직했다.

‘졸업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박민군이 발랄하게 “무한 체력이니 괜찮다”고 말한다.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그다지 힘들 것은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곧 있을 졸업식 때문에 긴장되는지 박민군은 “떨려, 안 떨려, 떨려, 안 떨려”를 반복해 말한다. 그의 유머에 친구들도 덩달아 웃는다.

꿈, 기회, 책임을 준 나의 학교

 졸업 행사 중, 자서전을 읽는 졸업생. 눈물이 오가고 박수가 오갔다.
졸업 행사 중, 자서전을 읽는 졸업생. 눈물이 오가고 박수가 오갔다. ⓒ 김정미

드디어 오후 7시가 됐다. 학부모, 친구,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들의 참석으로 100석이 넘는 소극장이 꽉 들어찼다. 자리가 부족해 일부는 뒤에 서서 볼 정도였다.

졸업생 중 홍일점인 권윤진양이 ‘피아노 연주’를 하며 그들만의 특별한 졸업식은 시작됐다. 연주가 끝나고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다섯 아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나에게 꿈과 기회, 책임을 준 작은학교, 동고동락한 지도 3년이 지나 이제 졸업을 한다. 그동안의 추억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들에게 작은학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동희군의 말을 들으니 알 것 같다. “내 생애 큰 사랑을 안겨다 준 학교”라는 권윤진양의 말에서도 애정이 묻어난다.

낙타가 별명이라는 홍낙현군은 자신의 졸업을 “이제까지 한 일 중 제대로 끝맺은 최초의 일”이라 말한다.

이재교군에게도 졸업은 남다르다. “남들이 세 번 하는 졸업을 나는 한 번 하기 때문”이란다. 어릴 적, “큰아버지가 사는 필리핀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초등학교부터 다시 검정고시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온 작은학교는 외로웠던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이군은 “포기하지 않는 것, 끝을 보는 것을 이곳에서 배웠다”고 한다.

외로움을 밝혀준 희망 불빛, 길잡이 교사들의 힘 커

패션디자이너가 꿈이라는 박민군은 작은학교를 “외로운 마음 속을 밝혀준 희망의 불빛”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 10대의 가장 소중한 추억들을 작은학교가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유독 ‘외로움’이란 단어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모르는 이 ‘외로움’. 5명의 졸업생들은 작은학교를 통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외로움을 충전해 준 이는 길잡이 교사들의 몫이었다.

“기댈 수 있는 데가 없었어요. 힘들 때 옆에 있어 줄 사람도 없었고요.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았죠. 그러다 보니 제 본 모습을 잃어가고 부정적인 아이가 됐어요. 하지만 작은 학교에 들어와서 전쌤의 관심과 노력으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어요.”

졸업생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서전을 읽는 시간. 홍낙현군 역시 선생님들의 사랑 때문에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했다 말한다.

졸업생·교사·가족·친구 모두의 마음 울린 '눈물의 졸업식'

 '도시 속 작은학교'의 길잡이 교사인 전상희씨. 아이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스승이다.
'도시 속 작은학교'의 길잡이 교사인 전상희씨. 아이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스승이다. ⓒ 김정미
아니, 그런데 아이들 말에 유독히 ‘전쌤’이라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누군지 알고 보니 ‘전쌤’은 작은학교에서 8년 간 근무한 길잡이 교사 전상희씨.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사람이다.

“외박을 하지 말라고 나를 설득하던 선생님께 한번은 욕을 한 적이 있죠. 그때 상처를 받은 선생님은 일을 그만뒀어요.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울음). 선생님을 다시는 못 볼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온 선생님이 제 이름을 불러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늘 곁에서 저를 지켜봐 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권윤진양이 전씨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린다. 흐느낌이 더해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다. 이 모습을 보는 전씨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 둘 눈시울이 붉어진다.

권양이 눈물에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떨리는 음성으로 편지가 읽히는 내내, “울지말라” 위로했던 가족과 친구들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졸업생들의 때묻지 않은 눈물은 작은학교 선생님들과 제자들이 나눈 사랑의 양을 증명하는 듯하다. ‘눈물이 날 만큼’ 상대에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작은 학교의 풍경에 나 역시 울컥한다.

길잡이 교사 전상희씨도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대안학교 교사 하는 게 힘들지만 보람은 여전하다”며 “졸업한 애들을 생각하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내내 음성이 떨릴 정도다.

작은학교의 김병후 이사장 역시 “행사 내내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안 울 자신이 있었는데 눈물을 또 흘리게 한다”며 “전 선생님이 활동을 적게 해야 애들이 감동을 덜할 것”이라며 웃음으로 전씨를 달랬다.

상식을 깬 교과과목, 도보여행·흙집 보수 캠프·사랑의 쌀 모으기

아이들에게 작은학교가 남다른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상식적 수업’에서 벗어난 교과목 때문이다. 벽화를 그리고 난타를 배우며 현장에서 직접 외국인과 대화를 한다. 그리고 영상제작을 통해 협동심을 배우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들은 현장으로 나선다. 사랑의 쌀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고 삼성기름유출방제 활동에도 나섰다. 그리고 도보여행을 하기도 했다. 박민군은 “도보 여행을 통해 목표를 잡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는 체육대회와 흙집 현장 보수 캠프도 이들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작은학교의 재학생은 졸업생까지 포함해 모두 17명. 서로 친형제처럼 편하게 지낸다. 그렇기에 친형 같은 선배들이 졸업을 하는 것이 후배들은 섭섭하기만 하다.

조영인(고2) 군은 “형, 누나들의 졸업을 축하한다”며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기준(고2) 군은 “졸업하는 모습이 뿌득하다”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졸업식에는 후배들도 직접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축하한다", "사랑한다" 인사말을 건넨 후배들. <왼쪽> 조영인 (고2), <오른쪽> 박기준 (고2)
졸업식에는 후배들도 직접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축하한다", "사랑한다" 인사말을 건넨 후배들. <왼쪽> 조영인 (고2), <오른쪽> 박기준 (고2) ⓒ 김정미

작은학교의 김병후 이사장은 “세상에는 두 종류의 학생이 있다”며 “좋은 환경에 있지만 공부로 불행한 아이들, 사랑을 못 받아 불행한 아이들인데 둘 다 행복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작은학교는 아이들에게 정을 주는 역할이 잘 돼 있다”며 “이처럼 기계적 교육이 아닌 어른들의 일을 직접 경험하며 알아가는 과정이 참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이사장은 한국의 일률적 교육 현실에 쓴 소리를 했다. “작은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대학을 가서 일률적 교육을 접하면 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우려와 함께 그는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통해 정서를 넓혔다고 여기고 사회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김 이사장의 말이 끝나고 졸업장을 전달하는 순서가 됐다. 교복이 아닌 학사모와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은 전상희씨의 호명에 하나, 둘 무대로 나왔다. 전씨는 그저 이름만 부르는 것이 아닌 “뭐든지 열심히 하는”, “개성이 강한” 등의 수식어를 넣는 걸 잊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장난어린 스무살 청년들도 졸업장을 받는 순간에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졸업장을 건네는 김병후 이사장은 학생들의 등을 토닥거린다.

 부모님과 아들. 자녀의 졸업에 부모님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모님과 아들. 자녀의 졸업에 부모님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김정미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사가 끝난 후, 아주 특별한 순서가 이어졌다. 졸업생의 부모들을 무대로 모신 것이다. 무대에 선 부모들은 자녀가 건네 준 학사모를 머리에 쓰고 짤막하게 소감을 말했다.

졸업생 이재교군의 어머니 박설희(48)씨는 소감을 묻자 대뜸 “속상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묻자 “좋은 선생님이 있는 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란다. 아들만큼이나 어머니도 정이 많이 든 모양이다.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냐”고 묻자 박씨는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정미 기자는 <오마이 뉴스> 대학생 7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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