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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적 활력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 마초적 역동성 마초적 활력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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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들까지 살아 숨 쉬는 무대를 휘젓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연극의 몸이라면 스토리는 연극의 마음이다. 연극의 몸을 물질성 또는 형식이라 하고, 스토리를 연극의 마음이라 한다면, 이 몸과 맘의 낯선 결합의 몸풀기가 끝난 뒤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은 어리벙벙하다.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동안은 준비된 반응이 있을 수 없으니 감탄의 침묵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 그저 내심 띄엄띄엄 ‘새롭다!’라는 말이나 하고 말 뿐이다.

연극의 스토리 안에 잘 숨겨둔 작가나 연출 의도의 해독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시청각성에 익숙한 관객한테는 연극의 물질성이나 형식이 머릿속에 오래 살아남기 마련이다. 상징성이 도드라진 인상적인 소품들과 세련한 의상(조혜정), 배우들의 체화된 동선과 몸짓,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묶는 타악기 등의 생음악은 시청각적 이미지로 관객의 의식 속에 침투한다.

한아름 작가가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의 <삼총사>를 바탕으로 페미니즘적 세계관으로 뒤치고 서재형 연출가가 무대화한 <죽도록 달린다>는 관객한테 움직임-이미지, 활극(活劇, action)적 쾌락을 선사한다.

<죽도록 달린다>는 이미 2005년 1월 12일 리허설 도중 ‘새개념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뒤로 쏟아져 나온 이 연극에 대한 찬사는 올해 두산아트센터의 ‘아트 인큐베이팅(Art Incubating) 기획’의 하나로 재탄생, 현재까지 쏠쏠한 관객점유율이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연극의 새개념연극상 수상은, 기존 연극적 관성에 중독된 타성과 절연을 결심하고 참신한 연극적 표현을 보여주고 싶다는 무서운 신예들의 도전 의지에 주어진 것이었을 것이다.

말발굽 소리를 연상케 하는 이충우 악사의 타악음이 무대와 객석에 들판의 야성을 불러오면 우연히 만난 보나쉬(김은실)에게 첫눈에 반한 시골뜨기 청년 달타냥(이혁열)이 이 매혹적인 유부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하나’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삼총사와 함께 힘겨우면서도 신명나게 달리는 장면이 연출된다.

때론 슬로우 모션으로 때론 배우들 스스로 신체적 속도한계에 도전하려는 듯 빠른 몸놀림이 이어지는데 배우들의 몸이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일 적마다 무대 바닥 위로 농축된 땀들이 뚝뚝 떨어진다. 달타냥이 죽도록 달리는 몸짓은 극적인 볼거리다. 삼총사의 도움을 받는 달타냥의 활극성의 속내에서 유부녀 보나쉬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열정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서정주의 시 '추천사'처럼 그네는 보나쉬의 욕망 성취를 위한 날개였다.
▲ 사랑의 환희 서정주의 시 '추천사'처럼 그네는 보나쉬의 욕망 성취를 위한 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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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를 찾아오라는 사랑의 임무를 탈 없이 수행하고 나서 보나쉬가 탄 그네를 밀어주는 달타냥의 모습은 <죽도록 달린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무대 전면에 떨어진 그네가 오락가락하며 관객에 대한 돌출무대의 환영을 지우고 있듯이 젊은 유부녀와 건장한 총각의 사랑은 관습과는 동떨어진 차원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연애감정이라는 생생한 공감을 자아낸다.

경쾌 발랄한 이 연극이 비극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지점은 권력욕이 순수한 연애감정을 질투함에서 비롯된다. 보나쉬의 주인인 왕비(홍성경)는 ‘나도 가끔은 들고양이처럼 동물스런 성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을 왕에게 호소하는 궁지에 몰린 외로운 여인이다.

우연히 목격하게 된 보나쉬와 달타냥의 달콤한 밀월 만남은 왕비에게 걷잡을 수 없는 질투적 애욕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남편 왕(민대식)이 추기경(김성표)의 손아귀에 놀아나며 자신의 심약성과 성적 무능력을 은폐하고 있는 동안 소외된 왕비의 애욕은 보나쉬의 남자, 달타냥에게로 쏠린다. 한때 보나쉬를 자신의 친구라고 부르던 왕비가 이제는 연적이 되어 노골적으로 권력을 이용해서 달타냥을 강탈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또 뛰었습니다”라고 땀차게 달콤하게 속삭이던 달타냥이 왕비의 미모와 권력에 매료되어 보나쉬를 차버리자, 왕비는 왕에게 거부당한 육체의 좌절된 욕망을 보상받기 위해서 달타냥의 아이를 임신한다.

이를 알게 된 왕은 왕비에게 달타냥을 죽이라는 잔인하고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한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대신 권력욕에 사로잡힌 왕비는 바로 달타냥을 죽이지 않고 놔두었다가 왕을 칼로 살해하고 그 죄를 달타냥에게 뒤집어 씌움으로써 마침내 희구하던 '환상' 속의 권력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달타냥은 왕비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한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달타냥과의 정사로 태어난 아이가 왕위를 승계하는 잔치가 끝난 뒤, 공중에 매달린 네 개의 촛불이 여성 내면적인 공간을 강조하는 무대 위에서 가없는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왕비가 보나쉬를 만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를 맡으며 조용하게 눈을 감고 싶다”고 말한 왕비가 사랑의 배신감이란 쓰라린 고통을 주었던 보나쉬의 품에서 외로움과 분노의 삶을 마친다.

격정, 불륜, 살인
▲ 영원한 비극의 트라이앵글 격정, 불륜,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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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달린다>의 ‘마음’은 이렇듯 권력 추구에서 비롯한 관계의 배신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나이 많고 허약한 남편을 배신하면서까지 건장한 시골청년 달타냥과의 기습적인 사랑에 빠진 보나쉬가 달타냥과 왕비의 배신으로 인간사에 눈을 뜨게 되면서 내면적으로 성숙해진다.

보나쉬는 달타냥과 만나며 열정적인 사랑의 즐거움에 자신을 내던졌던 경험과 화해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모진 아픔을 주었을지언정 왕비의 고독을 이해하게 된다. 권력과 위계의 화려한 궁핍보다 더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나쉬는 한 여인으로서 왕비라는 한 여인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된다. 두 여성 사이의 우정이 깊어진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 달타냥의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에서 아이를 비닐 끈으로 설정해서 밀고 당기는 장면은 사랑조차 권력지향의 소유욕구라는 데에 생각을 미치게 한다는 점이다. 비닐은 풀어지면 다툼의 수단이 되고 뭉치면 애정의 대상이 된다.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꺼리를 제공했다는 면에서 <죽도록 달린다>는 사유의 지평을 제공했다
▲ <죽도록 달린다>의 연출가 서재형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꺼리를 제공했다는 면에서 <죽도록 달린다>는 사유의 지평을 제공했다
ⓒ 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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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달린다>의 이미지는 ‘활극성’으로 새로운 연극표현의 세계를 열치고, 이러한 동적 장치는 마초적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강조함과 동시에 그 허망함을 놓치고 있지 않다. 활동의 내면엔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은 허공에 매달린 네 개의 촛불이 흔들리며 구획하는 무대 내면의 공간처럼 불안하기는 하다. 그러나 보나쉬는 같은 여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여성 사이의 우정을 선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태그:#여성주의, #활동이미지, #삼총사, #알렉산드르 뒤마, #여자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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