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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시즌이다. 부천에 있는 모 고등학교의 졸업식도 15일 있었다. 이 학교는 2007학년도부터 남녀 공학이 되었지만, 이번 졸업생은 여학생들만의 졸업이었다.

 

졸업식장인 학교 강당의 풍경은 대체적으로 산만했다. 엄숙한 졸업식장이라는 말은 옛 사전에서나 찾아볼 만한 일인가. 그곳엔 자녀들의 졸업을 축하하려는 부모들보다도 젊은 남자아이들이 더 많았다. 저마다 머리 모양과 차림새가 한껏 독특한 그들은 졸업생들의 남자친구들이라고 했다.

 

식이 진행 되는 동안 졸업생들은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주위 친구들과 장난치는 와중에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미 입고 있는 교복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그들의 모습은 성인들의 그것이었다. 손톱과 머리 색깔은 천차만별이고, 화장을 하지 않은 아이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옆줄에 앉은 재학생들도 사정은 다를 것 없었다.

 

뒤에서 남자 아이들이 여자 친구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고 졸업생 석에서 일제히 그들을 향해 웃음소리를 보냈다. 단상에서 연설하는 선생님들이나 내빈들의 이야기가 공허하게 천장을 배회했다.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 대표의 답사 시간은 물론이고 졸업 노래와 교가를 부를 때도 졸업생들 자리에서는 단지 장난과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식이 끝나고 바깥으로 나오니 졸업생이나 그 친구들은 본격적으로 기성세대를 놀라게 했다. 운동장엔 하얀 가루들이 날아다녔다. 밀가루였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곳곳에 웬 액젖병이나 간장병 심지어 식초병들이 나뒹굴었다. 빨간색 케첩 병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들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졸업생 아이들 하나하나는 하얀 밀가루 범벅이 된 후에 차례로 다른 아이들로부터 각종 양념들의 세례를 받았다. 날씨가 추웠지만, 머리와 온 몸에 뒤집어 쓴 액체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행위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운동장을 자랑스럽게 뛰어다녔다. 처음에 말리던 부모들은 아예 멀찍이 물러서 있어야 했다. 냄새도 지독했다.

 

 

마침 옆에 계란이 들어 있는 비닐 봉투를 으깨고 있는 남자 아이가 있어서 물었다.

 

“그건 뭐 할 거니?”

“제 친구한테 통째로 뒤집어씌울 거예요.”

 

이미 그 아이의 여자 친구는 밀가루와 각종 양념들로 뒤범벅이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만 그 위에 깨진 계란이 더해졌다. 끈적한 날계란과 조각난 껍질들이 긴 머리로 흘러내리자 여자아이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욕설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깔깔거렸다.

 

졸업생 엄마가 기어이 친구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장난도 정도껏 해야지, 이게 뭐니?”

 

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이 쏟아내는 밀가루와 양념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시간이 한참동안 더 이어졌다. 보고 있는 어른들은 더 이상 그들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왜 이래야만 하는지 물었다.

 

“졸업식인데 이 정도 짜릿한 축하는 해주어야죠. 멋진 추억이잖아요.”

 

하지만 그런 식의 축하방법을 이해 할 기성세대는 없는 눈치였다. 그들은 냄새 지독한 아이들이 옆으로 지날 때마다 한발 물러서면서 저마다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장과 졸업생들은 더더욱 지저분해져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태그:#졸업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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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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