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방학을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 여행을 3박4일 동안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번 여행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딸아이가 이번에 과 수석을 해 두 번이나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그 장학금으로 여행을 다녀오면 어떨까 하고 남편이 제의를 해왔다. 그래서 아들과, 딸 그리고 나 셋이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마침 일본 여행이 꿈이었던 딸아이는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매일같이 참고 자료를 찾았다. 걸어서 여행할 곳을 먼저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는 오빠와 상의하기도 했다. 척척 진행이 잘 되어갔다. 이때를 대비해서 그동안 갈고 닦은 일본어 실력을 발휘해볼 생각에 딸아이는 더욱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예전에는 가족 전체가 여행을 떠나거나 남편과 나 둘이서 여행을 다녀왔다. 나와 아이들, 그렇게 셋이 떠나는 장거리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계획을 세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모으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뿌듯함에 내 마음도 흐뭇했다. 아이들은 내게도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얘기를 하란다. 나는 너희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정하면 좋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그럼 도쿄를 가면 어떨까? 한다. 그래서 여행지는 도쿄로 정했다. 드디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배낭여행을 떠나게 될 날이 다가왔다. 가이드는 일본을 두 번 다녀온 아들이 맡기로 했다. 인천공항을 떠나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모처럼 떠나온 여행지에 비가 내리니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싱글벙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첫날, 공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한 우리는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일본은 지하철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요금도 보통 비싼 게 아니기 때문에 웬만한 거리는 걸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일본에 도착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가는 대로 뒤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도 지하철을 이용하면 방향 감각을 자주 잃어버렸던 나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따라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오후 2시쯤 가야바초역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호텔방은 자그마하지만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의 한 면을 보는 것 같았다. 첫날은 숙소에서 가까운 곳을 구경하기로 하고 우리는 아키하바라를 향해 나섰다. 아키하바라는 우리나라의 용산전자상가처럼 전자제품이나 갖가지 다양한 물건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비가 오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좀더 일찍 해가 지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둑어둑해지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우리 라면과는 좀 색다른 라멘을 먹어보기로 결정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라멘 집을 찾아갔다. 이곳의 라면은 생면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는데 “라멘”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자판기 메뉴에 있는 이름만 보고 돈을 넣은 다음 식권 같은 것을 뽑아 주인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가게에 있던 세 사람이 갑자기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나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하지만 이내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라멘요리가 나온 것을 보고 그제서야 우리는 왜 그들이 웃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주문한 라멘의 양을 보니 기절할 만큼 많았다. 아마도 스모선수들이나 시켜먹는 요리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시킨 요리를 보고 웃었나 보다. 우리 세 사람도 한참을 웃다가 나는 아들이 시킨 좀 작은 약의 라멘을 먹었다. 아들은 내가 시킨 것을 먹기로 했다. 실컷 먹었는데도 그 양은 줄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그 라멘을 다 먹지도 못하고 잘 먹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그 집을 나와 한참을 걷고 있는데 라멘 집 젊은 사람이 비를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뛰어왔다. 그는 우리를 향해 큰소리로 “스미마셍”이라고 불렀다. “스미마셍”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실례합니다”나 “여보세요”라는 의미가 된다. 어디를 가나 조용조용 말하는 일본 사람으로서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라고 생각한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나 하는 마음에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는 헉헉 숨을 돌리며 가방을 두고 갔다고 얘기했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카메라 가방을 두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앞을 바라보니 또 다른 사람이 우리 가방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멀리 가지는 않았나 하는 마음에 먼저 사람이 우리를 향해 뛰고, 다른 사람은 가방을 들고 온 것이다. 너무나도 친절한 그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난방 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지 방안이 좀 쌀쌀하다 싶을 정도로 추웠다. 여행하기 전 일본 문화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한 딸아이는 일본은 다다미생활을 하는 문화라서 난방 시설을 훈훈하지 않게 하고 살기 때문에 아마도 호텔 역시 좀 춥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잠을 잔다며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추운 나는 겉옷을 하나 더 입고 양말을 신고 잠자리에 들었다. 양말을 신고 잠자리에 들어본 것도 처음이다. 그렇게 일본 여행 첫날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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