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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남북으로 태평양을 바라보며 길게 늘어진 나라이다. 학생 시절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로 공부했던 남미의 칠레가 태평양을 서쪽으로 바라보며 길게 늘어져 있는 것에 반해 베트남은 동쪽으로 태평양을 바라보며 길게 늘어져 있는 나라이다.

호치민시에서 기차를 타면 북쪽 끝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곳까지 1800여 킬로미터의 긴 거리를 갈 수 있다. 남북이 잘린 한국에서 기차를 타고 고작 갈 수 있는 곳이 서울과 부산 1000리길(400킬로미터)인데 이 길과 비교가 되지 않는 꽤 긴 기찻길이다.

 호찌민시에서 하노이까지 1,700 킬로 이상을 달리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는 열차.
 호찌민시에서 하노이까지 1,700 킬로 이상을 달리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는 열차.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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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에 한달 급여 챙긴 여행사 직원

'냐짱'이라는 해안 도시를 가보기로 했다. 월남전이 한창일 때 한국 신문에 '나트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곳이다. 베트남어로 'Nha Trang'이라고 표기를 하므로 기자들이 영어 발음 소리 나는 대로 '나트랑'이라고 적은 것 같으나 실제 베트남 사람들은 '냐짱'으로 발음한다. 베트남어에서 'Tr'은 'ㅉ'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냐짱까지 가는 새 고급열차가 개통되었다고 각 여행사에서는 홍보가 한창이다. 가는 길은 보통열차를 이용하고 오는 길은 고급열차를 이용하기로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여행사를 통해 기차표를 샀는데, 사온 표에 표시된 가격과 여행사에 낸 금액을 비교해 보니 한 장에 5불 이상의 차이가 난다. 완전 바가지 금액이다. 집사람 것을 포함해 왕복표 4장을 샀으니 여행사 직원은 20불 이상을 눈 깜짝할 사이에 챙긴 셈이다.

웬만한 베트남 사람의 1주일 급료다. 여행을 할 때 현지 사정에 어두워 남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새로운 동네에 와서 입장료를 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어가려고 노력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 생각할수록 손해는 내가 보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 아이를 데리고 적지 않은 짐과 함께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기차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 아이를 데리고 적지 않은 짐과 함께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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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대기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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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깨고 정각에 출발한 기차

호치민시의 중앙역은 생각보다 혼잡하지 않다. 꽤 많다 싶을 정도의 짐을 가지고 온 가족이 대기실에 앉아 있는가 하면 MP3를 귀에 끼고 음악을 들으며 기차를 기다리는 젊은이들도 있다. 가끔 큰 배낭을 짊어진 외국 배낭족들도 보인다. 여느 나라의 기차역과 다름이 없다. 굳이 다른 점을 이야기하라면 외국의 중앙역들과 비교해 협소하다는 것뿐이다.

베트남 기차는 시간을 잘 안 지킬 것이라는 내 예상을 뒤엎고 10시 5분 정각에 기차는 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호치민시의 빽빽이 들어선 집과 집 사이를 헤치며 기차는 느리게 움직이며 호치민시를 떠난다. 얼마나 자주 기차가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기찻길 바로 옆에서 기차 소음을 들으며 살아야 할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베트남 사람이 주로 이용하는 이 기차의 내부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베트남 사람이 주로 이용하는 이 기차의 내부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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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농촌 떠올리는 기차 밖 풍경

1시간 정도를 달리니 시원한 벌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차도 속도를 내며 달린다. 호치민시에서 냐짱까지 가는 기찻길은 410킬로미터 정도이다. 기차표에는 10시 5분에 떠나 오후 7시 3분 냐짱에 도착한다고 적혀있다. 9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기차 안이 그리 쾌적하지는 않으나 베트남에 어느 정도 익숙한 나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천장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평면 텔레비전에서는 베트남 노래와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알아듣지 못해 프로그램을 즐기지 못하나 베트남 사람 중에는 큰소리로 웃으며 열심히 보는 사람도 많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외국인은 지도책을 보며 베트남 공부에 한창이다.

밖에 보이는 풍경은 한국의 농촌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과는 다른 과일나무들이 심어져 있으며 베트남 특유의 건물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가끔 호주에서 보았던 커다란 개미집도 보인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차창 밖의 이국 풍경을 생각 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짐 꾸러미를 뒤져 책을 꺼내 읽기도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어가나 보다. 아가씨가 승객 사이를 지나면서 저녁식사 주문을 받는다. 1000원 조금 더 하는 음식값이다. 집사람은 식사를 주문하고 나는 배낭에 가지고 온 과일로 저녁을 대신하기로 했다.

정거장에 잠시 쉬었다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주문받은 음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음식은 풍성하다.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반찬 또한 금액에 비해 좋은 편이다. 큰 그릇에 국을 담아 주기도 한다. 그 바로 뒤에는 고기를 꼬치에 구운 음식 등 조금 색다른 음식을 팔며 지나가고 있다.         

40시간 이상 기차 타고 갈 수 있다니 부럽다

호치민시에서 정시에 떠난 기차는 다시 내 예상을 뒤엎고 7시 3분 정시에 냐짱에 도착한다. 9시간 동안의 긴 기차 여행이다. 이 기차는 하노이까지 가는 기차다. 두꺼운 잠바를 가진 많은 사람은 내리지 않는다. 이곳보다 추운 하노이까지 가는 승객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호치민시에서 하노이까지는 40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두 쪽으로 갈라진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그렇게 멀리까지 기차로 갈 수 있다는 것에 부러움이 든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기차로 갈 수 있을 때를 기다려 본다.

통일의 날을 기다리며 한평생을 다 보내신 어른들처럼 나도 기다리기만 하고 내 평생 유럽 가는 기차를 못 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바람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다.

덧붙이는 글 | 다음회에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베트남#여행#기차여행#호치민시#냐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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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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