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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기슭에 우뚝 솟은 집을 보라. 겨레의 보람이요 정성이 뭉쳐 드높이 쌓아올린 공든탑.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 있다.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아침 9시, 오늘도 어김없이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시계탑에서 고려대학교 교가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마음의 고향'이라는 가사가 제 귀에 맴돕니다. 고대인이라면 누구나 교가를 외울 수 있고 어디를 가나 모이기만 하면 교가를 부르는 것은 이런 '마음의 고향'을 언제나 기억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저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힘들고 지칠때 받아주는 곳, 그리고 위안과 용기를 얻고 싶을때 따뜻이 감싸주는 곳이 바로 제 모교 고려대학교입니다.
 
고려대학교 출교자 사태의 전말
 
2006년, 고대에 흡수된 고려대 병설 보건대학의 학생에게 고려대 학생회 투표권을 갖을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던 학생들이 교수님들을 17시간 동안 감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해 4월 18일 학교에서는 이들 학생중 강영만(27·컴퓨터교육학과)씨를 비롯해 7명을 출교시켰습니다. 출교는 퇴학과는 달리 재입학이나 편입마저 할 수 없는 고려대 최고 수위의 징계입니다.
 
그리하여 출교생들은 고려대학교 법인을 상대로 출교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냈었고 지난해 10월, 승소하였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들이 심각한 질서위반 행위를 했고, 교수 감금 행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대학은 교육을 목적으로하는 단체이므로 학교측의 출교처분은 교육을 포기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1월 말에도 법원이 출교징계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재판부는 "출교자들은 교수들을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에 감금한 비윤리적 행위에 대하여 사과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아니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학교 측은 출교처분을 보다 가벼운 새로운 징계 처분으로 변경하라"는 권고안을 내었습니다. 
 
그 뒤, 출교생들은 기쁜 마음으로 본관앞 천막을 철거하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650일 간의 천막 농성은 끝이 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2월 12일에 학생상벌위원회가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벌 위원회의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출교자들을 퇴학시키셨습니다.
 
헛소문이라 믿었던 '학생상벌위원회'의 퇴학결정
 
1월 말 법원의 권고안이 나온뒤, 새로 임명되신 이기수 총장님이 이들 출교자를 용서하고 감싸안으시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출교자들을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던간에, 총장님의 용단과 아량은 전체 고려대 식구들에게 모교의 따뜻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로 인해 실추되었던 고려대의 명예가 다시 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벌위원회의 퇴학 결정은 학교 스스로가 용렬하다는 것을 증명한 꼴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학생들의 사과가 없다고 퇴학을 시키시다니요. 저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누군가 흘린 헛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다들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상황에 스스로 나서서 제자들을 감싸안아야 하실 분들이 바로 스승님이십니다. 이번 조치로 마음의 고향이라던 고대의 교가는 이미 멀리 내던져져 버렸습니다. 상벌위원회 교수님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스스로 '학문적 스승'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고려대 학생들에게는 '인성적 스승'이기도 하시다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스승님, 그들은 교내의 권위적인 학사행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던 학생들입니다. 이들의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학내의 민주주의를 위한 이들의 목소리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퇴학조치를 시키는 것은 건강한 대학사회의 목소리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교생들, 학내의 지지를 이끌어야...
 
 
누군가는 양비론에 빠졌다며 저를 비판할지 모르지만, 출교생들의 이야기도 이 지면을 통해서 해야할 것 같습니다. 
 
진보언론에서 꾸준히 출교생들의 이야기를 기사화했고 이들을 응원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임종인 선배님(국회의원)께서도 꾸준히 이들을 지지해주셨습니다. 홈에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셨던 아주머니들도 이들과 연대했습니다.
 
고려대 밖에서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러한 외부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출교생들은 학생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려대 재학생들의 침묵을 너무 탓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저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출교생들은 학교와의 대화를 원하고 있지만 재학생들과의 대화는 원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금요일 밤, 퇴학처분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는 출교자들의 천막을 찾아갔습니다. 그들과 짧게나마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강경하게 '사과 불가'를 주장하고,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여론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습니다.
 
일부 재학생들은 출교생들이 우리 모두의 스승을 17시간 동안 감금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투쟁 일변도의 운동형태와 독단적인 의사결정 등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말, 출교가 철회되었을 때 출교생들이 재학생들에게 "그동안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한마디 언급이라도 했더라면…. 감금 사실에 관해 교수님들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더라도 학내 여론의 대다수를 출교생들의 편으로 끌어올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교생들은 그러지 못했고 지금도 다수 학생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부디 '그 학생들의 지지'라는 것이 출교생들에게 100% 동조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출교 반대 서명을 하고 출교생들을 보면 음료수를 사주고 "힘내시라"고 응원하던 지지자 중 한명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인 '퇴학철회'를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저는 2가지 이유에서 출교생들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첫째, 학교의 퇴학 처분은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교수님 감금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그 교수님들께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괘씸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용서와 사랑으로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창 배울 것이 많은 우리들 아닙니까?
 
둘째, 그들의 행위가 비록 모두 옳은 일은 아니더라도 그들이 고려대학교 교정에서 힘차게 외치던 많은 구호들은 누군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양한 비판 존재한다는 것이 건강한 사회임을 말해주는 척도가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교수님과 학교 당국에 부탁드립니다. 제발 우리 마음의 고향인 고려대학교, 아침9시,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그 노랫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번 출교 사태가 매듭을 풀기 위해 칼로 매듭을 내리쳐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서로 당기던 줄을 조금 느슨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인 출교생들에게 '먼저 사과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무조건적인 '퇴학 철회'를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주제넘게도 교수님들께 조언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고려대 출교 문제가 이렇게까지 번지는 것이 안타까워 글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재덕 기자는 고려대학교 학생이며 <오마이뉴스> 대학생 7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고려대 출교생 퇴학, #교육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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