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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향에서 가족들과 설연휴를 보내고 돌아와 며칠을 허둥대다보니 무자년 정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네요. 해서 설연휴 닷새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던 홍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딸과 부여에서 병원에 근무하는 집사람을 형님 댁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설날 이틀 전에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군산에 도착하자, 반갑게 맞아주는 조카와 소주 한 잔 하는 것으로 홍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주가 홍어였거든요.

해망동 공동어시장의 어느 가게 아주머니가 정성들여 홍어 껍질을 벗기고 있습니다. 껍질을 다 벗기니까 썰어서 봉지에 넣어주더군요. “맛있게 드시쇼”라는 인사와 함께...
▲ 홍어 해망동 공동어시장의 어느 가게 아주머니가 정성들여 홍어 껍질을 벗기고 있습니다. 껍질을 다 벗기니까 썰어서 봉지에 넣어주더군요. “맛있게 드시쇼”라는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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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선창가와 해망동 어시장 구경을 나갔는데 끝물이라서 그런지 한산했습니다. 그래도 부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의논을 하며 생선을 고르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띄어 보기에 좋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부도 있었는데 무척 행복해 보이더군요.

마침, 온 몸에 힘을 주며 홍어 껍질을 벗기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홍어는 껍질을 벗겨야 먹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더합니다. 그런데 식당을 운영해도 홍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흔치 않아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껍질 채 먹는 것으로 알고 있더라고요. 아무튼 다루는 솜씨가 대단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주머니! 홍어가 크고 물도 좋은데 그 정도면 얼마나 가는가요? 힘들여서 껍질까지 벗겨주시고···”라며 아부와 칭찬을 섞어 물었습니다.        

“‘칠레’산 홍언디, 10만원요 10마넌··· 저기 저 젊은 냥반들이 가지갈 것인디, 생선장사 오늘만 헐 것도 아니고, 낭중에 또 오시라고 손님한티 세비스 허는 거지라 세비스··.·”  

“그러시군요. 10명은 충분히 먹고 남겠네요. 홍어 껍질 벗기는 것을 오랜만에 봤고, 때깔도 좋아 사진 한 장 찍어갈라요.”

“티비방송국서 나온 냥반도 아닌 것 같은디, 홍어 찍어다 머시다 쓸라고요. 하이간, 직고 싶으믄 찍어가쇼···.”

넉넉함이 묻어나는 아주머니의 구수한 사투리에, 전라도 음식 인심은 식당에서만 푸짐한 게 아니라, 고기 잡는 어부와 생선장수 아주머니 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재차 느끼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고향의 인심은 팍팍 퍼주는 데 매력이 있습니다. 1만원짜리 술상에 오른 간재미와 생굴, 돼지 갈비 등이 미안할 정도로 푸짐합니다..
 고향의 인심은 팍팍 퍼주는 데 매력이 있습니다. 1만원짜리 술상에 오른 간재미와 생굴, 돼지 갈비 등이 미안할 정도로 푸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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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군산의 어느 식당에서 형님과 조카와 함께 1만원을 주고 소주 3병을 먹은 안주인데 푸짐하지요. 음식 인심이 얼마나 좋은지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홍어 대신 간재미 회와 돼지갈비, 가재미탕, 생굴, 게 발, 배추나물에서 식혜와 곶감까지 나왔는데, 장사가 될지 걱정할 정도였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간재미가 크면 홍어가 되는 것으로 아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맛으로 보나 모양새로 보나 ‘간재미’는 아무리 커도 ‘간재미’이고, ‘홍어’는 아무리 작아도 ‘홍어’이기 때문입니다. 홍어는 작아도 위엄(?)이 있거든요. 야튼 고소한 맛이 덜한 간재미는 봄과 여름에 회와 찌개를 해먹으며 겨울이 돼야 등장할 홍어를 기다렸습니다. 

금방 끓인 홍어탕
 금방 끓인 홍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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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김치와 홍어 내장을 넣고 푹 끓여낸 전라도 전통 홍어찌개
 묵은 김치와 홍어 내장을 넣고 푹 끓여낸 전라도 전통 홍어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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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에 오른 홍어회. 너무 크게 썰고 껍질을 벗기지 않았다고 불평이 많았지만 가장 먼저 빈그릇이 되었지요.
▲ 홍어회 상위에 오른 홍어회. 너무 크게 썰고 껍질을 벗기지 않았다고 불평이 많았지만 가장 먼저 빈그릇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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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마니아들 중에는 암모니아, 유기산 등을 거론하며 일부러 삭혀먹고, ‘홍탁 삼합’이라고 하여 삶은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곁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역과 각자의 입맛,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옳다고 꼬집어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생선은 싱싱할 때가 맛이 가장 좋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해서 저는 싱싱한 홍어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겨울에 눈쌓인 옹기그릇에서 잘 익은 김치를 싸먹는 것을 가장 즐깁니다. 막걸리보다 소주를 한 잔 곁들이면 더욱 좋고요. 지금이니까 그렇지 홍어는 원래 겨울이 돼야 먹을 수 있는 생선이었거든요.  

홍어탕과 홍어찌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물이 흥건한 탕에는 주로 콧잔등 살과 잘근잘근 씹히는 날개 부분이 들어가고, 국물이 적은 찌개에는 고소한 창자 부위와 잔뼈가 들어가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지요.

고추로 매운 맛을 내고 미나리가 들어가는 홍어탕은 국물이 시원해서 애주가들이 좋아하고, 김장김치가 들어간 찌개는 맵고 건더기가 많아 밥반찬으로 인기가 좋은 점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홍어탕과 홍어찌개의 공통점은 둘 다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가시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것도 다른 음식과 차별이 되지요. 탕에는 미나리가 많이 들어갈수록 시원한 맛이 더하고 찌개에는 김장김치와 고소한 홍어 내장이 들어가야 제격입니다. 

가족들은 동생 집에서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젓가락이 교대로 홍어회가 담긴 접시로 향하더라고요. 형님 젓가락이 홍어 회를 집는 순간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동생 집에서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젓가락이 교대로 홍어회가 담긴 접시로 향하더라고요. 형님 젓가락이 홍어 회를 집는 순간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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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에는 동생이 집으로 초대를 하겠다고 해서 모두 모였는데, 값이 비싼 오리지널 한우 등심보다 칠레산 홍어로 만든 음식이 인기가 더 좋더라고요. 그러니 ‘홍어로 시작, 홍어로 끝난 설연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헤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세배와 함께 주고받은 덕담들이 숭례문 화재로 망가져 버렸는데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몇 년 만에 고향에서 보낸 설연휴의 추억들을 남기려고 했지만, 충격 때문인지 번번이 망쳤거든요.  

숭례문에 화재가 나기 전날은 고향집 앞마당과 장독대, 골목에 쌓인 눈을 보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니 썰매를 타다 지치면 눈사람을 만들던 시절이 떠올라 잠시 동심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연휴 마지막날 골목에 쌓인 눈이, 몸과 마음을 동심의 세계로 이끌면서 그동안의 피곤과 숙취를 맑끔히 씻어주더군요..
 설연휴 마지막날 골목에 쌓인 눈이, 몸과 마음을 동심의 세계로 이끌면서 그동안의 피곤과 숙취를 맑끔히 씻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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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필통(http://blog.hani.co.kr/chongan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설연휴, #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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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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