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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식 경제'가 출항도 하기 전에 비틀거리고 있다. 우선 국내외 경제환경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경기침체를 빼더라도, 물가폭등과 주가폭락 등 경제 주체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MB식 경제'에 대한 기대감도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식 경제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의 대표공약을 중심으로 본 당선 이후 약 50여일간의 평가와 전망을 5차례에 걸쳐 해본다. <편집자주>

"그냥 성장이 6%냐 7%냐 이 숫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성장의 내실이 실제 사회적 약자에게 어떻게 혜택을 주느냐 그런 관점에서 정책 방향 검토해야 하지 않느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말이다. 17일 오후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 연수원 회의실. 이 당선인은 1박2일로 열린 새 정부 국정과제 워크숍을 마무리하면서 의미 심장한 말을 꺼냈다.

 

"경제성장률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성장의 과실이 실제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 이어 지난 5년간 해마다 4% 정도의 경제 성장을 해왔지만 소외 계층이나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그동안 이 당선인의 행보나 발언, 인수위가 마련한 국정과제 등을 놓고보면 경제 정책의 방향과 강조점이 사뭇 다른 분위기다.

 

기업들의 투자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성장우선주의 경제정책에서 서민생활 안정과 분배 중심으로 방향을 트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돌 정도다. 인수위 경제분과 쪽에선 뒤늦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 마련 등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인수위 경제분과 관계자는 18일 "당초 차기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는 따뜻한 시장경제와 7%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며 "성장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성장과 함께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놓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무너지면 끝장... 이 당선인의 위기감

 

그럼에도 이 당선인이 정권 출범을 일주일 앞두고, 기존의 경제정책 방향과 사뭇 다른 내용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인수위 주변과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국내외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작년 말부터 대내외 경제 환경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 '경제'가 무너질 경우 정권 초기부터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에 따른 세계 금융시장의 혼돈 양상은 여전하고, 국제기름값 등 원자재값도 다시 상승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른 주가폭락 뿐 아니라 국내 물가 상승은 서민 생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신중한 경기예측으로 유명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3일 "경제성장률 전망이 아래 쪽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국내외 주요 경제연구소나 대형 투자은행 등도 한국의 경제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또 영국의 대표적인 한국전문가인 에이단 포스터-카터 리즈대 명예선임연구원은 18일 파이낸셜타임즈(FT) 기고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을 비판하기도 했다.

 

포스터-카터 연구원은 미국의 경기침체와 고유가 등으로 한국 같은 거대 산업국가가 7% 성장을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7위 경제대국 진입도 어렵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또 삼성특검 수사의 예를 들면서, 차기 정부의 친(親)기업 정책을 통해 대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FT "7%성장은 불가능, 친기업 정책도 옳은일 아니다"

 

이같은 대내외 경제 환경에 대한 우려는 대통령직 인수위를 비롯해 한나라당 내부에서 더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물가불안으로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악화될 경우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 당선인 뿐 아니라 집권여당이 될 한나라당 입장에선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이미 지난달 물가불안을 두고, "민생을 안정시켜야 우리가 원하는 747(7%성장, 4만불 국민소득, 경제대국 7위)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좀 더 직설적이다. 그는 18일 "경제상황이 예삿일이 아니다"라고 운을 뗀 뒤 "(경제)환경이 나빠지고 있고,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도 우리 목표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이에 앞서 지난달 "인플레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서민생활이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보수가 정권교체한 프랑스 사르코지 정부의 경우 개인 스캔들 뿐 아니라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경제 불안 심리를 조기에 잡지 않으면 이 당선인 뿐 아니라 한나라당도 거센 역풍을 맞게 될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고성장이냐, 서민경제 안정이냐... 갈림길의 MB노믹스

 

문제는 이같은 경제불안 요소가 구조적이며, 차기 정부의 성장일변도 정책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경제·산업 정책 속에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달해있고, 비정규직의 대거 양산, 심화된 소득의 불균형 속에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해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최근 서민 경제가 급속도로 안 좋아지면서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지지세가 크게 줄고 있다"면서 "문제는 차기 정부의 각종 정책 목표들이 서민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6% 경제성장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이고, 각종 기업 규제완화 조치는 중소기업보다는 일부 재벌에게만 특혜를 가져다 줄 뿐"이라며 "현재와 같은 경제산업 구조에선 일자리 창출도, 양극화 해소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소수 재벌에만 좋은 경제 환경이 아니라, 모든 기업에 공정하고, 모든 기업 이해관계자가 수긍할 수 있는 경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호'가 출항하기까지는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기도 전에 '경기침체'라는 거센 파도부터 넘어야할 처지가 됐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는 위기를 더 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태그:#인수위, #MB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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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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