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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옥

 

며칠 있으면 정월 대보름입니다. 재래시장에는 벌써부터 호두와 땅콩, 밤 등 부럼이 등장했고 각종 나물과 오곡이 섞인 잡곡이 손님들을 기다립니다. 대보름이 되면 빼놓을 수 없는 전통놀이가 윷놀이와 달집태우기 아닐까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보름날을 전후하여 동네 논 한가운데서 친구들은 물론 형과 아우들이 한데 어울려 달집을 태우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보름이 다가오면 마을 여기저기서 신명나는 한판의 윷놀이가 펼쳐지고, 흥겨운 풍악소리가 방방곡곡 울려 퍼지곤 합니다. 농촌 대부분의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보름날 풍경이지요.

 

지난 설날 옆집 폐가에서, 버려진 카펫을 깔고 펼쳤던 친정 식구들과의 윷놀이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보가 터져 나옵니다. 그때 그 표정들이 잊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팀이건 윷이나 모가 나오면 좋아서 토끼처럼 팔짝팔짝 뛰기도 하고, 손바닥을 부딪치며 좋아 하는데, 그 모습이 꼭 어린아이들 같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고 즐겁습니다. 윷놀이 판에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따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동심에 흠뻑 젖곤 합니다. 이것이 윷놀이의 묘미가 아닐는지.

 

어찌 보면 보잘 것 없는 나무 윷가락 네 짝에 불과하지만, 막상 팀을 이루어 윷판이 벌어지면 그 여파는 실로 대단합니다. 평소 위엄 있고 근엄한 어른들의 표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서 완전히 개구쟁이, 혹은 천방지축 어린아이처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윷가락 네 짝이 공중 그네를 타고 떨어질 때마다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는 하늘을 뚫을 기세입니다. 반면 상대방의 한숨과 아쉬움은 땅이 꺼지도록 깊어만 갑니다. 어느 한 팀,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를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도 윷놀이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한참 신명나게 윷놀이가 펼쳐지고 있는데 친정에 온 막내 조카(2살)가 성큼 성큼 다가와서 윷가락을 집어 듭니다. 저 혼자 신이 나서 윷판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계속 윷가락을 집었다 던졌다 반복합니다. 그래서 어린 조카들끼리 한 번씩 돌아가며 던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윷놀이는 어른들과 아주 딴판입니다. 윷가락을 휙 집어 던지고는 다른 곳을 바라보던지 아예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윷인지 모인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 모습 또한 얼마나 우스운지 어른들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오로지 어른들이 재미있게 하니까 한 번 해보고 싶나 봅니다.

 

 

막내 녀석이 다시 달려들어 윷가락을 집어 듭니다. 아주 막무가내입니다. 이러다간 윷판이 다 깨지겠다 싶어서 아이를 달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조그만 나무토막을 쥐어 주고 던지라고 했더니 몇 번은 잘 던집니다. 그런데 마음에 안찼는지 그 나무토막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꾸만 윷놀이 판으로 끼어들려 합니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신명나는 윷놀이를 위해서 아이 엄마가 나서서 수습을 하고 나서야 다시 윷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른들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자 아이들이 팀을 나눠서 윷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더 어린 아이들은 “아빠 이겨라!”를 외치며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합니다. 그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요. 가족들이 윷놀이를 하는 동안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기다리는데 갑자기 폭소와 박수소리가 요란합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 어른들 모습, 구경하던 아이들도 덩달아 즐겁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런 대 역전극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도만 나도 이기도록 말이 두개가 업혀서 마지막 징검다리를 건너려는 순간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두개의 말판은 이미 징검다리를 무사히 건넌 상태, 보나마나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입니다.

 

지금 막 윷가락을 던질 팀은 '첫도'를 우렁차게 외칩니다. 윷을 던지려는 순간 양 팀의 얼굴에 긴장감이 팽팽합니다. 뭔가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쫓는 팀은 뒷(백)도를  목청껏 외치고, 상대팀은 파이팅을 외치며 던진 순간, 윷가락이 공중을 차고 올라가더니 곧 땅 바닥으로 나뒹굴었습니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뒹구는 마지막 윷가락을 근심스럽게 쳐다봤습니다. 아뿔사! 이게 웬일입니까!  결과는 보고 또 봐도 틀림없는 뒷(백)도였습니다. 상대팀 두개의 말이 뒷도에 잡히는 순간, 기쁨의 환호와 슬픔의 탄식이 교차하는 대 역전드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다 이겼다가 졌다는 탄식이 쏟아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와~역전이다, 역전~~~ ”하면서 기뻐 어쩔 줄을 모릅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윷놀이의 진수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승부는 가려졌지만 다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매순간 터져 나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윷놀이, 전통놀이 한마당으로 가족간의 화합은 깊어지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대보름날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신명나는 윷놀이 한판 벌여보면 어떨까요?

 


태그:#윷놀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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