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진행하고 있는 2008년 미국의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군사력은 이라크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고, 정치는 거짓과 조작으로 이라크전쟁을 일으켜온 부시-체니 정권에게 준쿠데타적인 상황을 허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느 나라도 아직 미국에 대적하고 있진 못한 실정이다. 종교적 열정 보여주는 Yes We Can 오바마에 대한 지지가 마치 ‘할렐루야’ 하는 것처럼 청중들이 ‘Yes We Can’ 하는 함성으로 호응하는 것들은 공허한 거품일 가능성이 크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흑인 상원의원 정치 신인이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는 호소력이 있는 것이긴 해도, 민주당 경선 초반에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가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선 초반만 해도 이런 인물이 실제 미국대통령으로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는 이들은 결코 많지 않았다. 18세기 미국의 국가형성 시기의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통령직이라고 하는 건 지금에 와서 마치 왕정주의 제도로 화했으며, 특정 이해관계들 포로가 되었고 언론은 여기에 추악한 아첨을 일삼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4년마다 국제정치를 청소해 보겠다며 대통령으로 나서는 이가 누군인지에 대해서나 관심을 가져야만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구시대 유물인 대통령직에 대해 웬 뚱딴지같은 ‘희망’을 이야기하게 되었는가? 앨고어-오바마 러닝메이트?
영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열린 민주주의 포럼(openDemocracy.com)' 창립자인 안토니 바넷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바마의 두 번째 저서인 <담대한 희망>에 대해 상투적이며 진부한 내용으로 넘쳐나 있었다. 그래서 그 책을 사지도 않았다. 초기 ‘오바마 걸’이 등장하는 비디오를 보고 미국 ‘정치연예’ 시스템이 보여주는 공허함에 대해 한숨지었다. 오바마는 차라리 앨고어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자신은 앨고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되는데 만족하는데 그쳤어야 하며, 대신 자신은 ‘경륜’을 쌓아가는 기회로 삼는 그런 정치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앨고어는 이미 부시를 물리친 바 있으며 환경문제의 권위자이지 않는가? 요컨대 오바마는 겉으로는 다른 모습인 듯하나 실제로는 결국 대통령제도에 순응하는 구태의연한 인물 아닐까? 이렇게 되면 결국 힐러리가 민주당 경선에 승리하지 않을까? 미국 국내 문제를 가장 솔직하게 설파한다는 존 에드워즈는 이미 정치자금 부족, 언론의 주목 결여 등으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하지만 힐러리 역시 본선에 가면 공화당의 매케인에게 패하여 4년 더 정권을 내주게 되는 건 아닐까? 힐러리가 나이 많은 백인 매케인을 누르기 위해서는 우선 당내 경선을 압도적으로 승리해야 하며 그 다음 보편적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현대 페미니즘이라는 변화의 횃불을 높이 든 지도자로 각인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등장으로 인한 충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약관 46세의 오바마에게 ‘그 무엇’이 호소력을 갖게 되었는가?“ 오바마의 도전
그런데 오바마가 도전하고 나서자, 이런 힐러리의 지위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힐러리가 승리한다면 그 요인은 기득권세력의 조직력과 이해관계, 경륜, 전직대통령 빌 클린턴의 부인이라는 점, 노동자계층의 지지 등이 될 것이다. 반면 미국의 젊은층은 힐러리는 특권세력을 대변하며 실망만을 가져다주었다며, 대신 오바마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힐러리가 당선되면 자신들의 희망을 산산조각 부숴버린 장본인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젊은층은 자신들 상처를 보듬으며 민주당 당내경선에서 이탈하여 매케인을 지지 투표하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실용적 진보주의 실용적 진보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오바마가 지지열기의 일단을 설명해줄 수 있다. 오바마는 뉴욕 콜럼비아대학으로 학교를 옮기기 전에 LA 옥시덴탈 대학을 다녔다. 그때부터 이미 미국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시대에, 흑인이라고 미국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바마의 노선은 한마디로 ‘실용적 진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당을 넘나들며 지지를 받았던 레이건 대통령에 비견되기도 한다. 오바마의 실용적 진보주의는 공화당원이면서 오바마를 지지하는 ‘레이건 대통령 부류의 민주당원’ 지지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오바마칸’(Obamacans : Obama와 Republicans의 합성어)라고 불린다. 예컨대 수잔 아이젠하워나 도산 안창호의 딸인 안수잔 여사 둘 다 수십 년 동안 공화당원 당적을 가지고 있다가 탈당하고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는 정치적 투사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곧이 곧대로 진보주의자인 것도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그는 시민적 공화주의자에 속한다. 시민적 덕성 및 양질의 신뢰관계를 통해 좋은 타협 성과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신념의 소유자이다. 통합의 개혁정치 추구 오바마는 정당정치제도 위에 서서 통합을 이룩하고자 하면서도 신뢰관계와 상호견제를 통해 그 통합을 이룩해내고자 한다. 양자택일(either-or) 아닌 양자통합(both-and)을 선거운동 과정을 통하여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1960년대 이룩한 소수인종과 여성의 포용정책(시민권 부여), 개인의 자유와 건강권 확대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통합에 필요한 신뢰와 정서교류 수준은 미흡하다고 본다. 그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함께 ‘가정과 효도’ 역시 좋은 것으로서 실현되어왔다고 본다. 그러나 유독 정치 분야에서 이런 양자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의료보험, 에너지, 교육 등의 이슈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을 건국한 이들이 혁명가 아닌 개혁주의자였다고 보면서, 정치란 반 발짝 정도 앞서가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그는 정파적 ‘공격정치’를 지양하고 대신 대중과 함께 하는 정치를 추구하며, 종교적 호소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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