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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어린이로 하여금 숭례문에게 미안하다고 쓰게 하는가? 숭례문 화재현장을 엄마와 함께 찾은 어린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추모의 글을 쓰고 있다.
▲ 어린이. 누가 이 어린이로 하여금 숭례문에게 미안하다고 쓰게 하는가? 숭례문 화재현장을 엄마와 함께 찾은 어린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추모의 글을 쓰고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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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화창한 일요일. 수많은 인파가 숭례문을 찾았다. 불타버린 잔해라도 보고 싶어서다.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찾아왔다. 어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다. 남녀노소다. 18일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진혼제가 열렸다.

사람들은 예부터 불구경은 좋아했지만 불탄 흔적은 외면했다. 처참해서다. 그런데 숭례문 화재 현장에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불타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던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테러에 사라진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를 참배하던 추모행렬이 떠오른다. 당국은 시민들이 참배할수록 능동적으로 대처하라.

숭례문이 무너지자 가림막을 쳤다. 신속 정학한 관료주의의 발동이다. 현장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높이 6m 가림막이 너무 낮다며 가림막을 "더 높이라"고 지시했다. 15m 가림막이 완성됐다. 무엇을 감추고 싶었을까? 국보 1호의 처참한 모습을 감추어 주고 싶어서 일까?

물론 철거작업의 안전과 도난방지를 위하여 가람막이 필요하다는 것. 이해한다. 시민들이 항의하니까 투명창을 설치했다. 그래도 시민들은 불만이다. 숱한 세월을 그 자리에 그렇게 꿋꿋하게 서있던 숭례문의 몰골을 감추어 주고 싶어서 일까? 아닐 것이다. 숭례문을 지켜내지 못한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진혼제.
▲ 진혼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진혼제.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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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무너졌는데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네 탓이다. 숭례문의 발화 시점은 10일 저녁 8시 48분. 신속하게 신고가 이루어졌고 정확하게 소방차는 출동했다.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도착 즉시 현장을 접수한다. 전권 행사의 시점이다. 사회적인 함의로 이루어진 접수행위를 지원하기 위하여 경찰 병력이 지원되고 경비를 선다.

저녁 8시 57분. 2층 누각으로 진입한 소방대원들이 발화지점을 장악하고 진압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1시 56분 숭례문은 소실되었다. 숭례문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소방대원들도 지켜봤고 국민들도 지켜봤다. 이쯤 되면 책임소재는 드러났다. 그런데 소방방재청은 문화재청에 문화재청은 소방서에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꼴사납다.

숭례문 소실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소방방재청에 묻고 싶다. 한강에 어떤 사람이 투신했다고 하자. 신고를 받은 119 구급대가 출동했다. 물론 숙련된 구조대원은 상대에게 제압되지 않을 요령과 기술로 접근하겠지만 투신자에 접근한 구조대원이 오히려 투신자의 힘에 제압되어 익사 위기에 몰렸다. 이럴 때 투신자를 주먹으로 가격하여 잠시 실신시킨 후 구조할 수 있다. 법에는 투신자를 때리라는 구절이 없다. 법 타령 하지 말라.

빽빽이 들어 찬 추모의 글. 쓸 곳이 없어 메모지에 써 붙인 사람도 있다.
▲ 추모의 글. 빽빽이 들어 찬 추모의 글. 쓸 곳이 없어 메모지에 써 붙인 사람도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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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숭례문 화재는 방화범이 불냈고 소방대원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불탔다.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문화재청도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서 현장지휘자가 국보1호라는 중압감에 행동에 제한을 받은 것은 이해한다. 초기에 기와를 들어내고 목심에 방수했을 때, '문화재를 파괴한 몰상식한 진화'라는 비난이 있을까봐 몸 사렸을 것이다. 이것이 비겁한 행동이다.

사회적인 합의로 화재현장 접수를 용인했을 때, 국민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를 원했다. 숭례문은 국민의 재산이다. 그것도 국보다. 옷 벗으라 할까봐 과감한 진화 행위를 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용기 없는 행동이다. 목재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기와를 들어내고 방수한다는 것은 초급 소방관들도 다 안다. 소방학교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친다.

청와대가 불났을 때, 대통령이 아무리 청기와가 소중하다고 말려도 상황 판단에 따라 기와를 들어내고 불을 끌 수 있는 용기 있는 현장 지휘자를 이 시대는 원한다. 숭례문 화재는 지휘자의 결단이면 일찍 상황종료 될 화재였다. 밤을 새워 방수포를 붙잡고 추위에 떨었던 현장 소방대원들 고생했다. 위로를 드린다.

이번 숭례문 화재로 '무덤까지 가지고 갈 죄'를 지었다고 토로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돈 200억이면 3년 이내에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국민의 성금으로 복원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국민들의 상실감과 분노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

뭘 그렇게 서두르는가? 나라를 도적질하고 수많은 백성을 학살한 전두환과 노태우는 전경을 풀어 밤새워 지켜주면서 숭례문을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세우지 못한 죄업을 닦기 위해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진혼제.
▲ 진혼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진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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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그 자리에 그렇게 서있었던 세월의 1%만이라도 가림막을 철거하고 반성하자. 책임소재를 밝혀 숭례문에게 사죄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라. 그것이 예의다. 그것이 재발 방지의 첩경이다.

610년의 0.1%만이라도 투자하여 연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짓자. 궁궐 복원작업에 참여했던 도편수와 대목장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둥과 보에 쓰려면 2년 이상 말려야 한다"고….

재목도 씨가 말랐다. 그렇다고 수입목재를 쓸 것인가? 숭례문에 아무 나무나 쓸 수 없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우리나라 토종 금강소나무를 써야 한다. 지난 11월. 광화문 복원에 쓰려고 강릉과 양양을 샅샅이 뒤져 겨우 26그루를 얻었다. 그것도 수령미달 80년생 까지를 포함해서다.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말자.


태그:#숭례문, #진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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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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