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소소한 일거리 중 하나는 틈틈이 문 앞 우편함에 들르는 일이다. 받아야할 소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며칠째, 엊그제도 평소와 다름없이 소포가 도착했나? 하고 우편함 문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기다리던 소포는 없고 대신 얇은 편지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것이 아닌가?

 

'어? 웬 편지?'

 

 훈련소간 후배에게 온 편지
훈련소간 후배에게 온 편지 ⓒ 곽진성

 

소포가 오지 않았다는 실망감이 있었지만, 우편함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편지를 보고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요즘같은 시대에도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긴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웃게 된 것이다. 이메일이나 핸드폰 문자를 즐겨쓰는, 나 같은 사람에게 눈앞의 편지는 오래된 물건마냥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눈앞의 아날로그(?) 편지를 받을 영예의 대상자가 궁금했다. 뭐, 보나마나 2층집 아저씨에게 온 편지거나, 아니면 어린 동생 친구들이 보낸 편지일 것이라 추청은 됐지만 궁금한 마음은 쉬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끝에, 우편함을 열어 살짝 편지를 엿보았다.

 

그.런.데

받는이- 곽진성 귀하. 라니,

 

편지를 확인한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편지를 받을 주인공(?)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빙빙 돌았다. 누가 보낸 거야? 라는 호기심이 머릿속을 떠나지않았다. 솔직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편지는 군 제대 이후에 처음 받아보는 편지였으니까,

 

대체 누구가 보낸 것일까? 혹시 옛날에 헤어진 여자친구?라는 은근한 설레임도 들었다. 하지만 보낸 곳을 확인한 순간 설레임이 와장창 깨졌다. 사나이들의 세계 육군 훈련소에서 온 편지였다. 게다가 편지 봉투는 칙칙하기 그지없는 하얀 민무늬. 갑자기 기분이 뾰투룽해졌다.

 

'뭐야? 왜 군대 훈련소에 편지가 오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누구야? 흥.'

 

라는 생각으로  편지를 건성건성 다시 흝었다. 보낸 사람 란에는 -진수 훈련병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그런데 진수가 누구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갔다.

 

'앗, 이 녀석, 군대에 있었단 말인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진수는 나랑 엄청 친했던 후배녀석이라는 사실 말이다. 진수를 기억 못한 것은 실수였다. 훈련소와 진수라는 이름이 매치가 안 되어서 잠시 헷갈린 것이다.

 

 편지지 2장에 빼곡히 적은 후배의 글
편지지 2장에 빼곡히 적은 후배의 글 ⓒ 곽진성

나는 편지를 보며 진수란 아이를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진수는 나보다 4살이나 어린 동생인데 작년여름, 한 회사에서 인턴 일을 하며 친해졌다.

 

당시에는 둘도 없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었지만 그 이후, 연락이 뜸해서 자주 소식을 전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편지가 온 것이었다.

 

고마웠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맞고 있을 진수가 그 힘든 와중에서도 잊지 않고 내게 안부편지를 써준 것이다. 나는 그동안 진수의 입대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미안함과 함께, 훈련소에서 땀흘리고 있을 그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문득 4년전, 내 군입대 시절이 떠오른다. 많은 실수들로 어리버리했고 실수투성이였던 훈련병 시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군 생활을 추억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동안에도 진수는 힘든 훈련소 생활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내겐 추억이, 지금 그에겐 현실인 것이다.

 

'녀석 잘 견뎌내고 있나?'

 

나는 편지봉투를 방 안으로 가져와 안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민무늬 편지지 2장에 빼곡히 글자를 적은 편지가 드러났다. 훈련의 바쁜 와중에서도 틈틈이 적어 보낸 모양이었다. 힘든 훈련병 생활와중에 소식을 전하는 진수가 참 기특해 보였다. 깨알같은 글씨에 괜한 감동이 밀려온다.

 

TO. 진성이형

안녕하세요! 진수입니다. 드디어 편지를 보내는 군요. 여기는 강원도 oo에 위치한 o사단 신병교육대입니다. 입대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이 편지를 받을 때면 2월 초에 있을 설날쯤에 읽고 있겠군요. (중략)

 

로 시작되는 편지, 진수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지금 그가 얼마나 힘들지를 상상하게 된다.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날씨, 그리고 사회 소식을 모른다는 안타까움, 그리고 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쉬움이 편지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빨리 제대해서 공부해야 할 텐데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 잘 지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전방에서 열심히 군 생활하겠습니다.

 

내 훈련병 시절에 비한다면, 진수는 훈련병 생활을 그런대로 잘 견뎌내고 있는 모양이다. 사격 훈련도 전부 다 사격판에 맞췄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고, 또 앞으로 최전방에서 열심히 군생활을 하겠다고 자신있게 다짐을 하니 말이다.

 

그런 진수의 다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군복무 시절, 훈련소에서 한 다짐들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은 없기에, 군 제대 후에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한 다짐들. 하지만 그 다짐들에 후회가 없느냐는 나 자신의 물음 앞에 할 말이 없다. 그때의 다짐에 비해 지금의 난 한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착실히 훈련병 생활을 하고 있는 진수의 편지는 다시금 나를 반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다시금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어 준다. 훈련소를 나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때처럼, 훈련병 후배의 '편지 한 통'이 다시금 마음속 용기를 얻게 해준다.


#후배 #훈련소#편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