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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사전 지식이나 경험을 중시한다. 여행은 사전에 여행지에 대한 역사, 지리, 기후, 음식, 풍습, 교통, 언어 등 주의할 점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준비하고 시간 계획까지 철저히 계획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준비했지만 현지 사정이나 예상치 못한 일로 차질을 빚을 경우가 흔히 있다.

 

식구들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초등학생이던 딸이 옆자리의 한국 아주머니와 대화하는 걸 들었다. 딸은 독일의 베를린이 어떻고 스위스 융프라우가 어떻고 하는데 아주머니는 “나는 가이드 아저씨 깃발만 따라다니고 차만 탔다가 내려서 호텔에서 자고 도통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며 “네가 나보다 낫다”는 소리를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여행 마지막 날이다. 어제 역무원이 잘못 가르쳐준 노선 때문에 교토의 예정된 지역을 못보고 돌아갈 것 같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보기로 했다. 오후 2시까지 오사카 국제항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마쳐야 하는데 아무리 계산해도 12시까지 오사카에 돌아와야 짐을 챙겨 들고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 5시에 일어나 짐을 싸고 7시에 숙소를 나섰다.

 

오사카역에서 신쾌속 열차를 타고 교토로 가는 열차는 사람들로 붐빈다. 차가 플랫폼을 떠나 10분쯤 지나자 사람들은 대부분이 잠에 곯아 떨어졌다. 책가방에 몸을 파묻고 자는 학생, 내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점잖은 신사, 몸이 서서히 기울어 통로에 떨어질 것 같은데 용케도 자세를 바로잡는 아가씨, 입을 벌리고 의자에 기대어 깊은 잠에 떨어진 예쁜 아가씨, 창피할 것 같아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는 아가씨.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같다. 피곤에 찌든 일상의 모습이다. 잘 나가던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재일교포들은 말한다. 행복이란 뭘까? 98년도에 영국 런던정경대학 심리학자인 로스웰과 상담사 코언이 조사한 행복지수 1, 2, 3위 국가는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 순이다.

 

미국은 15위, 일본은 42위, 한국은 49위이다. 왜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못 사는 나라 사람들보다 행복을 못 느끼는가에 대한  조사를 해보니 첫째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더 좋은 여건에 적응해 버린다. 즉, 부채만 있을 때는 선풍기가 아쉬웠는데 선풍기가 생기니 이번에는 에어컨이 없어 불만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상대적 소득 수준의 격차가 적은 나라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결국 물질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위정자들은 빈부격차가 심화된 한국 상황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화려한 금박으로 유명한 킨카쿠지(금각사)와 발음이 비슷한 긴카쿠지(은각사)에 갔다. 긴카쿠지는 1482년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장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만든 선사이다. 은각사는 금각사의 화려함과는 달리 소박하고 검소한 모습이다. 정원에 들어서면 후지산 비슷한 모래 탑이 보인다.

 

이것은 건축 초기에는 없었지만 에도시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건물의 앞쪽 정원은 회유식 정원 양식으로 정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중앙의 연못을 감상하도록 만든 정원 양식이다. 돌아다니며 보는 이끼 낀 바위와 흙 위에 듬성듬성 난 나무들은 역사와 운치를 더한다.

 

일본 정원의 특징은 자연에 가까운 경관을 조성한 것이다. 경관 조성의 원칙은 규모의 축소, 상징화, 경치의 차경(借景)이다. 먼저 규모의 축소는 산과 강의 경관을 축소하여 제한된 공간을 재현한다. 둘째, 상징화는 예를 들어 흰모래가 바다를 상징하는데 쓰이는 것과 같은 추상성이다. 셋째, 차경이란 주위의 자연 경관을 정원의 일부로 이용하는 것이다.

 

은각사에 가면 이 세 가지를 회유식으로 돌아보며 구경할 수 있어 알고 나서 보면 훨씬 의미가 있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절과 신사 등이 수없이 많지만 다 볼 수는 없지 않는가. 서둘러 오사카에 돌아와 택시를 타려는 데 없다. 하는 수 없어 삼촌 차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3시다.

 

 

4시 반이 되어 열흘 동안 정들었던 오사카항을 떠나가는 배에서 바라보니 낯익은 건물들이 눈에 띈다. 대관람차,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아시아 태평양트레이드 센터(ATC)와 여러개의 대교들.

 

부산에서 오사카로 갈 때는 풍랑이 너무 심해서 이벤트를 못 봤는데 오늘 밤 8시부터 승객들을 위한 즐거운 이벤트를 볼 수 있게 됐다. 노래자랑, 마술, 팬스타써니 트리오의 노래 공연이 벌어지고 나이든 어른들은 TV앞에 모였다. 일본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돌아올 때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비행기로 여행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일본에서 몇 년간 살며 돈을 벌었지만 장래가 보장 안돼 한국에서 살기로 했다는 아저씨, 4박 여행이지만 배에서 2박을 하기 때문에 오사카 일원만 돌아봤다는 공주에서 오신 교사들, 일본에 사는 딸에게 배추 10포기만 김장하여 선편으로 부치면 10만원쯤 들기 때문에 차라리 김치를 손수 가져다 주고 돌아온다는 아주머니 등 각양각색의 사회 모습이다.

 

갑자기 여행객들의 의식 상태를 알고 싶은 생각이 났다. 지나가는 초등학생(4학년)에게 물었다. “학생은 일본에서 뭘 보고 느꼈어?” “유니버셜 재팬에서 놀이기구 탄 것과 사진 찍은 것, 갈 때 배멀미를 심하게 한 것 외에는 생각이 안나요.”

 

 

마침 부산 모 중학교 해양소년단 학생들이 모여 노는 방에 들어가서 보고 느낀 점에 대해 물었다. “친절하고, 깨끗하고, 선진국처럼 보였다. 물가가 비싸다. 재미있어서 한 번 더 갔으면 좋겠다. 머리스타일만 빼고 애들이 비슷하여 개성이 부족하다. 외국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자신감이 생겼다.”

 

경상북도 고등학교에서 대표로 선발되어 왔다는 여학생 4명을 만나 똑같은 질문을 했다. “질서를 지키고, 친절하며, 깨끗하다.  학교를 방문 했을 때 6교시 이후 클럽활동으로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지만 우리는 강제로 자율학습을 한다. 물가가 너무 비싸다. 길거리에 술이나 담배를 살 수 있는 자판기가 있어 청소년들이 쉽게 유혹될 수 있다. 절이 웅장함을 느꼈고 도시 속에 절이 있다.”

 

 

“오사카성 유물들을 안에만 비치하고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오사카성에서 한국말만 들려 여기가 한국인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자전거 문화. 길거리에서 전통 옷인 기모노를 입는 게 예쁘다. 화장실이 좁지만 있어야할 건 다 있다. 우리나라 화장지는 보풀이 일어나는 데 얇아도 그렇지 않았다. 화장지를 변기에 그대로 집어넣어 처리하기 때문에 화장실이 깨끗하다. 옛것을 보존하는 것이 좋았다.” 

 

시간은 오전 8시 해는 밝게 떠올랐지만 아직도 바다는 망망대해다. 밤늦게까지 놀던 사람들은 아직도 잠에 곤히 빠져들었지만 찬바람을 쐬고 싶어 밖에 나오니 섬 하나가 보인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대마도일 거라고 한다.

 

 

기왕 대학생 얘기도 듣고 싶었다. 짐을 꾸리는 대학생에게 물어보니 나하고 똑같이 출발했고 같은 날 돌아오며 여행 지역도 비슷했는데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도시가 크다. 지하철이나 교토시설 등은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전쟁이 많아서 인지 성의 규모가 크고 방어를 위한 시설물이 많았다. 너무 조용해서 죽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한국은 시끄럽지만 부대끼면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80년대는 경제발전에 주력하면서 활기가 있었다는데 부동산 버블이후 경기 침체가 느껴진다.”

 

옆자리의 어른들 대화를 들어보니 일본과 중국을 비교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걸까 아니면, 보이는 만큼 아는 걸까? 여행은 어느 정도 각성할 수 있는 만큼 도달해서 가는 게 더 현명한 게 아닐까? 어린이들이 놀이기구 탄 것 밖에 기억이 안 난다면.

 

아무튼 학년이 올라갈수록 세상을 바로보고 있다는 느낌에 흐뭇했다. 특히 고등학생들의 날카로운 눈썰미가 인상 깊다.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스퍼커소리가 부산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하는데 갈매기가 뱃전에 앉아 꾹 꾸르르 꾸르르 하며 반긴다.

 

 

터미널에 내려 부산 지하철 중앙역을 향해 건너가는 대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다. 여행 가방을 끄는 여행객들은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데 반대편 쪽 아저씨가 신호등도 바뀌지 않았는데 출발해 건너자 지나가는 차가 빵빵 거린다. 지하철을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간다. 예전에는 못 느꼈는데 오늘은 유난히도 시끄럽고 전화소리가 크게 들린다.

 

이게 차이 일까? 아니면 인간적일까? 하지만 남의 장점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덧붙이는 글 | U포터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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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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