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월 21일 광주우산초등학교를 졸업할 슬비. 앞으로도 맑고 티 없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지난 2006년 담양 관방제림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2월 21일 광주우산초등학교를 졸업할 슬비. 앞으로도 맑고 티 없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지난 2006년 담양 관방제림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 이돈삼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 갑니다….’
예전엔 이름을 가지고 친구들이 놀린다면서 짜증을 냈던 슬비가 그냥 웃고만 있습니다.

“슬비야! 누가 이런 노래 부르면서 놀리면 짜증 안 나?”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그런가보다 해요. 제 이름을 모르는 친구들이 없구나 하면서 좋게 생각해요.”

참 많이 컸습니다. 그 사이 슬비는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됐습니다. 여러 날 밤잠을 설치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1일이면 초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새삼스럽게 세월 빠르다는 걸 실감합니다.

 2월 21일 광주우산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슬비반(6학년 1반) 친구들. 2007년 수학여행 길에 청와대 앞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2월 21일 광주우산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슬비반(6학년 1반) 친구들. 2007년 수학여행 길에 청와대 앞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 이돈삼

1995년은 '깜짝 공화국'

슬비가 태어난 해는 1995년입니다. 돼지의 해입니다. 그 때는 정말 어수선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갖가지 부실과 부패가 들춰졌습니다. 당시 나라 안 뉴스를 보면 금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이 구속된 직후여서 그 뒷얘기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 노동운동의 새 장을 연 것도 그 해였습니다.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 것도 그 해 6월이었습니다. 5·18특별법이 제정된 것도, 부동산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것도 1995년이었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4월엔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일어나 100명이 넘게 숨졌습니다. 6월엔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해 500명이 넘게 죽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7월엔 전남 여수 앞바다에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좌초해 남해안 일대를 기름띠로 뒤덮기도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깜짝 놀랄 소식들이 줄을 잇는다고 해서 ‘깜짝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즈음 가뭄도 무척이나 심했습니다. 특히 1994년은 ‘100년만의 가뭄’이라 할 정도로 극심했었습니다. 전국의 댐과 저수지가 말라 온 국민이 식수난을 겪었습니다. 논밭도 거북등처럼 갈라졌습니다. 국민들은 밤마다 열대야에 시달리며 잠 못 드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꼭 6년 만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지난 2002년 어린이집 졸업식 때 슬비입니다.
꼭 6년 만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지난 2002년 어린이집 졸업식 때 슬비입니다. ⓒ 이돈삼

'이슬비'와 '슬비'의 차이

슬비의 이름에는 이 같은 시대상황이 반영돼 있습니다. 가뭄도 아니고, 홍수도 아닌, 적당한 비. 목마른 대지에 내리는 단비처럼, 꼭 필요할 때 적당히 내리는 그런 ‘슬기로운 비’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식적인 사람’의 의미입니다.

하여 이름을 가지고 놀린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그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달랬습니다. 너의 이름은 단순한 ‘이슬비’가 아니라 심오한 ‘슬비’라고 말입니다. ‘슬비’는 온 국민의 염원이라고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이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지만 나이 들면서 이름 때문에 고마워할 때가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슬비는 벌써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즐기고 있었습니다.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보면 슬비는 학교를 즐겁게 다닌 것 같습니다. 학교생활에 적응도 잘 했습니다.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서 학교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늦잠을 자느라 속을 태운 적이 없었습니다. 성격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여유를 갖고 생활하는 편입니다.

 슬비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 길 위에서 해찰도 즐겨 합니다. 지난 2007년 동신대 캠퍼스에서 동생 예슬이와 함께 가을길을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슬비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 길 위에서 해찰도 즐겨 합니다. 지난 2007년 동신대 캠퍼스에서 동생 예슬이와 함께 가을길을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 이돈삼

슬비의 주특기는 '해찰'

슬비는 조금 별난 구석이 있습니다. 대개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슬비는 그것보다 바람을 쐬러 가는 걸 더 좋아합니다. 쉬는 날 별다른 일 없이 집에 있으면 “바람 쐬러 가자”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 슬비는 나들이 길에 든든한 동반자가 됩니다. 어느 누구보다 편한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길 위에서 슬비는 해찰을 합니다. 해찰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봅니다. 구름의 생김새도 보고, 물의 색깔도 봅니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슬비는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감성도 얻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동심을 키웁니다. 가끔씩 보여주는 일기나 시에서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그냥 노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눈과 마음에 담은 것입니다.

물론 해찰이 좋지 않는 방향으로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밖에서 하는 습관이 집안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책을 펴 놓고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 상황에 항상 귀를 열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진득한 맛도 부족합니다. 아직까지는 애교로 봐줄만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슬비는 비교적 사물을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봅니다. 감수성도 예민한 편입니다. 그래서 장래 꿈도 예술계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애니메이션 작가에 대한 꿈을 몇 년째 키워오고 있으니까요.

 2007년 1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슬비. '사는 이야기'에 첫 기사를 올리고 채택이 되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2007년 1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슬비. '사는 이야기'에 첫 기사를 올리고 채택이 되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 이돈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슬비에게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다양한 각도로 만물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상상의 나래를 한없이 펼치면서 맑고 티 없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이름처럼 언제 어디서나 꼭 필요한 사람, 그리고 상식적인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슬비#이슬비#광주우산초등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