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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시랑헌을 떠나면서 찍은 미완성 포치 전경 지붕을 시랑정과 같은 이스팔트 싱글로 덮으려고 했으나 방수용 루핑이 부족하고 아스팔트 싱글의 색깔이 달라 마무리를 못했다.
▲ 마지막 손질만 남은 포치 급히 시랑헌을 떠나면서 찍은 미완성 포치 전경 지붕을 시랑정과 같은 이스팔트 싱글로 덮으려고 했으나 방수용 루핑이 부족하고 아스팔트 싱글의 색깔이 달라 마무리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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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도편수로 진급했어야!

나 같이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일주일간 연휴는 시간이 없어 미뤄놓은 일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작년 추석 연휴 때 시작한 시랑헌을 짓는 일이 그럴 것이다. 이번 설 연휴도 월요일과 화요일을 휴가내고 나니 9일간의 소중한 시간이 생겼다. 시랑헌의 포치를 달아내고 데크를 만들 시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출발 이틀 전에 집사람이 주차장 앞 눈길에서 넘어져 팔을 크게 다쳤다. 집사람의 마스터빌더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몇 개월 전부터 세운 계획을 전면 취소할 수 없다. 구례인력회사에 부탁한 인부를 보조 목수로 고용할 생각이다. 우리는 목수부대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전이라는 가상한 동기와 용기가 있다. 어쩌면 무모이겠지만.

청원 O우드 목재 매장에서 백오십 만원어치 목재를 사서 덤프트럭에 싣고 시랑헌을 향해 출발한다. 2월 2일 토요일 11시 경이다. 도중에 남원 제재소에 들러 3주 전에 주문한 기둥으로 사용할 부재를 추가로 싣고 3시경에나 시랑헌에 도착했다.

10일까지 앞으로 9일 동안에 시랑헌 포치와 데크를 건축할 예정이다. 시집간 딸과 아들이 오면 같이 쉬어야하는 날을 감안하면 실제 일할 날은 설날 전 3일부터 5일까지 3일과 명절 후 9일부터 10일까지 총 5일 정도가 될 것 같다. 졸지에 나는 도편수로 진급했고 집사람은 총감독이 됐다.

내가 알고 있는 도편수는 건물의 상세한 설계도가 머릿속에 들어있어 자와 연필을 가지고 목재에 선을 긋고 먹줄을 쳐주는 목수 중 목수를 의미한다. 나는 말이 도편수이지 어떤 건물이 어떻게 지어질지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자세한 설계도를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 없다.

시랑헌 앞에 3평 규모로 포치를 건축하고 그 앞에 5평 규모의 데크를 만들겠다는 것이 나의 설계도이다. 과정과 방법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난관이 닥칠 때마다 58년의 세월이 쌓아준 나의 상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데크설치작업

일요일에는 포치에 사용할 기둥과 서까래를 대패와 벨트샌더로 손질 후 작업에 필요한 준비를 확인하고 월요일 아침부터 본 작업에 착수하였다. 2x10(4cm x 24cm) 방부목을 이용하여 데크의 테두리를 둘렀다. 데크의 크기는 3.6m x 2.5m 이고 그 위에 3m x 2.5m 포치를 만들 계획이다.

포치를 만들기 위해 우선 데크를 만들어야하고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가 기본 골격을 만드는 단계이다.
▲ 데크의 기본골격 만들기 포치를 만들기 위해 우선 데크를 만들어야하고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가 기본 골격을 만드는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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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의 편의상 포치이지 국적 불명의 시랑헌 닮은꼴의 기둥방식의 목조 건물이다. 정자라고 해야 할지, 파고라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포치라고 해야 할지 정리가 잘 안된다.이번에 짓는 건물은 시랑헌보다 지붕이 40cm 낮다. 하이삿시 창을 달아 거센 북풍을 막았지만 바닥, 벽체, 지붕에 단열처리가 생략된 시랑헌의 덜 떨어진 동생쯤 되는 건물이다.

구례 인력회사에서 2명의 인부를 보내왔다. 차씨와 권씨이다. 일을 해본 경력을 물어보니 목수일은 전무하다. 차씨는 50세이고 권씨는 나와 같은 나이이나 생일이 나보다 2개월 늦다. 차씨는 자기의 주장이 강하고 권씨는 말수가 적고 시키는 일만하는 타입이다. 권씨는 나의 수족같이 나를 도와줬다.

데크의 골격을 만들고 난 다음 포치의 기둥을 세웠다.
▲ 포치의 기둥세우기 데크의 골격을 만들고 난 다음 포치의 기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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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x10 데크 바깥 테를 두르고 나서 포치의 기둥을 주춧돌 위에 세웠다. 새로 구입한 드릴홀더 덕분에 창고 지을 때와 같은 고생을 면할 수 있었다. 주춧돌과 기둥을 쉽게 연결하고 고정하였다. 2x10 테두리 안에 장선의 받침이 될 2x6 보-장선 (joist beam)을 85cm 간격으로 설치하였다.

이 보-장선을 받쳐줄 2x2 각재를 보-장선 아래에 설치하였다. 연결 못은 9cm 타정기 못을 사용하였다. 포치기둥에서 밖으로 연장될 60cm 길이의 데크는 보막이(장선을 연장하는 샛기둥)를 하여 보강하였다.

고정을 위한 시멘트 작업 후 상단 받임작업
▲ 포치기둥과 주춧돌 고정을 위한 시멘트 작업 후 상단 받임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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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선 위에 상판 2x2 장선을 30cm 간격으로 설치하고 그 위에 2.4cm x 11cm 천연방부목 삼나무 콤보 판재를 깔았다. 데크를 완성하고 나니 보기가 매우 좋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우리 오합지졸이 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데크는 매우 실용적이다. 이 데크위에 지붕이 있는 구조를 포치라고 부른다. 한옥의 사랑채 앞마루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포치를 만들 차례이다.

데크의 최종 상판을 붙이고 포치기둥을 세운장면
▲ 데크완성 후 포치 골격만들기 데크의 최종 상판을 붙이고 포치기둥을 세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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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치 기둥 짜맞춤

기둥으로 사용할 목재를 구입하여 마룻대(상량)와 측면 윗깔도리(수평기둥)를 같은 길이로 설치할 계획으로 3.6m 로 재단하여 대패와 샌더로 손질하고 표면을 다듬었다. 앞면의 윗깔도리를 우선 설치하였다 측면의 윗깔도리가 앞면 윗깔도리를 지나 마룻대같이 앞쪽으로 60cm 연장되도록 설치할 차례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맞춰 봐도 측면의 윗깔도리가 앞쪽으로 마룻대같이 60cm 더 연장되도록 장부(짜맞춤을 하기 위해 목재에 파는 구멍)를 팔 방법이 없다. 할 수 없이 앞면 윗깔도리와 만나는 지점에서 측면 윗깔도리를 절단해야 했다.

측면 윗깔도리가 앞면 윗깔도리를 넘어 마룻대 같이 연장할 방법이 없어 측면 윗깔도리를 앞면 윗깔도리와 만나는 지점에서 절단한 기둥구조
▲ 시랑정과 연결된 포치 골격 측면 윗깔도리가 앞면 윗깔도리를 넘어 마룻대 같이 연장할 방법이 없어 측면 윗깔도리를 앞면 윗깔도리와 만나는 지점에서 절단한 기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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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커다란 실수 없이 멋진 포치를 만들겠다는 나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한옥 목수들의 장부파기가 너무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 전기톱을 이용하고 최소한의 끌 작업으로 짜맞춤을 끝내려고 한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확실히 판명되는 순간이다. 한옥 목수들이 사용한 방법 외에는 측면 윗깔도리가 앞면 윗깔도리를 넘어가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날도 저물고 작업의욕도 없어져 5일 작업을 끝내고 차씨와 권씨를 돌려보냈다. 다음날은 애기 설날이므로 일을 할 수 없단다. 이제 다시 나와 손 다친 집사람 둘이 남았다. 딸과 사위가 외손자를 데리고 오는 8일 이전에 포치 윤곽이라도 만들고 싶은 생각에 6일 하루 동안 실랑이 하면서 서까래를 걸고 낙엽송 송판을 서까래 위에 붙이는 작업을 혼자서 끝냈다.

마을 분들과 새해 인사

오늘은 설날이다. 미완성된 포치에 조상님들 차례상을 차리고 저녁 늦게 도착한 아들과 함께 조상님들께 차례를 드렸다. 마을 이장이 마을 회관에 동네 분들이 모두 모여 세배를 한다는 안내 방송을 한다. 설날 아침부터 포치 작업을 하기도 어색하여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나눌 겸 회관으로 찾아갔다.

귀향한 젊은 사람들과 마을 어른들 간의 세배
▲ 신년세배 귀향한 젊은 사람들과 마을 어른들 간의 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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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세배 후 나눠먹을 잔치상들
▲ 설날 잔치상 마을 사람들이 세배 후 나눠먹을 잔치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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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 집사람과 같이 들어서자 한 이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마을 분들과 인사를 나누나보니 한 이장과 한사람 정도가 나보나 나이가 적고 대부분은 나보나 연상인 어른들이다. 명절 때나 젊은이들을 볼 수 있는 우리의 농촌 현실을 재확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도 이런 고유 풍속이 살아있는 마을에서 나의 여생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시랑헌에서 외손자 수환이와 첫 맞남

다음날 아들과 같이 포치의 아래 벽체를 붙이고 고정의자를 만들고 있노라니 딸이 외손자와 같이 시랑헌에 도착하였다. 나와 집사람의 외손자 수환이가 난생 처음으로 시랑헌을 방문하는 날이다. 집사람이 개발한 요리(돼지고기를 두텁게 썰어 쿠킹호일에 롤케익 같이 말아 화목난로 구이통에 넣어 2시간 정도 오랜 시간에 걸쳐 구어 낸 구이)에 포도주 한잔씩 곁들이니 부족함이 없다.

딸과 사위도 매우 만족한 모양이다. 딸은 우리의 오두막인 시랑헌을 매우 맘에 들어 했고 사위와 난로 가에 앉아 나누는 대화의 분위기도 좋았다. 저녁에는 외손자 수환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장소를 화엄사 부근의 콘도로 옮겼다.

포치를 만들고 나니 너무 바람이 거세 창문을 달았다. 
화목난로를 설치하고 이를 위한 장작을 쌓아놓으니 큰 부자가
된느낌이다.
▲ 포치에 창을 달고 화목난로 설치 포치를 만들고 나니 너무 바람이 거세 창문을 달았다. 화목난로를 설치하고 이를 위한 장작을 쌓아놓으니 큰 부자가 된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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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 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굴착기 기사와 권씨가 시랑헌에 도착하여 일할 준비를 하고 있단다. 애들이 일어나는 대로 지리산 온천에 있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집사람과 약속하고 새벽의 흩뿌리는 눈발을 헤치고 콘도를 떠나 시랑헌으로 돌아왔다.

굴착기 기사는 OO건설 작업반장이 내 굴착기를 운전할 기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소개해준 김 기사이고 권씨는 설날 전 3일간 나와 같이 손을 맞춘 목수보조원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 시랑헌 지기 박씨 아저씨까지 셋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권씨와 포치지붕을 마무리하기 위해 합판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폭설이 내린다. 매우 추운날씨에 몰아치는 북풍한설은 지붕위에서 합판작업을 하는 나와 권씨를 위험한 상태까지 몰고갔다.

집사람은 사위와 딸 보기가 민망했는지 아침식사를 애들과 같이하기 위해 빨리 식당으로 오라고 두세 번 전화를 하지만 내가 자리를 비울 처지도 못 되고 잠깐 동안에 길에 쌓인 눈 때문에 비탈진 길을 간다는 것도 위험하다.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집사람, 사위, 딸, 아들 모두가 나의 처사가 못마땅해 서운해 했다.

전화벨 소리가 계속하여 울린다. 느낌이 이상하여 받았더니 처아버님의 부고이다. 어제 저녁도 잘 드시고 소주 한잔까지 반주로 마시고 저녁 늦게 자리에 드신 분이 영영 일어나지 못하시고 본 자리로 돌아가셨단다. 올해 84세 이시고, 만일 날씨가 좋아 고로쇠물이 나왔다면 어제 저녁은 우리 시랑헌에서 주무셨을 분이다.

덧붙이는 글 | 서툰목수가 오두막을 짓고 데크와 포치를 지어가는 과정입니다.



태그:#오두막, #데크, #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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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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