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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공연 1000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가객 김광석.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저자인 임종진씨는 "형의 목소리가 치료제였음을 형의 잔잔한 울림이 이토록 큰 위안이었음을 상처를 입을 때마다 알게 된다"고 고백했다.
 '소극장 공연 1000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가객 김광석.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저자인 임종진씨는 "형의 목소리가 치료제였음을 형의 잔잔한 울림이 이토록 큰 위안이었음을 상처를 입을 때마다 알게 된다"고 고백했다.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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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6년 1월 우리 곁을 떠났던 가객(歌客) 김광석이 따뜻한 흑백필름으로 되살아났다.

오랫동안 '사람'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해온 임종진(41)씨가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램덤하우스)>를 낸 것. 천상의 김광석을 지상으로 내려놓은 이 책은, 연필로 꾹꾹 눌러쓴 연서의 느낌을 줄 정도로 김광석을 향한 애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저자인 임씨는 책의 서문에서 "그에 대한 기억을 필름과 더불어 들추어 내고 싶었다"며 "혼자만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형을 아끼고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썼다.

"내 피사체가 풍경에서 사람으로 옮겨간 첫 번째 모델"

임씨는 지난 1992년 어느날 김광석과 조우했다. 한 음반가게의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그의 노래 <거리에서>가 그를 전율케 한 것.

"내 노래의 주인을 그제야 찾았던 것입니다. 가슴을 후비고 들어와 울리던 목소리는 이제 알았느냐며 그대로 가슴 한켠에 앉았습니다. 그대로 자리를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음반가게에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습니다. '이거 누가 부른 거예요?' 주인아저씨가 이것도 모르냐는 듯 힐끗 쳐다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을 주었습니다. '김광석이유!'"(23쪽)

김광석의 노래에 전율한 이후 그는 1992년 늦가을부터 1995년 여름까지 김광석의 공연장을 쫓아다니며 그를 찍었다. 특히 1995년 여름은 '소극장 공연 1000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한국음악사에 남긴 때였다. 어떻게 그는 김광석을 카메라 앵글에 담을 생각을 했을까?

"거리에서 <거리에서>를 듣고 그의 콘서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992년 봄처음으로 김광석 콘서트에 갔다가 눈이 뒤집어졌다. 어떻게 저런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있을 수 있을까? 그의 노래가 내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 그 해 복학해서 사진을 막 배우고 있던 때였다. 그런 상황들이 겹치면서 그를 한번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교를 부릴 줄 몰랐던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당시 그가 찍은 김광석의 사진은 투박하면서 따뜻하다. 그는 "김광석은 내 피사체가 풍경에서 사람으로 옮겨간 첫 번째 모델이었다"고 고백했다. 

사진으로, 노래로 인연을 맺은 김광석과 임종진씨.
 사진으로, 노래로 인연을 맺은 김광석과 임종진씨.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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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소중한 기록들은 10여년간 묻혀 있었다. 김광석이 자살로 삶을 끝낸 이후 필름 속에서 살아있는 그를 바라보는 일이 퍽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필름 컷수가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정점의 순간에 김광석을 찍었다. 카메라 프레임으로 그를 보고 있다가 이거다 하는 순간에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래서 필름에는 그의 걸음걸이, 숨소리, 웃음소리, 하모니카 소리 등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런데 그가 사라졌다. 필름에는 그가 그대로 살아있는데 말이다. 그게 정말 힘들었다. 노래는 그냥 들으면 되지만…."

"세상을 아우르는 목소리를 가진 유일한 가수"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김광석의 '소극장 공연 전성기'였던 1992년 가을부터 1995년 여름까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김광석의 '소극장 공연 전성기'였던 1992년 가을부터 1995년 여름까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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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야 그 오래된 필름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리고 스스로 "소리 좋은 수많은 가수들 중에서 왜 유독 그의 음성이 이토록 오래도록 남아 울리는 걸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노래는 세상의 모든 상황을 아우르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내 레퍼토리도 <거리에서>→<사랑했지만>→<그날들>→<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으로 옮아갔다. 요즘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래 <내 마음의 풍경>이나 <회귀>가 절절하다. 아마도 그는 세상을 아우르는 목소리를 가진 유일한 가수가 아닌가 싶다."

김광석의 노래는 전염성도 강하지만, 그 전염상태가 매우 오래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김광석의 죽음을 외면하고 싶었던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만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마찬가지다.

"그의 노래는 지금 더 울림을 주고 있다. 우리는 점점 새로운 것, 특별한 것, 부자되는 것, 경쟁하는 것 등에 빠져 들고 있다. 이것에 잘 맞춰야 '세상을 잘 산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의 가치를 얘기하고 있다. 그는 소소하고 평범한 것의 가치를 몸소 들려준 가수다. 게다가 얼굴도 얼마나 평범한가?(웃음)"

그는 '가장 김광석스러운 노래'로 <나무>를 꼽았다. 그에게 <나무>는 "형의 소망이 가장 잘 묻어나온 노래"(107쪽)다.

'한결 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면 / 눈부신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소 /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소 / 한결 같은 망각 속에 나는 움직이지 않아도 좋소 /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소 /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오 /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소 /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 하오 /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 하오 자라려 하오'

그는 "<나무>는 내가 희망하는 삶이기도 하다"며 "'김광석스러움'은 '임종진스러움에 대한 확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0여년 동안 기자로 생활하면서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했고, 거대담론을 얘기해야 했다. 이라크에 가서 그 곳 꼬마들이 더 눈에 들어왔지만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미국의 침공관련 기사만 보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큰 것보다 작은 것, 보편적인 것의 가치나 의미, 삶의 소중함을 얘기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것보다 낡은 것, 오래된 것,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것에 황홀경을 느낀다.

예전에는 사진가보다는 더 나은 삶, 사회를 기대하는 운동가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사진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냥 내 사진이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광석의 노래에 더욱 더 동질감을 느낀다."

캄보디아에 김광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김광석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를 펴낸 임종진씨.
 김광석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를 펴낸 임종진씨.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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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책이 나오기 전 대학로에 위치한 인문학서점 '이음아트'에서 김광석 사진전을 열었다. 몇 군데에서 거창한 전시 제안이 있었지만 "사진작가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다"는 그는 소박한 '서점 사진전'을 고집했다. 반응은 아주 좋았다.

"그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와 그의 노래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작은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줬다. 그가 보여준 가치에 공감한다. 특히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그의 도움이 컸다. 광석이형 고마워!"

그는 조만간 캄보디아로 떠난다. 캄보디아에 '무료사진관'을 세우고 그 곳의 시골을 다니며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들의 학비도 지원해줄 생각이다. 여전히 그의 작업은 '사람'이 중심이었다.

"내가 북한이나 캄보디아·이라크에서 찍은 것은 '외국인'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이번에 캄보디아에 가서 가족사진도 찍어주고, 학비도 지원해주면서 그들에게 김광석의 노래를 들려줄 생각이다."

앞으로 캄보디아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을 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에 실린 사진을 구입하고 싶의신 분들은 김해권 G-print(충무로) 대표(011-475-8511)에게 연락하면 됩니다. 사진 판매 수익금은 캄보디아 아이들의 학자금과 무료 사진관 운영에 쓰일 계획입니다.

*오는 2월 22일(금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대학로의 이음아트에서 임종진씨의 저자 사인회와 카페 '섬' 지기인 박정석씨의 작은 공연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태그:#김광석,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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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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