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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불사 가는 길.
삼불사 가는 길. ⓒ 안병기
까마귀도 경을 외우며 간다는 견성골
 
나는 지금 삼정산(1,210m) 삼불사로 가는 길이다. 이제 막 도마마을(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산 자락에 있는 마을)을 지나왔다. 계곡과 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진다. 견성골이라는 골짜기의 이름을 떠올린다. 견성이란 깨달았다는 뜻이다. 이 골짜기에 이르러 삶에 품은 깊고 오묘한 비밀을 눈치 챈 사람은 누구일까. 이 산꼭대기 상무주암이라는 암자에서 수행했다는 보조국사 지눌의 이야기인가.
 
아무튼 이 길에선 까치나 까마귀도 경을 외우며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무심하게 산을 오를 뿐이다. 내 두 발아래에서 눈과 신발이 만나 이따금 뽀드득 소리를 낸다. 설마 이게 경을 외는 소리는 아니겠지.
 
재작년 여름, 실상사에서 약수암을 거쳐 삼불사의 코앞까지 갔다가 어둠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다. 오늘 나는 복수혈전이라도 벌이듯 허위허위 산길을 오른다.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 골짜기는 길고도 깊다. 어쩌면 까마귀가 이 골짜기를 가면서 경을 외는 것은 멀고 깊은 산길의 적막함을 달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삼불사로 가는 길과 문수암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는 삼불사까지는 1km가 남았다면서 우측 오르막길을 택하라고 알려준다. 산길이 갑자기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길 위의 눈도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깊이 쌓였다. 발이 푹푹 빠진다. 힘들 때마다 뒤돌아서서 골짜기를 바라본다. 골짜기 사이로 천왕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눈 쌓인 천왕봉은 더욱 신령스럽다.
 
 삼불사 300m. 산 위에서 칠순이 넘어 뵈는 할머니 한 분이 조심조심 내려오신다. 저 위 삼불사에서 내려오시는 길이란다. 이제부터는 길이 더 험하고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당부하신다. 아닌 게 아니라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쌓인 눈도 그렇지만 길의 경사도 여간 가파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 인간은 상처만 입지 않는다면 위험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을 좋아한다"라고. 겨울산을 오르는 묘미 가운데 하나는 미끄러질 듯한 위태로움과 실제로 미끄러지는 상황 사이를 즐기는 스릴에 있는지 모른다.
 
조선 초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삼불사
 
 삼불사 법당.
삼불사 법당. ⓒ 안병기
 
 금대산과 백운산.
금대산과 백운산. ⓒ 안병기
이윽고 삼불사에 도착한다. 마당에 매 놓은 개 한 마리가 나그네를 보더니 컹컹 짖어댄다. 설마 스님들한테 "낯선 나그네가 오거든 쉴 새 없이 짖어라"라고 몰입식 교육을 받은 건 아니겠지. 암자를 돌아보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르느라, 마당 가에 선다.
 
저 멀리 삼봉산과 백운산, 금대산이 내려다보이고, 아까 지나온 도마마을도 보인다. 유장하면서 장쾌한 풍경이다. 풍수장이들이 끄떡하면 내세우는 금계포란형이란 게 이런 게 아닐까. 도마마을의 집들이 마치 삼불사라는 닭이 품은 알 같다.
 
삼불사는 조선 초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삼불사의 전각들은 조촐하다. 법당과 산신각, 그리고 법당으로 올라오는 길목에 있는 진흙 벽돌로 지은 요사채가 전부이다.
 눈 쌓인 장독대.
눈 쌓인 장독대. ⓒ 안병기
 
그리고 법당 오른쪽 바위 아래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생긴 삼층석탑 한 기가 지키고 있을 뿐이다.
 
개 짖는 소리에 인기척을 느꼈던지 스님 한 분이 법당문을 열고 내다 보신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현재  이곳엔 몇 분이나 거처하시느냐"라고 여쭈니 비구니 스님 두 분이 지키신다고 한다.
 
법당 옆에는 눈에 파묻힌 장독들이 있다. 장독이 반질반질하게 잘 닦여 있다. 내겐 비구니 사찰에 오면 습관처럼 장독을 들여다보는 습성이 있다. 장독의 청결 상태로 스님들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려는 듯이 말이다. 어찌 장독 닦인 상태 하나로 스님들의 수행력을 재겠는가. 그렇지만, 게으름이 정신의 독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등불만 홀로 너울거리는 밤 풍경을 상상하다
 
 법당 위에 있는 산신각.
법당 위에 있는 산신각. ⓒ 안병기
 산신각 처마 끝에 달린 풍경과 등.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산신각 처마 끝에 달린 풍경과 등.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 안병기
법당 위 언덕에는 도시의 카페를 방불케 하는 아주 멋들어진 건물이 있다. 산신을 모신 산신각이다. 축대 아래엔 꽤 키가 큰 전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조심조심 돌층계를 밟고 올라간다. 촛불이 켜지긴 했지만, 산신각 안은 약간 어둑어둑하다. 산신 탱화와 석상이 모셔져 있다.
 
산신각의 붉은 황토벽을 살펴본다. 산신이 사는 집에 어울리는 환경친화적인 집이다. 추녀 끝에는 현대적 감각을 살린 등과  풍경이 달렸다. 이곳에서 맞는 밤은 얼마나 환상적일까. 어둠이 산자락을 삼키고 추녀 끝 등불만 홀로 너울거리는 밤 풍경을 상상해본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벽소령의 달밤을 생각한다. 벽소령의 달밤은 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듯 몽환적이다. 이곳에서 맞는 밤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울 것이다. 그런 풍경 속에 있으면 제아무리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를는지 모른다. 살다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서러운 때가 있지 않던가.
 
저 멀리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이 바라다 보인다. 풍경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보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때그때 새로 느낌이 태어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마치 자신의 마음 속 외로움을 애써 감추려는 중년의 아저씨 같다.  
 
모든 종류의 깨달음은 더디게 찾아오는 법이니
 
 산신각에서 바라본 풍경.
산신각에서 바라본 풍경. ⓒ 안병기
 법당 마당가에서 바라본 천왕봉.
법당 마당가에서 바라본 천왕봉. ⓒ 안병기
산신각을 내려와 다시 마당 가에 선다. 천왕봉을 더 잘 보기 위해서다. 여기선 하봉·중봉·천왕봉은 물론 제석봉·연하봉·촛대봉까지 보인다.  3년 전 가을, 난 저 능선을 따라 걸어간 적이 있다. '종주'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그러나 종주를 마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기록을 남기려고 산을 오르는 행위란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것인가를.
 
어쩌면 지리산은 전체가 한 채의 커다란 선방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천왕봉은 그 선방 한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고승 같다. 오늘 나는 그의 상좌가 되어 그의 무언의 법문을 듣는다. 저 위대한 스승께선 내게 무어라 말하는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난 오늘도 스승이 베푸는 법문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집으로 돌아가서 일상에 파묻혀 참나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때, 그때에 이르면 스승이 설하던 법문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게 될 테니까. 모든 종류의 깨달음은 더디게 찾아온다. 후회라는 감정이 다녀가기 전에 도착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지금은 다만 지리산의 정기를 호흡하고 천왕봉이 설(說)하는 무언의 법문을 가슴에 담아갈 뿐이다,
 
산줄기는 뻗어가고 마음은 골짜기를 굽이친다. 이제 다음 행선지인 문수암을 향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7일에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삼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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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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