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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소리. 이게 얼마 만인가? 무조건 반갑다. 조건 없이 다가서며 안부를 묻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름 부르기를 망설이다 옆 사람의 눈치를 본다. 들었던 이름이다. 그리고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얼굴을 떠올려 본다.

 

오랜만에 만난 죽마고우 동창생들. 동창회가 열렸다. 지천명에 들어선 나이에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전남과 광주에 거주하는 동창들의 동창회라고 했다. 이번엔 순천에서 한다고 장소를 섭외하란다.

 

초등학교 동창회. 벌써 졸업한 지도 36년. 고흥군 포두면 송산에 자리잡은 작지 않는 학교였지만 지금은 한 학년이 10여 명 정도라 한다. 세월의 무상함이라 탓하기엔 선배들의 무심함이 부끄럽다.

 

그래도 매년 광복절이면 열리는 송산학구 체육대회는 금년이면 벌써 32회째다. 우리가 송산 초등학교 23회 졸업생들이니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열려온 학구 체육대회다.

 

하얀 머리카락과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살들이 세월의 녹녹함을 묻어낸다. 직업도 다양하다. 사장이 된 친구도 있고, 아직도 직원인 친구도 있다. 공무원도 있고, 회사원도 있다. 군인도 있고, 농부도 있다. 모두 무엇을 하든 오늘은 그냥 동창이다. 그래서 동창이 좋은지도 모른다.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동창들은 편이 나뉜다고 한다. 직장과 신분에 따라. 그러나 죽마고우들은 편이 없단다. 크게 보면 모두 집안 식구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구 집에 무엇이 있고, 누구는 누구와 짝사랑을 했고. 모두가 다 안다. 그래서 또 한바탕 웃고.

 

술잔이 오간다. 더러는 이제야 배고픔을 느꼈는지 밥을 찾는다. 맛깔스러운 서대회와 새조개회가 구미를 당긴다.

 

한 친구가 건배를 외친다. 서울에서 그리고 멀리 마산과 진해에서까지 동창회를 환영하려고 동참한 친구도 있다. 원삿이란다. 소주와 동동주가 질펀하다.

 

동동주 한 잔에 서대회 한 접시면 온상이 가득한 듯하다. 또 다시 건배를 외친다. 건강을 위해. 사업을 위해. 그리고 가정을 위해.

 

한 친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있던 친구들의 눈빛이 슬퍼 보인다.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작지 않는 나이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도 오늘은 다 초등학생이다.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모두 그냥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폼을 잡는 친구도 없고, 생활이 조금 어렵다고 힘들어하는 친구도 없다. 오로지 동창생만 있을 뿐.

 

이야기는 끝이 없다. 담임선생님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다. 선생님에게 혼났던 이야기에 이르자 서로 자기는 아니라고 난리다. 그래도 소용없다. 기억력 좋은 녀석이 하나하나 다 찾아낸다. 매 맞고 도망 다닌 이야기는 단연 일품. 누구네 집에 서리 갔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또 한 번의 건배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동동주 잔이 굉음을 내자 코를 쏘는 홍어회가 들어온다. 주인댁 아주머니도 고흥 포두 사람이다. 그래서 특별 서비스란다. 그래서 고향 사람이 좋은지도 모른다.

 

각 지역 대표들의 인사말이 오간다. 다들 감사하다는 이야기 끝에 모두의 건강을 서로가 챙긴다.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하는 생각에 돌아오는 길은 아무래도 기쁨과 회한이 교차한다.

 

다음번 모임에도 모두 건강하게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친구야, 항상 영원하여라.


태그:#동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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