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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니아 극장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대형 멀티플렉스에 익숙해졌던 터라,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매표소 4~5개 정도가 있다. 극장 외벽은 투명한 유리로 돼 있는데, 그 주위로 동그란 식탁 등이 놓여 있었다. 의자는 매표소 옆 귀퉁이에 있는 게 전부였다. 장소가 좁기 때문에, 주로 서서 휴식을 즐기게 해 놨다.

 

대신 그 맞은편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마련해놨다. 겉옷과 가방 등을 맡아두는 보관소였다. 국내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모난 철제 상자가 아니다. 나무로 된 대형 옷걸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국내에서 비싼 레스토랑에 가면,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외투를 가져다가 맡아주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직원 2~3명이 카운터에 서 있다가, 손님이 다가가면 친절하게 옷 등을 받아다가 그곳에 걸었다. 국내 영화관에선 보지 못한 것이라, 사뭇 신기했다.

 

사실 겨울에 영화를 보러 가면 겉옷 때문에 신경이 쓰이긴 한다. 입고 있자니 덥고, 벗자니 들고 있기 귀찮다. 국내서도 이런 시스템을 들여와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당장 돈벌이에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극장도 어차피 서비스다. 자기가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 자주 찾게 마련이다. 아,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가격은? 물론 '공짜'(for free)다.

 

허름하다해도 명색이 극장,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 이곳도 북적일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오전 11시 40분쯤, 전에 상영된 영화(Lady Jane)가 끝나 2층에서 사람들이 물밀듯 쏟아졌다. 사실 우리 같으면 맡긴 옷 빨리 찾아가려고 서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하나 같이 여유로웠다. 함께 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줄이 밀려 있으면, 조용히 뒤에 섰다. "빨리 달라"며 소리 지르는 사람 하나 없었다. 행동은 느리지만, 평화로워보였다.

 

이곳 극장 입구는 2층. 로비 끝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입구가 나온다. 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근두근' 베를린에서 보는 첫 영화라 흥분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스크린이 생각보다 작았다. 게다가 그 앞에는 생뚱맞게 '붉은 커튼'이 쳐 있었다. '무슨 쌍팔년대도 아니고 말이야.'

 

'중간쯤이 괜찮겠다' 싶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통로 쪽에 앉은 여성에게 "Excuse me"라고 한 뒤 몸을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고맙게도(?) 이 여자, 다리를 쩍 벌려 길을 내줬다. 지하철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우리네 '쩍벌남'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지나가기 쉽지 않았다. 몸을 세로로 돌려, 다리 하나씩 옮긴 뒤에야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 극장도 그렇지만, 정말 앞뒤 간격 좀 조금만이라도 넓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뿐만 아니다. 앞 뒤 의자 사이 경사도 거의 없었다. 의자에 곧게 앉으면 앞머리가 스크린을 가려 영화를 못 볼 정도였다. 제대로 보려면 엉덩이를 반쯤 아래로 내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야 했다. '설마, 이런 자세로 봐야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옆을 둘러봤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옆에 앉은 한 남자는 앞 사람이 신경 쓰였는지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아,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다. 우라니아는 국내와 달리 정해진 자리가 없다. 쉽게 말해, 선착순(fist come, first served)이다. 좋은 자리에서 영화 보고 싶으면,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좋은 자리라는 개념이 필요 없는 듯했다. 경사가 거의 없어, 어느 자리에 앉아도 머리가 걸린다. 그렇다고 제일 앞자리는 너무 가까워 어지럽다. 그냥 적당히, 자세 조절해가며 보면 비슷비슷하다.

 

 극장 안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국내와 비교했을 때, 스크린에서 좌석 끝까지,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 거리는 더 길었다. 눈대중으로 보면, 한 20~30% 정도 더 컸다. 그래서 스크린이 더 작아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일반인의 눈으로 본 것이니, 태클은 걸지 말아주길 바란다. 비상구는 스크린편 양쪽에 하나씩 있었으며, 뒤에는 들어온 입구 하나뿐이었다. 합해서 모두 3개. 낮 12시 정각, 영화는 시작됐다. 벽 쪽에 켜졌던 작은 불빛이 하나씩 꺼지면서, 안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스크린에 드리워진 붉은 커튼도 서서히 걷혔다. 영화 얘기는 나중에 따로 떼서 할 테니, 여기까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날 밤, '붉은 커튼'의 비밀은 밝혀졌다. 일행과 합류했을 때 현지 가이드에게 물으니, 본래 우라니아는 "연극, 이벤트 등을 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도 원래 뮤지컬하우스였다"고 했다. 다른 원정대원들에게 그동안 "촌스럽다"고 떠벌이고 다녔는데, 괜스레 미안해진다.

덧붙이는 글 | '베를린영화제원정대'는 지난 12일 독일로 출국, 다음 블로그를 통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원정대는 미디어 다음(daum)과 CGV, 한진관광이 공동으로 후원한다.

이기사는 블로그(blog.daum.net/erowa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라니아, #우라니아 광장, #우라니아 극장, #베를린, #베를린영화제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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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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