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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꽃을 피울 기린초의 새싹이 부지런히 올라왔다.
▲ 기린초의 새싹 한 여름 꽃을 피울 기린초의 새싹이 부지런히 올라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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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따스하다. 입춘과 우수가 지났으니 분명 '꽃샘추위'일 것이다. 서울 하늘에 그들의 시샘을 받을 만한 것들이 뭐 그리 많다고 기승을 부릴까 싶었는데, 어라, 이미 봄이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노란꽃을 피우는 기린초의 새싹이 추위를 견딘 표시를 하느라 연록의 이파리에 붉은 립스틱을 살짝 바르고 봄햇살을 맘껏 받고 있었다. 봄에 피어나는 꽃들만 싹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름과 가을에 피어날 꽃을 위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부터 새싹을 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라는 시구가 마음 깊이 와닿는다.

리차드 리키는 <제6의 멸종>이라는 책에서 지난 100년 사이에 지구동식물의 1/4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멸종되었으며, 매년 3만종 이상의 동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인간의 비인간화를 경고하고 있는 그의 글들을 보면서 간혹 지난해 만난 것들을 올해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할 때가 있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국화의 새싹도 피어났다.
▲ 국화의 새싹 가을에 꽃을 피우는 국화의 새싹도 피어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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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아니면 긴 겨울 끝에 만나는 초록의 기운때문인지 새싹만 보면 나는 미칠 것 같이 좋다. 새싹뿐 아니라 서둘러 꽃을 피우는 꽃님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찬바람이 부는 날 아침, 가만히 올해 피어난 꽃들과 피어날 꽃들을 생각해 보았다. 풀꽃들 중에 복수초, 앉은부채, 변산바람꽃, 노루귀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 곧 뒤를 이어 만주바람꽃, 처녀치마, 너도바람꽃이 피어나겠구나 생각하니 어서 오일장에 가서 고무신을 하나 장만해야지 마음이 급해진다.

지난해 고무신을 한 켤레 장만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직 장만하질 못했다. 갑자기 고무신 타령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등산화나 운동화를 신고 산행을 하면 발은 편하지만 땅과 호흡을 하지도 못할 뿐더러 등산화나 운동화에 밟히는 풀꽃들의 입장에서 보면 군홧발에 짓밟히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때문이다.

좀 더 깊은 이야기는 직접 실천에 옮긴 후 '고무신 신고 산행하기' 혹은 ' 자연과 하나되는 산행'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이다.

가을에 피어날 꽃을 위해 꽃샘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피어난 국화의 새싹을 보면서 꽃 한송이 피우기 위해서 이렇게 장고의 시간을 준비하는데 사람들은 너무 빨리 열매를 맺는 것에만 급급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상큼한 봄나물로 먹을 수 있는 돌나물의 새싹이 탐스럽다.
▲ 돌나물의 새싹 상큼한 봄나물로 먹을 수 있는 돌나물의 새싹이 탐스럽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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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별을 닮은 꽃을 피우는 돌나물, 그는 봄나물로 인기가 좋다. 요즘이야 하우스에서도 많이 재배하는 덕분에 한겨울에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지만 그 맛이 긴 겨울 노지에서 보낸 후 나온 새싹만 할까?

그냥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거름을 주면 더 잘 자란다. 자취를 할 때 친구들의 방문에 뒷간 뒷켠에서 거름을 듬뿍먹고 자란 실한 돌나물을 뜯어 초고추장을 듬뿍 뿌려 돌나물반찬을 내어놓은 적이 있다. 맛나다며 연신 돌나물을 비벼 두어그릇 밥을 뚝딱 해치웠던 친구가 돌나물을 뜯어온 곳이 뒷간 근처라는 것을 알았다.

"야, 더럽게…."
"더럽긴, 돌고 도는 거 아니냐? 편견을 버리라구, 제일 맛난 호박은 똥거름을 많이 먹고 자란 호박이란 말이다."
"도 닦는 기분이다. 해골바가지에 들어있는 물을 마시고 득도한 원효가 된 기분이다."

여름에 피어날 꽃을 위해 피어난 새싹
▲ 애기똥풀의 새싹 여름에 피어날 꽃을 위해 피어난 새싹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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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새싹들이 피어날 때 눈에 많이 띄는 새싹이 있었다. 그러나 새싹만 낼 뿐 꽃을 피우지 않아 그냥 잊혀져버리는 흔한 싹이 있었는데 지난해에야 비로소 그가 애기똥풀이라는 것을 알았다. 줄기를 꺾으면 애기똥같은 빛깔의 진액이 나오고, 노란꽃을 피우는 애기똥풀.

오늘(24일) 만난 봄의 흔적들,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오늘에서야 보았는데, 봄에 꽃을 피우는 것들만 새싹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름, 가을에 피어날 꽃들도 꽃샘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피운다는 것을 비로소 본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 '봄', 올해 내게 각별한 봄이 될 것 같은 예감에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온다. 겨울 지나고 다시 돌아오는 봄, 차가운 사람들의 마음에도 하나 둘 푸른 새싹들이 돋아나는 계절이면 좋겠다.


태그:#새싹,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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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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