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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가 학교 시찰을 서둘러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가나의 결혼풍습이 궁금해져 다니엘에게 말을 걸었다.

장난기 어린 웃음을 보이면서 다니엘은 가나의 전통적인 결혼풍습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우선 자기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잖아요. 그러면 친구들에게 미리 알려요. 그리고 그 여자가 장을 보러 나오거나 물을 길러  나온 틈을 타서 가마니 속에 그 여자를 억지로 집어넣고 집으로 데리고 와요.”

나는 지나치게 남성 위주인 것 같은 그 결혼풍습에 반신반의하면서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면 그 납치당한 여자는 원치 않을 경우에도 그 남자와 계속 살아야 하나요?”

다니엘은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여자는 하룻밤을 그 남자와 보내고서도 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집을 그냥 걸어 나오면 되요. 그리곤 그 상황에서 남자도 더 이상 그 여자를 붙잡아선 안돼요.”

여성에게 최소한의 선택권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성 위주의 풍습인 것은 매한가지인 것 같았다.

"한국에도 보쌈이라고 해서 비슷한 풍습이 있었던 게 사실이죠. 혼기를 넘긴 총각이 과부를 몰래 보에 싸서 데려와 부인으로 삼던 일이 한국에도 있었답니다."

“하하. 그렇군요. 우리도 이건 다 옛날 이야기지요. 우리 아버지 세대 때라고나 할까요?”

갑자기 나는 다니엘의 가족이 궁금해졌다. 외국인들에겐 조심해야 할 질문인 것을 알면서도 낯선 타향에서 접한 보쌈 제도에 궁금증이 더해진 것이다. 갑자기 다니엘은 히죽 히죽 웃기 시작하면서 두 손을 무릎 위로 올리더니 주먹을 쥐고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한다.

“미스터 차. 잘 봐요. 제가 잘 외우고 있는지 없는지. 우선 제일 큰형 코피부터 시작해서...”

가족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했더니 한참을 혼자서 중얼거리다 손가락을 채 스무명을 못 세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하아. 너무 어렵네요. 식구들 이름을 다 외우는 게.”

“우리 아버지는 부인이 넷이구요. 그 사이에 낳은 자녀들은 열하고 여덟 명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모두 열하고 일곱 명의 형제와 누이가 있는 셈이죠.”

이른 중반의 아버지와 마흔 초반의 아들. 다니엘의 위로 형이 한 명 있다. 이름조차 다 외우기 힘든 대식구였다. 나의 궁금증은 더해져만 갔다. “다니엘도 부인이 여럿 있나요?”라는 느닷없는 내 질문에 다니엘은 손을 내젓는다.

“한 명의 부인으로 족해요. 그리고 아이들은 셋 있어요.”

불과 한 세대의 간격을 두고 가족의 유형이 급변하는 것을 보면 가나도 어쩌면 급격한 문화적 소용돌이로 인해 진통을 앓을 수도 있을 것이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기억 속의 풍경을 만나다

내친 김에 가나의 일반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다니엘은 교육청에 잠시 들른 후에 그럴 기회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가루 템페인에서 남서쪽으로 차를 타고 30여분 나가면 나오는 바우쿠 지역. 우리로 치면 읍내 정도에 해당한다. 마을의 중앙에 지역 교육청이 있었다. 우리 일행이 한국에서 온다는 것을 일치감치 들은 지역 교육청에서 벌써부터 한번 만나자며 면담요청을 해오고 있었다.

바우쿠 지역으로 가서 다니엘은 교육청 인사들과 우리 방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할 시간을 가졌다.

“다니엘. 저는 안 들어가도 되죠? 전 이 마을을 좀 거닐어보고 싶은데...” 교육청 인사들과는 차제에 얼마든지 만날 기회가 많으니 부러 지금 이 시간까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끔찍한 금연 포스터 머리부터 손과 발, 장기 구석구석까지 온갖 병에 걸린 흡연자의 사진
▲ 끔찍한 금연 포스터 머리부터 손과 발, 장기 구석구석까지 온갖 병에 걸린 흡연자의 사진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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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짜리 함석지붕의 먼지가 쌓인 남루한 교육청 건물 벽면에는 보기에도 끔찍한 금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머리와 손발, 장기의 구석구석이 썩어가는 괴기한 이 포스터가 한국의 거리에 붙어 있었다면 아마 끽연가들에게는 물론이려니와 흡연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마저 항의를 들었으리라.

카메라를 꺼내고 초점을 잡았다. 2주 동안의 방문 중에 내가 본 가나의 흡연자는 거짓말 안 보태고 딱 한 명뿐이었다. 이런 요상한 포스터 때문이었을까? 연신 포스터를 촬영하는 내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왔다. 멜리가 학교의 아이들처럼 이 아이들도 사진 한번 찍어달라고 조르지도 못하고, 재잘거리며 내 주위만 빙빙 돌고 있다.

모든 아이들은 모델이다. 사진을 찍어주기를 조르듯 내 주위만 빙빙 맴돌던 아이들. 다음 번 방문 때에 모두 인화해서 주기로 다짐했다.
▲ 모든 아이들은 모델이다. 사진을 찍어주기를 조르듯 내 주위만 빙빙 맴돌던 아이들. 다음 번 방문 때에 모두 인화해서 주기로 다짐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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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좀 거닐어도 되겠니? 아이들은 '네'라는 대답 대신, 안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골목으로 뛰어갔다.
▲ 마을을 좀 거닐어도 되겠니? 아이들은 '네'라는 대답 대신, 안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골목으로 뛰어갔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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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찍어줄까?”

말을 걸자마자 아이들은 신이 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다. 아마 카메라를 처음 보는 것 같은 이 아이들이 취하는 촬영 자세는, 태생을 알 수 없는 브이 자만을 연신 지어대는 우리들의 닳아버린 자세보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이 마을 산책을 좀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니?” 아이들은 '네'라는 대답대신 안 될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끄러운 웃음을 지으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을 좇아가다 불과 몇 발자국을 걷지도 않아 나는 정신이 멎을 것만 같은 풍경을 목도하고 말았다.

내세울 것 없는 툇마루 나를 한동안 서있게 한 오랜 기억 속의 풍경
▲ 내세울 것 없는 툇마루 나를 한동안 서있게 한 오랜 기억 속의 풍경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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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먹구슬 나무 밑, 허름한 양철지붕 아래 내세울 것 없는 툇마루. 온통 때에 절인 옷을 입은 촌로 셋이서 앉아 따분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먹구슬 나뭇잎은 계속 쌓여만 가고, 인적없는 골목길 풍경은 아이들 소리만 요란했다. 이 광경은 내가 처음 마주한 것이 분명 아닌 것만 같았다. 수십 년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하고 나는 또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일까?

동구 풍경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넉넉한 한 낮의 나무그늘이 여유롭게 악수를 청한다.
▲ 동구 풍경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넉넉한 한 낮의 나무그늘이 여유롭게 악수를 청한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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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지폈고, 수도가 없어 고인 빗물을 마셨고, 학교가 끝나면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 올 때까지 지네를 잡고 고사리를 캔 후 가게에 내다팔았다. 나의 동년배들이 겪지 못했던 동시대의 비동시성의 혼돈스러운 옛 모습들을 이곳 아프리카에서 조우한 나의 맥박은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저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저녁 무렵까지 지네를 잡고 온 아이들의 소란스러움과 어미지네를 새끼지네라고 하며 가격을 깎으려는 욕심많은 가게 아주머니의 수다스런 실랑이가 들려올 것만 같다.

저 골목을 돌면, 엉아와 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내가 타고 갔던 탈탈거리던 달구지를 모는 아버지가 지금도 동구를 나서고 있을 것만 같고, 고갯마루에 해가 넘을 때 긴 그림자를 벗삼아 밭에서 돌아오는 어머니가 호미를 든 채 터벅터벅 모퉁이를 돌아 걸어오실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곳에 서 있는 것조차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이곳에 서게 하고, 이 친숙한 광경을 바라보게 한 힘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나는 다시 마을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장 흔한 집 둥그런 흙벽 울타리에 둥그런 흙집
▲ 가장 흔한 집 둥그런 흙벽 울타리에 둥그런 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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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집 마당에는 빨래가 건조한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빨래 집 마당에는 빨래가 건조한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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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은 거개가 다 흙집이었다. 흙으로 둥그렇게 흙벽을 두르고 흙벽을 따라 언저리에 방이 한 칸짜리인 흙집을 지었다. 둥그런 흙집 벽을 따라 천정을 짚으로 둥그렇게 이어, 어느 하나 각진 모서리가 없는 둥글둥글 두루뭉수리한 집이다. 아이들을 뒤쫓다 골목길 끝에서 마주한 흙집과 지붕 위에 번지는 박덩굴을 보니 소박한 웃음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 볼 참으로 발을 내디뎠더니 방목 중간 중간에 임시로 돼지를 보호하는 우리와 그 옆으로 화덕이 보였다. 빨래줄에 걸린 빨래가 건조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정겨운 풍경을 바라보던 중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돌아보니 다니엘이었다. “집 한번 들어가봐도 될까요?” “집요? 그럼 여기 말고 좀 더 큰 데 보여줄게요. 이리로 와보세요.” 다니엘을 뒤따라 그 지역에서 꽤 부잣집에 속한다는 곳으로 가서 염치 불구하고 싸리문을 들어섰다.

조금 더 부유한 집 부인이 넷, 자식이 스무 명이라 했다.
▲ 조금 더 부유한 집 부인이 넷, 자식이 스무 명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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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 부엌 대 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큰 노천 부엌이 있어야 한다.
▲ 노천 부엌 대 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큰 노천 부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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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벽 울타리를 따라 흙집 다섯 채가 서 있는 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가니 이엉지붕 밑 그늘 한 편에 연령대가 매우 달라 보이는 네 명의 여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니 방긋 인사를 한다.

영문도 모른 채 들어선 그 흙집에서 다니엘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

“저 분들은 모두 이 집 남편의 부인들이지요.”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수다에 빠져 있던 네 명의 여자분들은 모두 이 집 주인의 부인들이라는 것이다. 자식이 몇 명이 있나 물어보니 20명의 자식을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울타리 정 중앙에는 이 대식구를 족히 먹일 수 있는 식사준비를 하는 노천부엌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항아리에 물을 붓고 소검(옥수수 종류)을 넣은 후 찌기를 시작해 이틀 밤, 사흘 낮을 꼬박 불을 지피면 이들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진다. 흙벽 울타리 안에 있는 흙집은 모두 다섯 채. 부인 한 명당 흙집 한 채를 차지하고 가장 큰 집은 남편의 차지였다.

각이 없는 부드러운 곡선형 자연식 주택의 매력에 빠져 찾아간 나는, 가나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부한 자와 빈한 자의 차이를 보게 되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느 사회에나 있는 부한 자와 빈한 자의 차이를 여기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란 내 어리석은 바람이 들통난 것만 같아, 나는 기분이 우울해져 서둘러 그 곳을 빠져나왔다.

감정을 팽팽하게 조이던 사색의 끈을 풀어버리고...

여기서,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언가를 꼭 배우고 가리라는 내 결심이 이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은 오히려 행운이었다. 진실이란 어쩌면 그렇게 의지적인 결심보다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것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려고 잔뜩 기대를 가졌던 것은 어쩌면 내 안의 불필요한 긴장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 순간부터 내 감정을 팽팽하게 조이던 사색의 끈을 풀어버리기로 했다. 이들의 삶의 어느 것 하나라도 진심으로 나의 중심을 울린다면, 그것은 굳이 내가 교훈으로 부여잡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속살 구석 구석에 박혀들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때때로 눈을 감았을 때 그 때도 잊혀지지 않고 잔잔히 내 속에 남아 내 혈관을 따라 파동을 만들고, 내 심장의 맥박을 두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때 가서 그것에 감동을 하기로 하자. 그래도 늦을 것은 없으니, 지금 이 시간부터는 사진을 찍듯 가나가 전하는 고운 빛과 추한 빛을 보며 서슴없이 내 가슴 속의 셔터를 누르고 내 영혼의 필름에 새겨 넣는 일만 필요할 뿐이다.

다니엘을 설득하여 우리는 서둘러 차를 타고 볼가탕가로 돌아온 후 오늘 숙소가 있는 봉고로 향했다. 볼가탕가는 바우쿠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차를 타고 1시간 반이면 만날 수 있는 작은 읍내, 그리고 봉고는 볼가탕가에서 정북 쪽으로 차로 약 30-40분을 더 주행해야 만날 수 있는 작은 군 정도의 지역이다.

봉고 사업장은 월드비전 스위스에서 지원을 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무척이나 씩씩한 월드비전 직원 베네딕트가 자주색 반팔 단체 티를 입은 채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음 주에 있을 멜리가 학교 기공식에 온 주민들과 함께 나눌 잔치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베네딕트에게 부탁했다. 가져간 천 달러를 베네딕트에게 주었다.

“되도록 많은 학생들과 주민들이 그 시간을 함께 즐겼으면 합니다. 돈이 부족할지 모르겠군요. 몇 명이나 올지 모르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사람들 많이 와도 넉넉히 먹을 수 있게끔 잘 마련해 볼게요.”

월드비전 스위스 지원 사업장인 봉고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온 베네딕트는 다시 한번 내 걱정을 잠재우려는 듯, 윙크를 보내며 대답 대신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아이보리 코스트 산 진한 블랙 커피를 마시는 사이 클레멘트와 골드프레드가 사무실로 왔다. 골드프레드는 멜리가 학교가 세워지는 가루 템페인 사업장 책임자, 클레멘트는 바우쿠 웨스트 사업장 책임자이다. 두 분 모두 월드비전 한국이 올 해부터 시작하는 가나 북부 지역 사업장을 새롭게 맡게 될 담당자들이다. 골드프레드가 다니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커피를 들고 복도 끝 휴게실로 가서 클레멘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곡식 배급을 기다리는 아이들 아이들이 학교 급식용 곡식 배급을 받기 위해 노새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
▲ 곡식 배급을 기다리는 아이들 아이들이 학교 급식용 곡식 배급을 받기 위해 노새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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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봉고 사업장에서는 인근 지역 학교에 급식용 쌀과 옥수수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마당 한 편 식량 저장창고에서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이 배급용 곡식을 받아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발학과 분쟁학을 전공했다면서요?” 다니엘에게서 클레멘트와 골드프레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은 적 있어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 네.”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분쟁학이란 것은 매우 생소한데요. 제가 이쪽을 잘 모르는 탓도 있겠지만요.”
“아. 네. 사실 불과 몇 해 전에 이 지역에서 종족간의 분쟁이 있었어요. 가나는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종족간의 분쟁도 없는 나라이지만 가끔씩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해서 사실 긴장을 늦출 수는 없어요.”

나는 이 참에 불과 얼마 전 묵상 집에서 읽었던, 닭 가격으로 인한 대규모 분쟁을 다룬 짧은 기사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닭 가격이 폭락해서 대규모 폭동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100만 여명이 그 분쟁 와중에 다쳤다고 하던데요.”

클레멘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떤 기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문제의 원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 쓴 것 같네요. 닭 가격 폭락은 단순한 도화선일 뿐, 그 전에 분쟁이 이루어지게 된 전체적인 맥락을 먼저 살폈어야 할 것 같군요.”

한 발 물러서 보는 지혜가 필요한 곳

짐작대로 아프리카의 분쟁을 무지한 문맹 종족들 간의 어이없는 싸움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지고 염려하는 책자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지는 분쟁의 깊은 원인에 대한 뿌리 깊은 관찰이, 우리의 대중적 서적에서 다루어지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

월드비전 식구들 맨 왼쪽이 클레멘트(바우쿠 웨스트 사업장 책임자), 왼쪽에서 세번 째가 골드 프레드(가루 템페인 사업장 책임자), 네번째는 다니엘 살리푸(북부지역 총 책임자)
▲ 월드비전 식구들 맨 왼쪽이 클레멘트(바우쿠 웨스트 사업장 책임자), 왼쪽에서 세번 째가 골드 프레드(가루 템페인 사업장 책임자), 네번째는 다니엘 살리푸(북부지역 총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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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는 계속해서 가나 북부지역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예방접종과 충분한 영양섭취, 임산부들에 대한 지원, 충분한 백신과 항생제의 공급 등 여러 방면에 걸친 해박한 그의 지식에 감탄했고 무엇보다 진지하고 성실한 눈빛으로 자신의 지역사회를 바라볼 줄 아는 열정 있는 한 활동가가 그 사회에 버티고 있는 것에 마음이 많이 놓였다.

“여기 어때요? 많이 보고 느끼셨나요?” 장황한 설명을 잠시 쉬려는지 클레멘트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글쎄요. 솔직히 불과 며칠 사이에 많은 것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조금 관조자의 눈으로 다시 몇 발자국 멀리서 가나를 바라보고 싶어요. 무언가를 깨달아야만 한다는 강박적 생각이 오히려 저를 소모적인 격정에 몰아넣는 것도 같아서요.”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가나를,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미화할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에 잔상으로 남아 여전히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고, 나의 맥박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숨 막힐 듯 한 혈류가 남아 있다면 그것이 진실일 것이리라.

“처음엔 마치 이상적인 세계에 와 있는 듯했습니다.”

진심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늘상 접하는 흙과 나무와 풀을 가지고 지은 생태적인 집도 그랬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가나의 모든 것들이 나를 몽환적 호도에 잠기게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벌써 또 다른 그늘도 보인다는 것이 솔직한 제 심경입니다. 여성들이 불이익을 많이 당하는 것도 같습니다.”

민감한 이야기가 될 듯해서 머뭇 머뭇 이야기를 했다.

“정확하게 잘 보셨네요.” 나는 클레멘트의 명쾌하고 짧은 답변에 오히려 당황했다.
“네?”

“여성들이 많이 불리하죠. 학교를 볼까요? 아직도 부모들 중에는 자신의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아요. 딸에게 학문을 가르쳐서 뭐하냐는 거예요. 그리고 딸을 학교에 보내는 경우에도, 바쁜 농번기가 되면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밭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잦아요. 그리고 지금처럼 건기 때에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서 날품을 파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일손을 채울 요량으로 딸을 데리고 가지요. 여러 가지로 아직은 여성들이 불리한 것이 분명해요.”

클레멘트가 대화를 정리할 마음으로 한 마디 던진다.

“유엔 새천년 개발 목표 알죠? 남녀에게 평등한 제도와 문화가 개발에 필연적인 요소라는 것,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여성들의 불평등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며 고민하고 있는 클레멘트가 무척이나 대견스럽게 보였다.

일찌감치 가나에서 빈자와 부자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느낀 것은 다행이란 생각을 다시 되뇌었다. 클레멘트와 차후에 이야기를 더 하기로 하고 우리 일행은 월드비전 스위스 지원사업으로 지은 봉고 인적자원개발센터로 향했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 바로 우리가 묵을 숙소였다.

또 다시 저녁 오늘은 아마 처음으로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 또 다시 저녁 오늘은 아마 처음으로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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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에 온 후로 처음으로 단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깊은 숲 속에 휑뎅그렁하게 놓여진 숙소 주변으로, 알 수 없는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단잠을 채근한다. 지금 이 순간 핸드폰을 받을 일이 없고, 메일을 체크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나의 단잠을 더 재촉할 그 무엇이 있을까? 눈을 뜨면 아침일 것이며, 그 시간이 몇 시인지도 상관할 일 없다. 꽉 짜여진 일정에서 하루쯤 벗어나면 어떠랴. 나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2008년 2월 5일부터 14일까지 월드비전 해외아동지원사업으로 가나 현지를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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