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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환영행사장에는 수많은 현수막이 걸렸다.
▲ "친구야 수고 많았제, 우리는 니가 자랑스럽다"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환영행사장에는 수많은 현수막이 걸렸다.
ⓒ 전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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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다녀올까?"

임신 5주째에 들어선 아내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퇴임 대통령의 귀향 환영행사에 갈 것을 제안하였다. 점점 몸이 무거워질 아내는 당분간 여행이 어려울 듯 하고, 이제 우리 나이로 네살이 된 아들에게 의미가 있는 행사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역사상 처음이 될 대통령의 공식 귀향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싶은 다목적의 제안이었다.

바람쐬기 좋아하는 아내는 흔쾌히 동의를 하고 나섰다. 새로 출범한 정부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대선이 끝나고 다가오는 대통령 취임식 날짜를 보는 마음이 착잡했는데, 이렇게 여행계획을 잡아놓자 소풍 날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여러 계획을 짜며 25일을 기다렸다. 즐거운 여행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역사상 첫 대통령 공식 귀향을 보러 떠나다

24일 밤은 온천으로 유명한 부곡의 한 콘도에서 묵었다. 노사모의 전야제가 계획되어 있는 곳이었다. 도착해보니 노사모 회원들은 다음 날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언론에는 화려한 전야제가 있을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실제로는 모닥불 피워놓고 노래 몇 곡 부른 것이 전부였다. 한정된 인력으로 전야제까지 기획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으로 보였다. 밤 10시가 넘을 무렵 조촐한 전야행사가 끝나고 일부 노사모 회원들은 봉하마을 행사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면서 길을 나서고 있었다.

봉하마을 주차장에 마련된 무대 옆에는 각종 단체에서 보내온 화환이 설치되어 있다.
 봉하마을 주차장에 마련된 무대 옆에는 각종 단체에서 보내온 화환이 설치되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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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봉하마을 입구는 오전부터 북새통이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셔틀버스가 연신 마을과 초머리, 진영읍을 계속 순환하였지만, 밀려드는 인파를 감당할 수 없었다. 아마도 봉하마을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긴 처음이지 싶다. 결국 3㎞를 앞에 두고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마을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교통경찰 이외에 지역의 큰 행사에 단골손님처럼 보이는 해병전우회 회원들이 제복을 입고 교통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노란풍선과 해병전우회의 조화가 약간은 어색했지만 좋아 보였다.

마을까지 들어선 길에 노사모가 걸어 놓은 풍선과 각종 단체들이 걸어놓은 환영 펼침막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자유총연맹 명의의 펼침막부터 전라도에서 온 환영 문구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외치던 국민통합은 여기서만큼은 소박하게나마 이루어진 것 같았다.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나이 드신 할아버지·할머니들의 행렬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열성지지자들이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통령 생가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고 퇴임 대통령의 귀향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정치적인 측면이 강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오산이었다. 대통령 사저 한 번 보겠다고 신기한 듯이 보러오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초라한(?) 대통령의 저택에 실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몇십억짜리 집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주변 집과의 조화를 고려해서인지 귀향 집은 단층으로 지어져 있었다. 좀 관심 있다 싶은 사람들은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를 비판하고 있었고, 평범한 관광객들은 '별 것 없구만'하는 반응이었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머무를 사저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은 노 대통령 사저의 건물 외형 모습.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머무를 사저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은 노 대통령 사저의 건물 외형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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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초라한' 대통령 사저

어린 아들과 임산부 아내를 데리고 온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밥이었다. 만명분의 식사를 준비해서 논바닥에서 무료 배식을 하고 있었지만, 기다려서 밥을 먹기에는 그 줄은 너무나 길었다. 아무래도 봉하마을은 퇴임 대통령 한 명을 품기에는 넉넉했지만, 만명이 넘는 인파를 수용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어보였다. 결국 식사는 가족을 데리고 다시 3㎞를 걸어 나와 진영 읍내에서 해결하였다.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마을로 들어가려 하자, 길은 오전보다 상태가 심각해져 진영읍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몸이 무거운 아내와 너무 많은 거리를 걸어 피곤해 잠든 아들을 차에서 쉬게 하고, 혼자 마을에 들어갔다 오기로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라도 대통령 얼굴은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시 3㎞를 걸어 들어간 봉하마을은 때마침 도착한 퇴임 대통령으로 인해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퇴임하고 환영해 주는 인파에 노무현 대통령은 상기된 듯 보였다. 지지율 하락에 허덕이는 퇴임 대통령답지 않게 연설은 힘이 있었고, 환영하는 노사모와 지역주민의 박수 소리도 우렁찼다.

저녁 어스름이 몰려오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일정과 상관없이 구경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들과 다 보고 나가는 사람들로 여전히 뒤엉키고 있었고, 노사모를 비롯한 열성 지지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축제의 장을 만들고 있었다.

단순한 관광객도, 열성적인 노사모도 아닌 나는 서울 집으로 출발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환영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바라는 메시지'를 쓰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환영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바라는 메시지'를 쓰고 있다.
ⓒ 전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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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하는 '노무현'이 되길

어느 언론보도를 보니 참여정부 최종 지지율은 27%대였다고 한다. 높다고 할 수 없는 지지율이지만, 정권 말기 지지율 치고는 그런대로 선방했다는 생각도 든다. 퇴임 대통령을 즐길 수 있는 문화도 우리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싶다.

시골 촌로에서 386세대,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즐길 수 있고, 자유총연맹과 노사모가 같이 축하해 줄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보기 좋은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마지막 공식 연설에서 '통합'을 이야기했다. 누구의 잘못이었든 참여정부 5년간의 갈등은 많이 깊었었다. 계층과 세대, 그리고 이념 간의 갈등이 그랬다. 아마 그도 그 점이 아쉬웠던 것 같았다.

2월 졸업식 시즌이 되면 늘 들었던 말이 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은 노무현 개인뿐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모든 세력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하마을을 떠나며 라디오로 들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소식에 진심어린 성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봉하마을의 축제가 나의 마음을 약간은 녹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25일 오후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해 지역주민, 전 각료, 노사모 회원들이 주최한 귀향 환영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25일 오후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해 지역주민, 전 각료, 노사모 회원들이 주최한 귀향 환영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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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봉하마을, #노무현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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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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