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붉은 낙엽이 길 앞으로 또르르 흘러지나가는 장면을 봤을 때이다. 그때가 작년인가…. 아니, 재작년인가…. 분명한 건 더위가 가시기 시작한 9월에 어느 날이었다는 것이다. 좀 더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막 8월에 치열함이 사라지고 여름의 생동함과 9월에 생경함이 맞닿아 있는 시절이었다. 시간은…. 대충 오후 5시쯤이나 되었을까? 코발트블루 빛 하늘의 풍경과 늙은 사과의 붉은빛을 닮은 단풍의 대비는 그렇게나 나에게 강력하게 각인되었나 보다. 그리고 그 느낌과 풍경은 사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음악을 느끼고 그것에 관한 추억을 반추할 때, 전 우주에서 가장 적합한 운명적인 한 지점이었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바보 같지만 하늘과 단풍의 강인한 모습만큼 정작 내가 그때 무슨 음악, 무슨 재즈를 듣고 있었는지는 이상하게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날에 그 음악은 어쩌면 그때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압도적인 풍경과 감상에 묻혀 어떠한 고정되지 않은 이미지로만 나에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 이후 나는 몇 번인가 그 음악에 대해 기억하려고 해도 전혀 헛수고였다. '아…, 멜로디는 비슷하지만 리듬의 변주가 미묘하게 달라…' 라든가, '아냐…, 이것보다는 좀 더 조용했었어…' 라든지 하는 허공에 잡힐 듯한 빛을 휘휘 젓는 어린 아이의 무의미한 손짓만이 있었다. 폴 블레이(Paul Bley)였나. 보라 버그만(Borah Bergman). 아니, 그때의 시점으로 감안한다면 의외로 브레드 멜다우(Brad Mehldau)나 피에라눈찌(Enrico Pieranunzi)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이후 음악적 이미지로만 따지면 외려 에반 파커(Evan Parker)의 발라드 색소폰이 더 그럴싸하게 들렸던 것을 감안한다면, 나의 이러한 어림잡은 짐작도 사실 꽤나 ―아니, 전혀 신빙성이 없다. 뭐,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기억을 더듬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Marcin Wasilewski <TRIO>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날의 풍경이 다시 한 번 어스름하게 펼쳐진 날이 매우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 우리 집은 바닷가 근처에 아파트인데, 덕분에 집에서 약 10여 분만 걷다 보면 바다가 있는 해수욕장에 다다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사실 이 해수욕장에 여름은 고사하고 해가 떠있는 낮에도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사람이 북적이는 여름 한낮에는 누군가 나에게 돈을 주고 가라고 떠민다 하더라도 아마 가지 않을 것이다. 지역주민으로서 경제관념이 영 꽝이라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싫다. 하지만, 밤. 그것도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한적한 계절에는 바다가 있는 그곳에 나는 반대로 누군가 돈을 지불하라고 해도 필사적일 것이다. 밤의 그 바닷가에서 쏴- 거리는 파도소리가 함께하는 백사장에 털썩 앉아, 담배를 하나 물고 MP3플레이어에 꽂힌 이어폰에 볼륨을 높이는 순간,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끔씩 바닷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젖혔을 때, 달이나 별이 유난히 반짝여 주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기분이다. 그때도 그런 날이었다. 뭐가 계기가 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이런 것을 보면 나라는 인간은 언제나 사건의 결정적인 한두 가지 요소는 잊어버리는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겨울 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략 자정이 조금 못된 시간에 청바지에 잠바 하나, 그리고 비니를 푹 뒤집어쓰고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이 시간에 백사장을 트랙 삼아 달리기를 즐기던 사람들도 없었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사랑을 속삭이던 어린 연인들도 없었다. 평소처럼 백사장에 아무 데나 주저앉아 잠시 파도소리를 감상하고, 난 뒤 버릇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평소처럼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그 이후에 내가 겪은 그 경험을 ‘불가항력적으로 9월 그때의 그 우주 한 점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고 표현하고 싶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기억도 잘 안 나던 그 흐릿한 그 시점으로 누군가 나를 강제로 들어다가 과격하게 집어던져 버린 느낌이었다. 이 음악은 그때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렇다. 그냥 그렇게 다가왔다. 그리고 잊어버렸던 그때의 한 점을, 다시는 찾지 못했을 내 인생에서의 찰나의 한 점을 되찾았다는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덧붙여서...
마르신 바실레프스키(Marcin Wasilewski)의 음반은 사실, 너무 서정적이고도 교양적이어서 재즈 팬들로부터 평가가 조금 나뉘었던 2005년작 'TRIO'보다,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트리오 이름으로 발매된 2008년 신보 'January'에서 더 확연히 완성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그 바닷가에 들었던 ‘TRIO’는 ECM 레이블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마르신 바실레프스키의 연주의 차이와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9월의 기분으로 다가온 앨범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그의 어떤 연주보다 더 큰 의미를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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